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안전망'을 벗어나, 나홀로 담력 살찌우기
주변 사람들은 내게 종종 얘기하곤 한다. 나는 부모님께 큰절을 올려야 한다고. 맞는 얘기다. 부모님은 나를 어려서부터 풍족한 환경에서 남부럽지 않게 키워주셨다. 수려한 외모의 두 분 덕분에, 첫 직장에서 학생들이 붙여준 나의 별명은 ‘미스코리아 선생님’이었다. 대학생 때는 길을 가다가 모델학원 관계자들로부터 여러 번 제의도 받았다. 지금의 건강한 나를 있게 한 건 팔 할이 부모님이시다.
그리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영혼의 단짝으로 나를 지켜주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연년생 친언니다. 유년기 시절 우리 언니는 세상 순둥한 나를 지켜준답시고 온 골목을 호령하였다. 충천한 기개를 뽐내며 용맹하게 모든 놀이를 이끄는 골목대장 언니는 동생인 나를 졸병처럼 거느렸다. 언니의 안전망은 든든했으나, 나는 점점 겁쟁이 바보가 되었다.
한 살 터울인 우리는 같은 유치원에 다녔다. 규정상 언니는 닭반, 나는 병아리반 소속이었다. 그러나 언니와 떨어지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던 나는 닭반에서 언제나 언니와 함께 지냈다. 언니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나 혼자 유치원에 간 첫날, 홀로서기의 대가는 혹독했다. 언니 안전망을 벗어난 꼬맹이는 응가를 그만 팬티에 한가득 지르고 말았다. 원장님의 커다란 팬티를 입고 집에 돌아온 그날은 내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수치심이란 감정을 느낀 날이다.
그날의 기분은 어린아이의 여리고 잔잔한 바다에 끊임없는 파장을 일으켰다.
팬티사건 이후에 혼자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언니는 학교에 갔고, 유치원에서 일찍 돌아온 나는 정원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마당의 작은 연못에 사는 금붕어에게 먹이를 준답시고 열심히 파리채를 휘두르며 파리를 잡았다. 파리가 완전히 짜부가 되지 않게 살짝 기절할 정도로만 내려치는 힘 조절 스킬을 터득했다. 포획한 파리를 연못에 넣어주면 얌전하던 금붕어는 금세 야수처럼 변해 달려들었다.
조그만 금붕어 입이 커다란 동굴처럼 변하여
한입에 꿀꺽 파리를 삼키는 모습이 소름 돋게 징그러웠지만,
나는 열심히 금붕어에게 밥을 먹였고, 내 담력도 살을 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