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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나 Apr 21. 2020

오토바이

결국 동생은 오토바이를 샀다. 


4인 가족 중 동생 빼고 다 반대했던 오토바이 구매. 엄마, 아빠, 누나인 나는 오토바이를 타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 물론 이유는 뻔하다. 사고가 날까 봐 걱정이 되어서. 


동생과 나는 20대 중반 즈음부터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자기 갈길을 가느라 바빴다. 사춘기 대신 오춘기인지 육춘기인지 모를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왔다. 아직도 지나가지 않은 것 같은 동생과 나의 자아 찾기. 


부모님이 반대하는 진로로 바꿈. 

부모님이 반대하는 뭔가를 하러 집을 나감.

부모님과 울며불며 대판 싸우기를 여러 차례.


"내 알아서 할게!"

"내 쫌 나뚜라고!"


우리 둘이 각자의 삶에서 전쟁을 치르며 했던 말들. 두 살 터울의 동생과 나는 방황의 시기가 어느 정도 비슷하게 맞물려서인지 서로 암묵적인 동맹을 맺었다. '서로에 대해서만큼은 터치하지 말자. 부모님과 싸우기도 바쁘고 힘들어 죽겠는데 너와 나 사이까지 그러면 피곤하지 않겠니?'와 같은. 설거지 하나 안 하는 것으로도 물어 뜯고 싸우던 우리는 '진로, 하고 싶은 것, 살고 싶은 방향'에 대해서 터치하지 않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요리? 그래 일해봐. 안 하겠다고? 그래 하지마라.

캘리그래피, 네일아트? 그래 재미있으면 배워라. 니돈 주고 네가 배우겠다는데.

격투기? 음.. 안 다치게 하면 되지.

등등. 


두세달 전즈음 엄마가 동생에게 비밀이 생겼다 해서 몇 달을 물어봤는데 답을 얻지 못했다.

대구, 부산 떨어져 살고 있는터라 말해주지 않으면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연애하나? 그러걸 말할리가 없는데.. 또 뭐 이상한거 배우나? 뭐지? 


그러던 어느 날 가족 단톡 방에 오토바이 면허증 사진이 띄워졌다. 

엄마는 동생이 오토바이를 배우는 것은 허용하되 타지는 말라했다면서 천진만만하게 면허증 딴 것을 알렸다.

이 무슨 말인지 원.. 어쨌든 기본적으로 걱정량이 많은 우리 가족에게는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동생의 선택은 네일아트 시험 모델이 되달라고 할 때만큼 뒤통수 맞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세뇌시키듯, 주문을 외듯 동생과 대화마나 하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안된다. 오토바이는 사고가 나면 진짜 큰일 난다더라. 어쩌고 저쩌고.. 말하면서도 동생이 귀뚱으로도 안 듣고 있다는 걸 느꼈다. 저.. 오토바이를 구매하겠다는 동생의 의견에 대해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하자는 엄마의 제안이 띄어졌다. 보나마다 전체 반대인 그 회의를 동생이 할리가 없었다. 동생은 내 일이니 냅뚜라고 했다. 


그렇게 이삼주 지났을까. 당장 돈이 없어 오토바이 살 돈을 먼저 모으고 있다는 동생 소식을 들었다. 나는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오토바이는 진짜 너무 위험하다고 말하기를 또 반복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동생이 대구에 오토바이 시장이 크게 있어서 여기 와서 사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 지나 동생이 대구로 왔고, 아빠, 엄마, 동생은 오토바이 구경을 하러 갔다. 동생이 오토바이 면허증을 취득한 것만큼이나 의아했다. 그렇게 반대하던 부모님이 어느 새 동생 오토바이 구경을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바로 구매를 했단다. 


코로나 19로 부산에 가지 못해 아직 오토바이를 보지는 못했지만 동생은 거의 매일 일을 마치면 동네를 돌거나 부산 곳곳을 다닌다. 카톡방에 광안리 사진을 띄우면서 오토바이 타고 나왔다고 말하면 나와 아빠는 전화를 걸어 집에 잘 도착하면 톡 하나 넣으라고 한다. 엄마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아들의 오토바이를 빠른 시일내에 허락할 줄 알았지만 아빠는 왜 오토바이를 사러 갔을까? 아빠가 없을 때 엄마가 말했다. "아빠는 걱정이 너무 많아서 그 걱정만큼 못해 본 게 너무 많더란다. 아들도 걱정으로 미리 안 해볼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같이 가서 튼튼한 거 고르게 해야겠다고."


이해가 됐다. 안타깝기도 했다. 많은 걱정은 때로 내가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무언가를 처음부터 앗아가기도 한다. 그러다 누릴 수 있다는 것조차 잊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 미묘한 감정을 나도 좀 알 것 같았다. 우리의 허락과 상관없이도 동생은 오토바이를 사서 탔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도 몇 달, 몇 주를 계속 "오토바이를 탈 거다. 살 거다."라고 말만 하고 바로 사지는 않았다. 우리들이 이해하길 바랐을지도. 


그렇게 동생의 육춘기는 오토바이로 지속되고 있다.

난 뭘 또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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