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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랑 Nov 24. 2021

겨울이 당신의 마음만은 얼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겨울 속에서 살아가는 모두에게


겨울은 예기치 못한 시각 갑자기 찾아온다. 어느 때와 같이 겨울은 아직이겠지 긴장을 늦춘 채, 가벼운 옷차림으로 외출을 나섰다가 대문을 나서자마자 옷 속을 파고드는 서늘하고 차가운 공기에 소스라치게 놀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이미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기엔 너무 늦었다. 그렇게 원치 않게 겨울의 시작을 온몸으로 맞이하였다. 겨울은 돌아온 걸 환영하며 반가워하기엔 꽤 냉정한 친구다. 인정사정없고 이기적이다. 노크도 안 하고 온 손님이 집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밥부터 내놓으라는 것처럼. 굉장히 당당한 태도로 갑자기 찾아와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이젠 자신의 차지라며 떠나기 싫으면 나보고 자신에게 다 맞추라 한다. 온몸을 덜덜 떨며, 겨울의 협박에 쉽게 굴복하고 말았다. 펭귄 한 마리처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주는 어깨마저 무겁게 만드는 롱 패딩을 꺼내던지, 불편하지만 옷을 겹겹이 껴입던지, 당분간 집에서 방콕을 하던지. 원치 않아도 겨울을 맞이한 지금, 이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겨울나기를 할 준비를 해야 한다. 결국 나오자마자 얼른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인생의 겨울도 예기치 못한 시각 갑자기 찾아온다. 누군가의 겨울은 생각보다 길기도 하고, 누군가의 겨울은 짧기도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겨울이 서늘하고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같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인생의 겨울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낀다. 그렇게 겨울은 의도치 않게 모두에게 다른 흔적을 남기고 또 다른 계절이 다가오면서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진다.





나는 내 기준에서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난 마음속에 있는 것을 온전히 그대로 전달하는 것에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외로움을 더 느끼곤 했다. 특히 대화를 할 때면 더더욱 그랬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것을 딱 내 마음만큼 온전하고 완벽하게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무언가 말하기에 앞서 나의 마음과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어서 애써서 생각을 정리했고, 상대가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마음 상태인지, 상대의 환경, 서로의 관계, 신뢰도, 애정 상태 등 모든 상황을 고려했다고 느껴질 때야 조심스럽게 말을 꺼낼 때가 많았다. 하지만 많은 고민 끝에 말을 꺼내도 내 마음이 완벽하게 전달되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있었고,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째서인지 실제로도 그런 일은 종종 있던 것 같다. 또 상대가 오해를 하든 오해하지 않든, 생각을 많이 하고 꺼낸 말인데도, 말을 하다 보면 마음에 있는 것들과 전달하고 싶은 의도와 전혀 다른 표현들이 나올 때도 있었기에말을 뱉고 나서 스스로 후회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 시간과 정성을 들여 오랜 고민을 하고 말을 뱉는다 해도 결국 내 마음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건 오롯이 상대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말을 하다 보면 상대의 반응이나 주변의 분위기, 내 감정의 변화 등 고려하지 못했던 것들을 직면해서 전혀 다른 말이 나오게 될 때도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너무 고민을 하지 말고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라면 솔직해지자 주의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말하는 것은 아직도 참 어렵다. 마음만큼만 표현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서 상대의 마음을 잘 얻어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에겐 그런 재주가 없나 보다. 그래서 어느 순간 말 잘하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말을 잘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난 겨울을 마주하고는 얼음장같이 새파래진 얼굴로 온 몸을 덜덜 떨며 당황하는 것을 보았을 때다. 그런 상황을 직면할 때면 당황한 나는 놀란 마음에 뭐라도 말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을 느끼고, 애꿎은 사람을 혼낸다. 왜 몸을 떨고, 그토록 당황하냐며 겨울은 그렇게 무섭고 차가운 게 아니라고. 곧 지나갈 거니까 당황하지 말고 그런 두려운 표정 짓지 않아도 된다고. 잘 버티면 곧 봄이 온다고. 겨울을 피하려고 방콕을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니 마주하고 이겨내야한다고. 행여나 당신의 겨울에 우리의 온도를 빼앗길까 긴장을 늦추지 않은 걸까. 겨울 속에 휩싸인 처음 본 모습의 당신을 마주하고 놀란 걸까. 아니면 그 추위에 위압감을 느꼈을까. 나의 입은 원하지 않는데도 내 마음과 달리 쉴 틈 없이 움직인다. 처음 말이 충고의 어조로 시작하면 원하지도 않고 생각지도 않던 충고로 이어지고, 혼을 내며 하지 말아야 할 잔소리를 하고, 마음에도 없는 핀잔을 준다. 그리고 그 몹쓸 말들을 뱉으며 나는 되려 심해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버린다. 내가 건네고 싶었던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내던져진 무책임한 언어들만큼 후회로 마음이 그득해진다. 뱉었던 말들을 모조리 다 주어 담아 다시 내 입 속으로 넣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든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난 이런 상황일 때 되돌릴 것이다.


사실 나는 갑작스러운 겨울을 마주한 사랑하는 당신이, 꽁꽁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냉정하고 혹독한 겨울을 서서히 닮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무서웠다. 당신의 따스함을 앗아가는 겨울에 분노했고 그 겨울의 위력에 당신을 잃을까 두려웠다. 그리고 겨울과 비슷한 것을 보기만 해도 새파랗게 질려가는 얼굴을 하는, 두려워하며 당신의 인생이 영영 겨울일 거라며 절망하는, 그 속에 갇혀 나올 생각이 없는 당신을 보며 마음이 아팠고, 슬펐고 무기력함을 느꼈다. 날 선 추위처럼 날이 선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아직도 내 눈에는 너무나 따스한 봄인, 당신이 그리웠다.


나는 그런 마음들을 모두 모아 모아 당신에게 예쁘게 전달해주고 싶었는데,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한 나는 당신의 겨울을 무시하는  같은 가벼워 보이는 언어들을 내뱉고는 오랜 기간 마음이 쓰렸다. 겨울 속에서 꽁꽁 차갑게 얼어버린 상처 받고   당신의 마음을  얼려버린, 나의 오만함과 지혜 없음을 당신이 용서해주기를 이기적이게도 간절히 바랬다.


겨울 속에 살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완벽한 봄 같은 사람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에게도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그런 걸까. 혹독한 추위를 버텨온 기억들, 냉정하고 잔인할만큼 날 선 추위가 마음을 후벼 파던, 그리고 눈보라 치며 모든 것을 얼리려 덤벼드는 겨울 속에서 처음엔 그 속에 갇혀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그 겨울을 이겨내지 못해 날 선 얼음 한조각으로 변해버린 마음들을 바라보며 정신이 번뜩 들었다. 절대 겨울 속에 마음을 빼앗겨, 날 선 얼음 한 조각이 되지 않으려, 꽃 한 송이를 피워내려 온 마음과 정신을 쏟았다. 나에겐 그 고통스러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겨울 속에서 살아가던 그때의 나는 인정사정없이 강하게 불어오는 칼날 같은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많이 아팠고 고독했다. 그리고 겨울 속에 갇혀 있을수록 많은 사람들을 쉽게 오해하고 미워했고, 판단하며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사람들을 내 마음에서 지우는 벌을 주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멀어지는 여유 없고 오만하고 나약한 사람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겨울을 맞이한 당신을 보며 때로 두려웠다. 추운 겨울 속을 살아가는 당신이 나의 언어와 마음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수많은 오해들을 으레 미리 짐작하며, 그것들로 인해 혹여나 우리가 멀어지는 것이. 나는 늘 당신의 겨울을 바라보는 것이 고통스럽고 아슬아슬했다. 겨울에 당신을 빼앗겨 당신을, 우리를 잃을까봐 나는 늘 불안했다.



그 불안한 마음이 당신에게 그러한 언어들로 전달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 마음들이 당신에게 닿아 겨울을 두려워하며 추위에 고통스러워하던 당신을 따스하게 안아주지만 못한 나의 지난날을 가엽게 여겨주기를, 추운 날이 돌아온 것을 핑계 삼아 글을 남겨본다.


나에게 당신은 겨울보다 강한 사람이다. 당신은 당신이 겪고 있는 강추위를 쉽게 감당할  있을 만큼,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따뜻한 기운을 지닌 사람이다. 당신의 웃는 모습은 세상의 모든 겨울을 녹여버린다. 당신은 나의 겨울을 견디게   사람이다. 우리의 겨울은 따사로운 봄이 오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잊히듯이, 그렇게 쉽게 잊힐  있을 것이다. 나에게  겨울의 흔적이  속에서 피어난 한송이의 꽃으로 남은 것처럼,  훗날 당신의 겨울도 결국 그러한 흔적으로만 기억될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우리의 겨울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낄  있다. 겨울은 우리 인생의 주인공이 결코   없다. 모든 것을 얼려버릴 만큼 매서운 겨울이 와도 당신 인생의 주인공도 당신이고, 겨울 또한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이 원하는 대로 겨울은 변할  있다. 그것은 완벽히 통제 가능하다.


겨울이 당신의 마음만은 얼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겨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추위를 견디며 떨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미 지나간 겨울을 두려워하는

아직 그 잔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누군가에게

겨울로 인해 얼어버린 마음을

조심스럽게 호호 불어주며 어루만져주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바칩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당신의 따스한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은 갑자기 찾아오는 불청객 같은 인생의 겨울마저 사르르 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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