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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폼 교수 Dec 18. 2023

쿠마의 후토마키

뚱뚱한 김밥

아주 오래전이다. 청담동 어디에선가 후토마키를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여의도 쿠마를 방문했다. 그래서 그날의 이야기 꺼리는 후토마키였다. 역시 그날도 민성셰프는 입에 거품을 물면서 자신의 후토마키가 최고라고 주장했다. 물론 그때까지 한 번도 쿠마의 후토마키를 먹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후토마키 배틀이 시작됐다.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간 후토마키가 만들어졌고 버려졌다. 심지어 파인애플이 들어간 버전도 있었다. 그 결과로 처음 만들어진 후토마키가 아래 그림이다. 여러 가지 버전이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나의 승인이 떨어진 버전이 이 놈이다. 

쿠마 후토마키 2021 버전


딱 봐도 생선살이 많이 보인다. 물론 이 버전은 여의도 쿠마에서 손님들에게 마지막 식사로 내기 위한 버전이다. 즉 단품으로 팔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 아니었다. 광어와 같은 흰 살 생선, 오렌지 색의 연어, 그리고 빨간색의 참치가 입 안에서 고급진 바다의 느낌을 만들었고 계란 지단이 두툼하게 자리 잡고 맛의 중심을 잡고 있었다. 아보카도가 악센트 역할을 했으며 일본식 짠지가 간을 맞추었다. 민성 셰프는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배틀의 승자는 민성셰프가 됐다. 문제는 이런 후토마키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가가 너무너무 높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쿠마는 자연산 회를 판매하는 오마카세 식당이었기에 고급 생선을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살 수 있었고 그 일부를 후토마키를 위해 사용할 수 있었다. 


누가 만들던 후토마키는 일단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현실적으로 입이 작은 사람이 한 번에 먹는 것을 권하지는 않는다. 잘못하면 숨을 쉬기 어려울 수도 있다. 정확한 크기를 재보지는 않았지만 보통사람이라면 두 점을 먹으면 배부르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후토, 즉 뚱뚱하다는 형용사가 사용된다. 그런데 쿠마의 후토마키는 일반적인 후토마키 보다 더 컸다. 그리고 엄청난 쿠마의 오마카세의 마지막이었기에 나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거의 모든 손님들이 이 후토마키를 원킬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이 후토마키를 포기하고 가기는 싫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쿠마상회의 다음 상품을 고민하면서 선택한 것이 후토마키였다. 일단 아무나 만들 수 없어야 하고 무언가 쿠마상회만의 차별점이 있어야 한다는 나만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로 후토마키는 사업화라는 면에서 문제가 많았다. 


후토마키를 상품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첫 번째 문제는 너무 크기가 크기 때문에 김말이 과정이 너무 힘들다는 점이다. 언젠가 장사천재 백사장 2에서 권유리가 김밥을 말다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김밥이 쉽게 말 수 있는 요리는 아니다. 하물며 후토마키는 초대형(6~7센치)이다. 그래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동원됐고 심지어 후토마키 말이를 위한 기계를 찾아내기도 했다. 비록 현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셰프가 직접 마는 것을 선택했지만 이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기에 우리의 문제는 다른 경쟁자들의 포기 이유가 될 수 있었다. 


후토마키 말기 전 사진


쿠마의 후토마키가 인기를 얻자 오늘회에서 팔겠다고 나섰다. 신선 수산물 플랫폼 오늘회에서 쿠마의 후토마키는 큰 인기를 얻었고 하루에 수십 개씩 팔려나갔다. 당연히 물량을 감당해 내기 위해서는 제조공정이 빨라져야 하는데 이 뚱뚱이 김밥을 마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게다가 별도로 재료를 수급하는 것도 하나의 문제였다. 그날그날의 재료가 다를 수 있는 쿠마에서 주문이 일정하지 않은 후토마키를 위해 별도의 생선의 공급을 유지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생선들 간의 조화가 중요한데 제철이 아닌 생선을 다른 생선으로 대체하니 맛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회가 무너지고 그렇게 쿠마의 후토마키 상품화 시도는 일단 마무리되었다. 


그 후토마키를 다시 살리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배송이었다. 이후에 다루겠지만 날씨가 한 여름만 아니라면 생선회는 진공포장을 통해 다음날 택배 배송이 가능하다. 오늘 주문받고 만들어서 택배로 보내고 손님은 다음날 받아서 먹는 것이 가능하다. 즉 배민과 같은 음식배송 시스템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지만 배달음식의 원가율이 30~50% 사이라면 쿠마상회의 음식은 원가율이 60%를 상회하기 때문이다. 즉 배달과는 다른 비즈니스이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많은 숫자를 판매해야 수익이 확보되는 비즈니스인 것이다. 

물론 생선회는 고가의 상품(예를 들어 10만 원)이기에 퀵서비스(예를 들어 1만 5천 원)를 사용하여 배송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 줄의 김밥을 먹기 위해 상품 가격(현재 쿠마상회 가격은 2만 8천 원)의 반이 넘어가는 퀵서비스 비용을 지불할 소비자는 많기 않기 때문이다. 결국 후토마키는 배달음식이지 택배를 통한 상품은 되기 힘들어 보였다. 


또 하나 배달시간이 길어지거나 예상보다 늘어질 경우 후토마키라는 음식의 맛이 손상될 가능성이 컸다. 생선회와 비교할 때 후토마키에는 밥이 들어가기에 밥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진공포장을 하더라도 마르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냉장 배송을 위한 보냉재가 밥을 차갑게 만들기에 배달이라는 시간은 후토마키에게는 우군이 아니었다. 오늘회처럼 배송 물량이 일정하게 많다면 두발히어로와 같은 오토바이 택배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의 물량까지 성장하는 것도 문제이고 또 4~6시간이라는 두발히어로의 배송시간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쿠마상회 후토마키 2023 버전... 판매 중


쿠마상회 후토마키

그래서 후토마키는 퀵서비스 혹은 픽업이라는 두 가지 배송수단만을 가지고 판매하기로 했다. 배송이 쿠마의 후토마키의 맛을 망가뜨리는 결과를 보고 싶지 않았다. 파티와 같은 행사가 있어 여러 줄이 필요 거나 혹은 집에서 생선회를 주문할 경우, 후토마키는 그냥 딸려가는 상품으로만 남기로 했다 현재 쿠마상회에서 방어회를 판매하고 있기에 방어회와 후토마키를 합하고 퀵서비스로 배송을 하면 그래도 상식적인 배송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선회에서 진공포장, 랩핑이 익일배송을 가능하게 했듯이 언젠가 후토마키를 배송할 수 있는 방법이 찾아지리라 믿는다. 심지어 냉동김밥이 히트를 치는 세상이니 말이다. 


쿠마의 후토마키를 맛보시려면... https://smartstore.naver.com/kuma_store/products/9591812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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