어려서부터 줄곧 베니스에 가보고 싶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너무 꿈에 그린 나머지 나중에는 베니스가 환상 속의 도시처럼 생각됐다. 물 위에 있는 수상 도시라니 얼마나 신기하고 또 아름다운가, 더군다나 각종 여행 방송에서 나오는 베니스의 밤은 낭만이 넘쳐 흘렀다.
오늘은 비행기를 타고 베니스에 가는 날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계획을 제대로 짠게 맞는지, 이동수단은 다 예약을 했는지, 식당은 좀 알아봤는지.. 한번 뿐인 신혼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렇게 J를 몰아 붙였는데, 여행을 와보니 모든게 척척 예약도 잘 돼있고 어디서 몇번 버스를 타야하는지 그가 어김없이 알고 있었다. 다시는 내 불안감으로 J를 흔들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J가 예약한 셔틀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포지타노에서 베니스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폴리를 경유해야한다. 자차가 있지 않고서는 기차나 비행기로 포지타노에서 베니스에 바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우리는 조금 더 빠른 비행기를 선택했다. 후기를 찾아보니 이지젯이 악명 높은 항공사라기에 걱정이 많았는데 세상에 이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순식간에 수속을 마치고 나폴리 공항을 둘러봤다.
-우리 나폴리를 두번이나 경유 했으니까 나폴리도 와본거 맞지?
-응, 그럼!
자기합리화를 잘하는 두 사람이 만나니 합리화하는 힘도 두배가 되었다.
포지타노에서 공항까지 1시간, 나폴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2시간, 베니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또 1시간 총 4시간에 걸쳐 베니스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베스트 웨스턴 볼로냐 호텔! 바로 옆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 비해 외관이 허름해서 실망했는데, 안으로 들어와보니 너무 좋아 입이 벌어진다. 모두 새것 같은데 다정한 온기가 느껴진다.
바우처를 보여주고 체크인을 하려는데 지배인 아저씨가 너희 정말 운이 좋다고 한다. 무슨 말이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으니 “너희가 예약한 주니어스위트룸은 룸 컨디션이 최고야, 분명히 만족할거야!”라는 아저씨. 일단 로비는 합격인데, 운이 좋은지 아닌지는 방에 올라가 봐야 알죠.. 라고 속으로 답했다. 그래도 직원분들이 모두 친절해 기분이 좋았다.
- 와!! 나 여기 너무 좋아!!
- 맘에 들어?
이탈리아 호텔은 로마든 베니스든 가성비가 떨어지기로 유명하다. 대부분 오래되고 공간이 매우 협소해서 비싼 가격을 주고도 좋은 호텔을 구하기가 어려운데, 오늘의 숙소는 지배인 아저씨 말대로 운이 좋았다. 작지만 나름대로 거실과 룸이 분리되어 있고, 침구도 깨끗, 바닥도 깨끗, 욕조가 있는 화장실에서는 광이 났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모든 호텔룸에 전신거울이 있는 것이었는데, 멋쟁이들의 나라여서인지 아주 작은 룸에도 어떻게든 전신거울이 붙어있었다. 덕분에 그날 그날의 패션을 점검하기에는 최적! 베스트 웨스턴 호텔룸에도 어김없이 전신거울이 있었고, 4시간이 넘도록 달리고 날아온 우리의 몰골을 보고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일단 씻자!
벌써 하루가 다 갔다. 저녁으로는 한국에서 가져 온 짜장밥과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한식!
배도 부르고, 내가 호텔도 맘에 든다고 하니 세상 걱정이 없어진 J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꿈에 그리던 베니스 본섬을 눈앞에 두고 잠이 들다니!!
-J, 얼른 일어나!!
당장 깨울까 하다가 하루종일 길을 헤맬까, 낯선 도시에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까 긴장했을 생각을 하니 괜히 안쓰럽고 미안해진다.
-오늘은 푹 자고, 내일 또 여행하자
#7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