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클했던 하루
정말 뜬금없지만, 동상에 걸렸다.
호주는 한국처럼 그리 춥지도 않고, 영하로 내려간 적도 없다. 항상 영상 2-8도에 머무르는 나름 따스한 겨울 같은 가을철인데, 보일러를 켜지 않아서인지 방 안이 오히려 춥다.
호주 사람들은 추위를 잘 견디기에, 보일러가 덜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인지 거실에 아빠가 설치한 전기장판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자고 노는 게 코로나 록다운 속 내 일과다.
하지만 내 방은 좀 다르다. 좀 많이 추운 편이어서 전기히터를 켜놓아야 한다. 하지만 전기히터는 부분적으로만 따뜻하게 하는 부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 몸은 매우 따뜻해지지만, 손 발은 차가운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어느 날 새끼발가락이 퉁퉁 붓고 빨개지기에 벌레에 물렸나,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몇 날 며칠이 지나고 증상이 옆의 발가락을 서서히 잠식해 엄지발가락에 닿기에 이르자,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흘낏 보더니, 동상 아니야?라고 말하셨다. 항상 영상의 온도에 머무르는 호주에서 뭔 동상이라며 나는 무시했다.
그런데 웬걸, 의사 선생님께서도 동상이라는 것이다! 아니, 동상은 섭씨 마이너스 20도인 남극에서나 생길 일 아닌가?... 차가운 마룻바닥에 맨 발로 다니면 동상에 걸릴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양말을 신으라던 엄마의 잔소리에도 양말 없이 집 안을 활로 하던 나의 말로다.
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발을 데운 후, 양말 두 켤레를 겹쳐 신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게 아마 새벽 두 시였을 것이다.
자기 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아빠가 슬며시 문을 두드렸다. 내 침대에 걸터앉아 아빠는 코로나에 관한 얘기를 조금 하더니, 심각한 얼굴로 동상에 대해 물었다. 내가 아프다 투정 부리자, 아빠는 이내 차가워진 내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꽤나 진지한 모습이셨다. 통증의 원인인 발가락을 따뜻하게 데우기도 하고, 발이 움푹하게 파인 곳도 시원하게 꾹꾹 눌렀다.
옛날에 아빠가 장난으로 발을 간지럽히면 온 몸을 뒤틀고 발을 찰 정도로 간지러웠는데, 지금은 간질간질할 뿐 아무렇지도 않았다. 세월이 가져온 무뎌짐이 새삼 신기했다.
이 상황이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내가 효도 차원에서 아빠 마사지를 해 드려야 하는 게 아니냐고 내가 물었다. 아빠는 배가 불러서 잠이 안 와서 그런 거라며 걱정 말라고 하시며, 계속 내 발이 따뜻하게 발 마사지를 해주셨다.
거진 한 시간은 계속 그렇게 있었던 것 같다. 아빠는 계속 발을 만져주시고, 우리는 계속 대화하고 수다를 떨었다. 뭔가 특별한 얘기를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흘러가는 삶에 대한 얘기, 어떻게 지내는지 신변잡기 등... 머릿속에 기억나는 얘긴 별로 없지만, 아빠의 그 따뜻한 온기가 계속 맴돈다.
어릴 적에도 발이 차갑거나 소화가 안 될 때 부모님께서 손 발을 조물조물 만져주셨는데, 그런 어렸을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내가 이제 스무 살에 접어들어 성인이 되었다지만, 아직은 아빠 눈에 애긴가 보다. 나도, 또 나름 다 컸지만, 부모님 앞에선 어리광을 피우고 싶어 진다.
부모에겐 자식이 항상 아이라는데, 정말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