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어쩔 수 없으니 일이나 하잔 말
1.
CJ ENM 커머스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카피라이팅 강의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슬라이드 171장에 눌러 담아 갔더니 내 앞 강의가 이유미 작가님의 카피라이팅 강의였다. 단두대에 끌려가는 마음으로 작가님의 강의가 끝나길 기다리는 내 옆에 HR팀 사원 분이 쭉 같이 계셨는데, 아마 내가 집으로 튀면 잡아와야 했기 때문이겠지.
2.
지금의 29CM를 조각했다 해도 될 (전) 29CM 헤드 카피라이터이면서, 베스트셀러도 몇 권씩 쓴 작가에, 유수의 대기업들이 찾는 전설이 직접 진행한 강의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을 때, 황금코끼리 패턴 셔츠를 입은 애가 나와서 '지금부터 카피 강의를 시작합니다^^' 하면 솔직히 나라도 노트북 닫고 싶었을 것이다. 강의 만족도는 질의응답 시간에 알 수 있는데 느낌이 왔다. 아, 오늘 강의 기대보다 별로였구나. (심지어 자료에 제일 많이 쓴 폰트도 깨짐)
3.
오늘 입은 수트는 아빠가 강의할 때 기죽지 말라고 사준 거였는데.
4.
어쩔 수 없지!
5.
정말 어쩔 수 없다. 강사를 내가 섭외한 것도 아니고, 해킹을 할 줄도 모르니 CJ 서버에 접속해서 내 앞 강사가 누군지 알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알았다 해서 강의 안 할 것도 아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포도랑 오렌지랑 계란을 먹은 뒤 눈 좀 붙였다 일어나서 남은 마감을 하는 것이다. 마감하다 중간중간 부끄러워서 창피해서 무기력해서 후회스러워서 눈물이 나서 책상을 몇 번 쿵쿵 치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6.
'제일 잘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될 수 없다. 이건 쭉 반복될, 또다른 오늘이 오면 열고자 준비하는 구급함이다.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부끄럽고 창피해하고 무기력하고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내가 어찌어찌 할 수 있는 일을 놓치는 게 실상 더 부끄러움을, 이제 안다. (그리고 맘대로 쿵쿵대기엔 책상이 좀 낡았음)
7.
항상 싸인 받을 종이를 들고 다니자.
8.
와디즈가 왜 좋아요? 대학생으로 펀딩하고 사장님으로 스토어를 열었다 CEO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와디즈가 씨앗을 잘 뿌렸다고 생각하고, 이 씨앗이 어떻게 자랄지 보기 위해서라도 저는 오래 이곳에 있을 거예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임팩트 포럼 때 나온 신혜성 프로님의 묘목을 응용했는데, 그래서 신혜성 프로님 보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