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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강 Oct 27. 2024

이쪽 길로 가야 해요

나는 종종 점집에 간다. 내 돈 주고 신점을 보러 다니기에는 너무 비싸다 보니 블로그 체험단을 통해서 방문하고는 한다. 이전에는 무속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무당을 만나보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점집을 다녔다. 지금은 순전히 재미로 다니고 있다. 복채가 5만 원 대였던 시대를 지나 10만 원은 우습고 15만 원까지도 올랐다. 시급은 잘 오르지 않는데 복채는 왜 이리도 훌쩍 뛰어버리는지.


점집이든 철학관이든 타로집이든 가면 자주 듣는 말은 “남의 말을 안 듣는다.”였다. 고집이 세서 앞에서는 남의 말을 듣는 척하다가 뒤에서는 자기 주관대로 행동하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자주 듣는 말은 “이쪽 길로 가야 해요.”라는 말. 이쪽이라고 함은 무당이 되는 길을 말한다. 


민속학과를 나와서 무속신앙에 매료되어 공부를 하던 때가 있었다. 무속전문박물관에서도 기간제 학예연구원으로 일을 하면서 좀 더 많은 무당들을 만나고, 전보다 무속에 대해 깊이 알 수 있었다. 이때도 찾아온 무당들은 내게 “(신)제자를 많이 두겠다.”, “천신의 제자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내게 신령님이 와 있다는 걸 알게 된 계기는 우연히 신점을 보러 갔을 때였지만, 내가 느꼈던 건 비교적 최근에 꿈을 꿨을 때였다. 산신할아버지로 보이는 흰머리에 흰 수염, 흰옷 차림의 할아버지가 호랑이와 함께 나타났다. 이윽고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은 쪽진 머리의 여성이 나타났다. 대신마누라였다. 나는 이 두 신령을 알아차리고 또 얼마 되지 않아 꿈을 꿨는데 산신할아버지와 대신할머니가 왼편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편한 표정은 아니었고,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지켜보았다. 나는 선잠에서 깼다. 


최근에도 점을 보러 다녔는데 무당마다 말이 다 달랐다. 신을 받을 거라면 빨리 받으라는 말, 나는 신내림은 안 받아도 된다는 말, 34~35살 정도가 되면 신을 받을지 안 받을지 판가름이 날 것 같다는 말 등을 들었다. 이 중 신령님들이 내가 게으르다고 생각해서 간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한 무당도 있었다. 게으르다는 말에 정말 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는 나를 부지런하다고 하지만 나 자신은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무당이 되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신령님에게 끊임없이 기도를 해야 하고, 신부모 밑에서 신의 제자가 되는 길을 배워야 하고, 점사도 봐야 하고, 쓰지 못한 많은 일들이 있다. 이런 일들은 쉽지 않다. 나 역시 그들의 경험을 다 해보지는 못했지만, 전공으로 배워봤고, 어깨너머로 보기도 했지만 정말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의 길을 가려한다.


나의 길이라 하면 어느 길이야. 일상을 살아가는 일이다. 내가 직업으로 택한 법률사무원의 일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나서고, 도전하고 부딪히는 것. 정말로 내가 무당이 되어야 한다면 나의 삶은 송두리째 바뀔 것이다. 그때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아보고자 한다.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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