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앉지 마
‘이번에도 무사할 거야.’ 몇 마리 새들이 서성이는 도로를 느긋하게 달리며 생각했다.
초보운전 시절에는 이런 광경을 만나면 매번 놀라 당황했다. 새들이 시야에서 벗어나 밑으로 사라지는 순간, 바퀴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그들의 처참한 광경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핸들을 잡고 액셀을 밟은 손발은 오그라들었다. 비명횡사 주검이 전해오는 뭉클한 감각은 얼마나 낯설고 징그러울까. 그때마다 새들은 늘 무사했다. 하늘 태생인 날짐승의 민첩성을 퇴화한 문명인이 염려하는 건 기우였나 보다. 그래도 가끔은 불행한 사고 흔적을 목격할 때가 있다. 새의 날갯죽지 깃털이 도로 바닥에 짓이겨진 채 펄럭이는 장면들이다.
생각과 달리, 오늘도 조금은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무리 중 한 마리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차들의 좁은 틈새에 그만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나는 곧 벌어질 비극을 떠올렸다. 느긋하던 마음은 쭈뼛한 공포로 돌변했다. 그런데 새는 의외로 침착했다. 당황스러운 날갯짓 대신 가만히 선 채, 달리는 자동차 바퀴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마치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대기하듯 너무도 인간적(?)인 자태였다. 파닥이며 놀란 건 이번에도 역시 나뿐이었다. 결국, 별일 없었다.
개나 고양이처럼 언젠가부터 새들도 사람 곁에서 익숙하다. 오래된 도심에서는 고가도로나 다리 밑, 건물 처마를 둥지 삼으며 사람들이 흘린 부스러기를 쫓아 낮게 내려앉는다. 더러운 길바닥을 부리로 더듬으며 뒤뚱거린다. 주변으로 지저분한 배설물이 쌓이고 회색빛 깃털 먼지가 나부낀다. 인간의 삶이 비대해지면서, 풍요롭고 은밀했던 숲의 나날은 황폐한 도시의 삶 뒤편으로 밀려났다. 본연의 삶터에서 추방되어 도시를 떠도는 패잔병 신세가 된 건 단지 새들뿐일까? 그들의 초라한 모습이 보기 불편한 것은, 화려한 도심 속 우리 삶의 삭막한 뒤태를 닮아서인지도 모른다.
도심은 연일 찜통 도가니에 잠겼다. 요즘 더위는 예사롭지 않다. 단지 여름이 보내는 열기만이 아니다. 오랜 세월 사람이 뿜어낸 욕망의 열기가 누적되어 폭발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고 한다. 도시 생활은 온통 편리와 쾌락의 극한을 추구하는 시스템에 기반한다. 주변에는 전자기기와 일회용 물건들이 넘친다. 그것들은 쉴 새 없이 열기를 내뿜고 쓰레기를 양산한다.
창문을 열자 숨이 턱 막힌다. 층층이 뿜어져 나오는 에어컨 실외기 열풍이 훅 끼쳐온다. 다시 문을 닫아버렸다. 나도 질세라 참았던 에어컨을 신경질적으로 켰다. 더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에어컨 바람은 내 등골을 서늘하게 스친다. 동시에, 땡볕 아래 누군가의 땀방울은 더 굵고 독해진다. 한낮 폭염을 뚫고 건너편 고층에선 이삿짐이 분주하게 오르고 내려진다. 아래층에선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열기는 우리 안에서 병적인 불균형을 이룬다.
신도시로 탈바꿈한 이곳은 눈부시게 멋지고 화려하다. 넓은 호수를 둘러싸고 온통 빌딩 숲을 이룬다. 건물들은 서로 경쟁하듯 다투며 높게 더 높게 치솟는다. 그럴수록 하늘은 더 멀리 더 높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푸르고 광활하다.
태곳적부터 우리 바람은 늘 하늘을 향했던 걸까? 원시 때부터 사람은 탑을 쌓고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척박한 삶 저편으로 이상을 띄우고 소원을 빌었다. 지금껏 우리 곁에 아름다운 유물로 남아 신비로운 옛 삶을 오늘로 잇는다.
도시의 빌딩 숲은 나날이 팽창하고 높아진다. 우리가 쌓은 세상은 이제 폭발 직전이다. 하늘을 향한 기원 대신 땅으로 뻗치는 욕망이 끓어 넘쳐 쌓아 올린 탑. 미래는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아름다운 유물로 남을 수 있을까.
말쑥하게 단장한 호수공원 한가운데에는 처음 보는 모양의 탑이 들어섰다. 작은 새집 모양 구조물이 빌딩처럼 겹겹이 탑을 쌓았다. 짐작컨대, 새들의 아파트로 지어진 게 틀림없다. ‘이 곳에 앉지 마.’ 속으로 되뇌었다.
노을에 물든 저녁 하늘을 가르는 새들이 유독 그리운 요즘이다.
하늘을 닮은 새야. 이곳에 앉지 마.
푸른 꿈 한 잎 따서 물고 멀리 날아. 내가 우러를 수 있도록
땅을 뱉어내고 하늘을 머금으렴
숲과 하늘을 가르쳐 주렴
그리운 어느 날에는
고요한 절간 처마에 내려앉아
오랜 목탑 끝에 입맞춤하고
나를 이끌어 주렴. 하늘로 숲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