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수영이가 친구들에게 아빠가 있는 척해요
"선생님, 수영이는 학교에서 잘 지내나요?
사실 수영이가 요즘 친구들 만나면 아빠가 있는 척하더라고요.
애들 아빠 하고는 사정이 있어서 헤어진 지 오래인데...
수영이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어요.
저는 괜찮은데 수영이를 보면 왜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숨기기만 하는지...
저 혼자만으론 부족해서 그런 걸까요..."
수영이 어머니는 말을 흐렸고 나는 조용히 휴지를 가져다 드렸다. 우리 사이에 흐른 침묵 10초.
학기 초 학부모 상담을 시작하며 수영이 어머님을 제일 처음 만났다. 수영이는 따로 말할 게 없을 만큼 학교생활에 착실한 아이였다. 칭찬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마무리지으려는 찰나, 수영이 어머니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수영이는 학교에서 잘 지내나요?" 앞서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나의 인사말과 '학교에서 잘 지내냐'는 수영이 엄마의 질문은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른 의미였다. 묵직한 뒷말을 꺼내기 위해 수영이 엄마는 두 손을 포개었고 눈은 책상 밑단을 천천히 여러 번 훑었다. 결심에 선 듯 수영이 엄마는 말을 꺼냈다.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운을 떼기 시작한 말은 시작도 전에 수영이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었구나 짐작하게 했다. 아빠와 아주 어릴 때 헤어진 수영이가 친구들에겐 아빠가 있는 척한다는 이야기. 수영이가 솔직하지 못한 건 부족한 자기 때문이라며 고개 돌려 눈물을 훔치는 수영이 엄마. 어떻게 하면 좋냐는 말에 화려하게 포장된 진단서를 내어놓지 못했다. 그저 천천히 조심스럽게 전했다.
어머니, 수영이에게 맡겨주세요.
수영이를 믿고 시간을 주세요.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어느 순간 아빠가 지워진 내 복잡한 가정사가 교사란 직업에 도움이 될 때가 가끔 있었다. 부모님 중 한 분이 곁에 없는 이들의 마음을 절절하게 이해한다는 것. 슬픈 마음을 함부로 공감하는 게 아니라 '있는 척' 연극하는 아이의 부단한 노력을 이해했다.
'있는 척' 연기는 단타로 끝내지 못한다. 권투처럼 늘 상대를 주시하면서 언제 들어올지 모를 "쨉"에 온 몸의 긴장을 곤두세워야 한다. 상대의 말에서 은연중에 녹아든 부모님을 먼저 가늠해야 하며 펀치가 날아오기 전 완벽한 수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아빠의 역할을 생활 곳곳에 거짓말로 집어넣어 수비를 하는 동시에 세밀한 디테일까지 기억에 남겨야 한다. 나중에 말이 어긋나면 안 되니까. 한 번 삐끗하면 남들이 눈치챌 테니까.
"우리 아빠? 당연히 회사 다니지."
"왜 우리 집에 못 놀러 가냐고? 그냥. 엄마가 우리 집 더러워지는 게 싫대."
"아빠 얘기를 왜 잘 안 하냐고? 아.. 그건 내가 아빠랑 안 친해서"
"우리 아빠 오늘 휴가라서 집에 있는 거야. 원래는 일하러 가셔"
상대의 질문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민첩한 반응들을 겪어내며 몸은 알게 모르게 녹초가 되었다. 마음의 몸살을 끙끙 앓았다. 어릴 때 나는 일 없이 작은 방에서 꼼짝 않는 아빠를 숨기기 바빴다. 아빠와 헤어지고 고등학생이 됐을 때는 마음의 정리도 되기 전에 몰아치는 가정환경조사서에 매번 두드려 맞았다. 종이 한 장을 붙잡고 한 시간 동안 고민한 적도 있었다. 선생님한테는 사실대로 얘기해야 하나, 가정환경 상중하는 왜 스스로 체크하라 하는지. 뭐라도 집에 도움이 될까 싶어 '하'에 체크하고 난 뒤로는 교실 문 앞에서 대놓고 불러대는 담임선생님 덕에 한참을 후회했다. 그냥 '상'이라 할 걸.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면서도 친구들이 눈치챌까 담담한 척 교실 문 앞을 나섰다. 아직은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말할 때가 아니구나. 단단해져야지. '당당'이 아닌 '단단'해진다는 건 마음의 표면만 설익게 하는 일이었다. 날 것의 사실에 펀치 맞고 싶지 않았다.
나도 속아 넘어갈 정도로 모르는 척 연기하며 넘어가 보자. 어색해서 삐걱대던 초반과는 다르게 점점 농익어 가는 연기 덕분에 상대들은 다행히 나를 '평범하다' 여겼다. 특별하게 쳐다보지 않는 남들의 시선과 태도, 거기서 오는 편안한 안락함이 좋았던 나는 거부감 없이 아빠의 이야기를 거짓말로 받아칠 수 있는 '생활 복서'를 선택했다. 소위 말하는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우연일까.
나는 매년 교실에서 어린 생활 복서들을 만났다. 올해 만난 거짓말쟁이 11살 수영이도 지금 링 위에서 치열하게 상대를 맞이하는 중이었다. 교실에서, 복도에서, 학원에서, 놀이터에서. 수영이는 밖에서와는 달리 집에만 오면 말이 없어진다며 수영이 엄마가 걱정을 했다. "(생활 복서도 쉴 틈은 있어야 할 테니) 아 그렇군요." 이번엔 내가 두 손을 포개어 눈을 내리 깔았다.
"어머니, 수영이에게 맡겨 주세요. 수영이를 믿고 시간을 주세요."
생각에 잠긴 수영이 엄마와 나.
'어머니, 사실 저도 그랬어요. 수영이에게는 그냥 시간이 필요해요. 준비를 할 시간. 선택을 할 시간.'
목 끝까지 차오른 마지막 말은 전하지 못했다. 교사의 말일까, 교사의 탈을 쓴 나의 말일까, 저울질하는 동안 아무 말 없이 10초가 흘렀다. 내년 여섯 번째 꼬마 거짓말쟁이를 만나면 말해주리라. 서른이 넘어도 '당당 이 아닌 단단'을 선택한 내가 웃겨 순간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내가 겪은 사회에서 '당당'이 내세운 무기는 오직 내 몸 하나였다. 어떤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매서운 사실에 맞아가며 맨 몸을 내보이라 했다. 학교가 그러라 했고 안타까워하는 엄마가 늘 그랬다. 기죽지 마라, 당당해라. 아빠가 없는 건 흠이 아니다. 그런 '당당'이 싫었다. 그게 솔직함이라면 찢어버리고 싶었다.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런 전제보단 드러나는 '거짓말'을 더 손가락질했다. 더 나쁘다고 했다. 난 아무도 제대로 모르는 나를 보호해야 했고 그게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지켜줄 수만 있다면. 그깟 거짓말 좀 이용하면 어때, 어린 나와 꼬마 수영이가 더 중요했다.
수영이 엄마는 아직 코가 시큰 거리는지 입술만 연신 깨물었다. 꽉 찬 침묵 뒤, 다음 상담할 학부모가 문을 두드리자 아리송한 얼굴로 수영이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담을 끝으로 수영이를 마음에 남겼다.
다음날 아침, 수영이 얼굴을 살폈다. 평온했다. 이제 매일 수영이 얼굴을 습관처럼 살필 듯하다. 따로 부르는 일은 없을 테고, 그저 수영이가 부지런히 다듬고 있는 자기만의 세상을 조용히 지켜보고 기다리고 싶었다.
"가끔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지."
곳곳에 숨어 있는 꼬마 거짓말쟁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면 당당한 사실보단 너를 보호할 단단한 거짓말을. 부담된다면 멈춰가도 돼,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누구보다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지요?"
수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