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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호 Mar 07. 2021

자격지심

[100일의 긍정에 대하여], 95일 차

어느 누구도 본인이 자격지심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정하는 편이 마음이 나아지는 편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일을 만드느니, 차라리 숨어버리거나 죽어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사람들 투성이니까.


논외의 이야기지만, 인스타그램에도 잘되는 꼴들만 올리고 싶을 뿐이다. 물론 나도 그렇지만. 그리고 잘되는 꼴들만 올린 그들을 보며 부러워한다. 그 사진이 나오기까지의 수많은 과정들이 있었을 거라는 추측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간에 그 시간과 그 노력을 할 만한 여유가 있었다는 게 부러울 뿐이지. 그렇게 또 내가 그들보다 덜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된다. 바보처럼.


사실 지금 당장이 제일 중요한 듯하다. 예전의 내 모습이 어땠는지와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떤지는 조금 다른 이야기인 듯하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부족했던 자신을 인정하거나 흘려보내는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타인이 꺼냈을 때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심지어 자신을 질투한다고까지 생각한다. 전혀 그렇게 말한 것 같지는 않은데.


잘 돼서 다행이라고, 잘 돼서 너무 기쁘다는 말이 자격지심을 품은 이에게는 시기 질투로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자격지심 많이 해봤으니까. 굳이 왜 그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다른 이야기 하자고 몇 번을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한 치 앞만 본다면 버럭 화를 냈을 것이고, 그래도 몇 수 앞을 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던 나이기에 그때의 나를 단순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주던 그이들을 잃지 않고 아직도 함께하고 있는 듯하다.


누구나 힘든 날은 있다. 단 하루라도 있을 것이다. 좋은 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나쁜 날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그렇지만 그 힘든 날도 제대로 된 나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힘든 상황일 수밖에 없었던 나의 상황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긍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못난 모습을, 그리고 그것이 지났기에 지금은 그렇지 않은, 그런 부족한 모습도 결국은 예전의 나였고, 그 예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는 생각을 나 자신이 진심으로 이해했을 때, 정말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먹는 것이 힘든 일이기에, 그저 그 괴로운 자격지심은 그저 누구에게나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95일 차의 어제, 그런 의도의 말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된 일을 목격했고, 95일 차의 오늘은 그게 어쩌면 사소한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지금 그 사람은 정말 잘 됐고 그리고 나는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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