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 나 괜찮아”

아픈 아이가 건넨 가장 큰 위로

by 킴미맘


린둥이들이 독감에 걸렸습니다.

예린이는 39도, 서린이는 40.9도까지 올라갔죠.

체온계 숫자를 볼 때마다 마음이 조용히 내려앉았습니다.


연차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어려워

급하게 돌봄 휴가를 쓰고 며칠 동안 집에서 아이들과 지냈습니다.

집의 풍경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아픈 아이들을 두고 있는 동안에는

어디에도 평온함이 머물지 못했습니다.


서린이는 열이 높아 거의 누워만 있었습니다.

먹는 것도 힘들어했고, 말하기도 버거워 보였습니다.

작은 손이 축 늘어진 모습이 평소와 달라

마음이 더 무거웠습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물수건을 갈아주고, 뜨거운 이마를 살피고,

옆에서 조용히 아이의 호흡을 지켜보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서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켜준 아이가 있었습니다.

예린이는 제 곁에 얌전히 앉아

유튜브를 보며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평소처럼 놀아달라고 떼쓰거나 장난감을 찾거나

저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던 모습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아마 예린이도 몸이 힘들었을 텐데,

그날만큼은 놀라울 만큼 차분했어요.

말하지 않아도 동생의 상태를 느끼고,

지금은 자신이 조금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그런 마음을 내어준 것 같아

한편으로는 짠했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기특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껏,

보고 싶은 만큼 유튜브를 보게 해 주었습니다.

그건 단순한 허용이 아니라

예린이가 보여준 마음에 대한

작은 감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두 아이 곁을 지키다 보니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미안함과 걱정과 무력한 마음이

조용히 한 선을 넘어 밀려온 탓이었습니다.


그때 서린이가 천천히 눈을 뜨더니

쉰 목소리로 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엄마… 나 괜찮아.”


그리고 뜨겁게 달아오른 손으로

제 얼굴을 살며시 만지며 또 말했습니다.


“엄마 아야 했어?”


아픈 아이에게 듣는 위로는

어떤 말보다 깊고 오래 남습니다.

순간 마음이 크게 흔들리며

얼마나 미안하고, 고맙고, 벅찼는지

아이 앞에서 한참을 울고 말했습니다.


며칠 동안 두 아이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편히 이루지 못하면서도

작은 힘으로 묵묵히 견뎌주었습니다.

밤마다 뒤척이며 눈물 맺힌 얼굴들을 살펴보던 시간들이

아직도 또렷합니다.


그리고 오늘,

조금씩 기운을 차린 아이들이

다시 밥을 먹고,

어린이집으로 향했습니다.

아침잠을 못 이겨 엄마품에 안겨서 갔지만

선생님을 보더니 바로 안기는 서린이,

배고프다고 양손에 뻥과자를 잔뜩 쥐고 가는 예린이,

아주 평범한 장면인데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도가 길게 숨처럼 흘러나왔습니다.


아픈 시간을 지나오면

아이들은 또 한 번 자라는 것 같습니다.

그 곁을 지키는 엄마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요.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바라보며

하루를 채우는 순간들이

그렇게 조용히 쌓여 갔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아마도 이 며칠 동안 제 안에서

말없이 차올랐던 감정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은 늘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잘 견뎌 주었는데,

저는 그 옆을 더 가까이 지켜주지 못했던 날들이

불쑥 떠올라 마음이 시큰했습니다.

일하느라 놓쳤던 순간들,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던 작은 표정들이

이 며칠 동안 선명하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아픈 몸으로도 제 얼굴을 쓰다듬고,

“괜찮아”라고 먼저 말해주었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맙고,

또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모릅니다.


아이들도, 저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 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일하는 엄마이고,

그래서 더 자주 미안한 엄마이지만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단 한 번도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옆에 있기만 해도 좋다는 듯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그 손길 덕분에

오늘도 저는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두 아이의 엄마로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 미안하고,

많이 고마운 마음으로

함께 자라며

오늘을 넘깁니다.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