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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Aug 21. 2019

외국에서의 한국인 사회, 그 혼란

나이에 따른 호칭

한국사회에서 나이라는 건 참 묘하다. 처음 만나면 몇 살이냐고 물어보고, 언니와 동생을 정하게 된다.


참 헷갈린다. 한 살 많으면 언니인 건가? 그러면 만으로 나이를 정하는 호주의 경우, 어쩔 때는 동갑이다가 어쩔 때는 한 살 많아질 수 있는데...


반말이랑 존댓말도 헷갈린다. 어른들께는 존댓말을 해야 하고, 처음 만난 사람들한테도 존댓말을 해야 하는데, 누가 어른이고 누가 어린이지?


호주 사회에서 자란 나는, 한국인을 접할 일이 많이 없었다. 미리 말하자면, 호주에서는 나이를 묻는 게 보편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멜번대에 다니게 되면서 만난 한국 친구들이랑도 나이를 묻지 않았고, 그래서 서로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이름을 부르는 게 자연스럽다고 여겼다.


나중에 친구들이 나 보다 어리다는 걸 알게 됐다. 다들 월반을 해서 나보다 한 두 살 어린애들이고, 내 남동생이랑 동갑인 아이도 두 명이 있었지만 난 별 생각이 없었다. 우리 그룹의 특징은 영어랑 한국어를 섞어 쓰는 거라 영어 발음을 살짝 섞어 "줄리아~"라고 부르면 그냥 영어인걸 뭐. 오히려 이렇게 하면 나도 편하고 너도 편하고 모두 다 편하다고 생각했다. 언니 동생 이런 호칭 정리해야 한 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이 아이들을 따라 한인회에 발 디디게 되었고,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한국 아이들을 만났다. 나랑 비슷한 음악 취향과 추억, 그리고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랑 논다는 건 즐거웠고, 점점 한국인들과 노는 걸 즐기게 된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인들이랑 더 만나고, 영어 대신 한국어로 대화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나는 호칭이 혼란스러워졌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호칭 정리하는 법을 잘 모른다. 그냥 나보다 나이 많으면 언니고, 나이가 어리면 동생이거니, 했다. 그런데 우리 과는 나이와 학년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참 헷갈린다.


예를 들자면, 나는 고등학교 3년을 제시간에 마치고 재수를 하지 않고 바로 대학교에 들어왔다. 나랑 같이 노는 친구 중 한 명은 나보다 한 살 많고, 한 명은 나랑 동갑이고, 한 명은 한 살이 어리고, 나머지 두 명은 두 살이 어리다. (어린 세명은 월반을 한 경우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부른다.


우리 중에서는 호주에서 태어나거나 어렸을 때부터 자라난 아이들이 많아서 이런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유학생 친구들이랑 섞이게 되면 한국식 호칭을 따른다. 그런데 한인회 모임에 나가다 보니, 내 친구한텐 사랑스럽게 언니라고 불러주면서 왜 나한테는 언니라고 안 불러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좀 서운하기도 하고, 이런 사소한 거에 서운함을 느끼는 게 창피했다.


내가 방금 한국에서 온 한국인이었다면, 나이에 따라 호칭이 달라지는 게 당연했을 거고, 따라서 그걸 요구했을 것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언니라고 안 부르는 게 이상한 것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선생님이나 교수님한테도 이름을 부르는 게 익숙한 문화에서 자라서, 그런 걸 요구해도 되나? 내가 사소한 거에 집착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유치하겠지만 생각을 거듭해도 언니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언니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했다. 나랑 같이 다니는 친구이자 어린 동생(?)인 애들한테 은근슬쩍 말을 흘렸다. 언니라고 직접적으로 불러달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워서.. ㅋㅋ 그런데 애들이 나를 이름으로 부르는 게 너무 익숙해서 언니라고 부르기는 어색하다고 했다. 실 내가 생각해봐도, 계속 언니 언니 하는 이 애들을 상상해보면 어색하고 오글거리기는 하다.




"난 언니라는 호칭에 걸맞은 사람이 맞을까?"


한인회에서 언니들은 정말 언니 같은 행동을 한다. 책임감 있고, 솔선수범하고, 멋있다. 내 친구들에게 나는 과연 언니 같은 사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 있던 한국 책을 좋아라 해서인지, 나름 한국의 문화를 잘 안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국사람들과 부대끼며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책으로 접하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정말 다르구나, 실감하게 된다.


호칭처럼 기본적인 것도 두 나라는 참 다르다. 친해지면 무조건 이름을 부르는 호주와, 예의와 순서를 따지는 동방예의지국 한국.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호주는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와 친해질 수 있고, 한국은 나이 많은 분들을 공경하는 마음이 뛰어난 나라다.


호주에서 자라난 나에겐,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문화가 더 익숙하고 좋은 것 같다. 누구의 나이나 직업으로 존경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고 존경할 수 있으니까. 나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만 친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과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너무 좋다.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의 끈끈한 무언가가 좋기도 하다. 선배-후배의 관계, 언니-동생 같은 것 말이다. 힘들거나 벅찬 일이 있으면 달려갈 수 있는 든든한 언니, 그리고 내가 아껴줄 수 있는 동생. 막연한 상상을 해본다.




대학교에서 나는 한국 사람들과 부대끼며 호주라는 배경에서 살아간다. 한국인인지, 호주인인지, 어떤 정체성도 확립되지 않은 나로서는 조금 헷갈리고 버겁기도 하다.


이번 고민을 하며 느꼈다. 내가 언니라는 호칭으로 존경이나 대우를 받는 것에 앞서, 나 자체로 멋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변하고 싶다. 친근하게 다가오시지만 멋있고 연륜 있으신 대학교 교수님들처럼, 그렇게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도 그 호칭에 관한 문제의 정답은 잘 모르겠다. 언니가 되고 싶기도 하고, 친한 친구가 되고 싶기도 하다. 나는 언니이지만 친구고, 호주 사람이면서 한국사람이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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