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생활, 슬기로운생활, 즐거운생활로 만드는 '지식의 성'
우리 집 마당은 꽤 넓었다. 암석으로 단을 높인 정원에는 장미, 수련, 야자나무 등 다양한 수목이 자랐다. 연못과 대문 사이에는 개집을 마련해 진돗개를 키웠다. 애완견 재롱이는 나보다 몸집이 훨씬 컸지만 웬일인지 무섭지는 않았다.
몸을 가득 덮은 털은 햇살처럼 윤이 났고, 얼굴은 언제나 웃는 모습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일부러 언니와 따로 등교하였다. 언니는 늦잠꾸러기였고, 등교시각에 임박해서 집을 나서는 스릴을 즐겼다. 학교에 지각하여 선생님께 혼난다는 건, 내게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부지런히 일찍 집을 나섰고, 그 뒤를 졸래졸래 따라온 건 우리 재롱이였다. 30여 분을 걸어 문방구 앞 학교 후문에 도착하면 그제야 재롱이는 나의 수행을 멈추고 발길을 돌렸다. 절대 교문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던 재롱이는 정말 영민한 개였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묵묵히 따라와 주는 재롱이가 얼마나 충성스러운지,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우리들은 1학년’수업시간 내내 깊이깊이 생각하며 눈이 뜨거워졌다.
초등학교 공부는 꽤 재미있었다. 등교부터 하교까지 학교에 거하는 모든 시간들이 질서와 규칙으로 꽉 차 있는 ‘약속세상’이었다. ‘학생답기’ 위해서 부단히도 애를 썼다. 그런데 그것들이 스트레스라기보다는 너무나 흥미로웠다. 널브러진 퍼즐 조각들을 판에 딱딱 맞추어서 작품을 완성하듯이,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온갖 것들은 세상을 속속들이 착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마법 주문 같았다.
나는 성실한 학생이고 싶었고, 유능한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멋진 학교에서 배운 신비로운 학습 내용을 머리에 새기고 마음에 담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법 수련은 계속되었다. 나는 스스로 책상에 앉아, 백화점에서 본 것처럼 교과서를 진열했다. 국어, 수학, 바생, 슬생, 즐생을 가지런히 펼친 다음, 각 교과마다 공책을 따로 세팅했다. 필통 속 학용품 군단의 채비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성스러운 학습이 시작되었다.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써서 오늘의 공부를 마치면 내 안에 ‘지식의 성’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