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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호 Jun 25. 2021

흐르는 시간을 속절없이 마주한다는 것은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12장

주름이 생겼다. 목주름이다. 내 또래 친구들이야 벌써 생겼다며 부러운 소리 하지 마라 하겠지만(은근슬쩍 동안이라는 사실을 자랑해본다), 나는 이제야 내 피부 간 옆집을 마주하게 한 거다. 살갗 한 집의 바깥과 바로 옆집의 안쪽이 마주 보는 일, 그것이 주름이다. 어쩌면 주름은 세상사에 당연한 일이기도 한데, 전제 조건이 있다면 나이가 들었다는 점이겠지.

보통 살이 찌면 사진이 찍기 싫어진다는 말을 한다. 이건 주름이 지는 일에도 유효하다.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미안합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주름 지우는 필터를 가득 채워둔 카메라 어플이 아니고서야 나와 사진을 찍고 싶지 않다며 거절을 그리도 쉽게 하신다. 그러곤 나도 5년, 아니 10년, 혹은 그 사이쯤에 잔뜩 찍어둔 사진을 돌아봤다. 그러면 느끼지, 진짜 어리긴 어렸구나. 신체도 신체지만, 얼굴에 잔뜩 생겨버린 나이 듦의 증거들이 너무나도 분명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그렇다고, 나이 듦이 단순히 '얼굴 주변에 주름이 지는 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듯하다. 다시 꼿꼿이 피어지기 힘든 것, 펴지지 않는 주름, 그리고 그것이 마음에도 지는 일이 나이 듦이리라. 나무줄기 속 나이테처럼 마음의 주름도 주름진 채 펴지지 않겠지. 흐르는 시간을 속절없이 보내면서 겪는 일들, 그 일에서 얻는 많은 교훈들, 그 교훈들이 주름 안쪽에 깊숙이 새겨지는 것들, 우리에게 보이는 그 겉쪽의 주름과 달리 보이지 않는 그 어두운 면의 주름, 그것이 나이 듦의 증표인 셈이다.


"그에게는 아픔이 있다."

이런 말. 살면서 나 자신에게 꽂히는 말은 아닐지라도, 누군가를 향하는 또 다른 누군가의 흔한 말이었을 것이다. 본인이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말이 흔하디 흔한 이유는 우리 모두, 마음속에 지어지는 주름에 대해, 누구나 이해하고 인정하고 인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된 아픔이든 자신감이든 자존감이든, 주름살이 생긴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의 사건에 대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결정짓는다. 내 친구 중 하나는 예전에 지나친 애정결핍에 시달렸다. 자신이 하는 것들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지나치게 고려하고 사랑을 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랑받지 못한 자신이 익숙해져 사랑을 갈구하기까지 이른 거다. 나는 그 친구에게 애쓰지 말라고 했다. 그 친구가 나를 대상으로 왜 이렇게나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알기에, 그것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날 그 친구는 그동안 한 번도 내비치지 못했던 자신의 속마음을 털면서, 나에게 '요즘 정말 힘들다'라고 말했다. - p.s.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다 잘합니까.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냐면, 나랑 마음을 나누고 있는 홍 모 친구가 나에게 GD가 선견지명이 있다며 우스갯소리로 떠들어 댔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는 말을 인용하며, 정말 세상에는 영원한 게 없다는 듯이. 그렇지만 나는 절대 반박했다. ‘아니야. 영원한 건 하나 있다. 나 자신이 쌓아 놓은 것들.' 그것은 겉으로만이 아니라 그저 저 자신에게 쌓여있으니 자연스럽게 그것들이 타인과의 소통이나 자신의 중요한 선택에 영향력을 주고 있다고. 그에게 '아픔'이 있구나 하는 '아픔'이 쌓이듯, 무엇이든지 자신이 쌓는 것들은 그 모양 그대로 쌓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나는 지금 서른이다.


한번 잘된 일로 우쭐하지 말 것, 한번 못된 일로 무너지지 말 것, 주변이 비어도 여기저기 한눈 팔지 말 것, 주변이 흥해도 여기저기 마음 가벼이 주지 말 것, 잘난 일도 망한 일도 지나버린 것뿐 내일도 똑같이 그럴 거라 단정 짓지 말 것, 그냥 지금 당장을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최선을 다할 것. #중속 (20200805, 내가 쓴 글)


나는 서른이 된 지금의 내가 정말 좋다. 요즘 나는 서른이 된, 그 사실 하나로 행복해하는 중이다. 벌써 반기가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고작 '서른이 된 일' 가지고 아직도 행복해하고 있네 할 수 있겠지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의 20대는 시행착오다. 그 시행착오를 끝으로 시작된 나의 서른, 그것은 시간이 만들어준 시련의 끝이자 홀가분한 시작인 셈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들을 늘어놓고 있는 내가 민망하지만, 이 당연한 이야기를 그때그때는 서러운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우리가 딱하다. 우리는 그저 쌓고 있고, 쌓아 두었는데, 그저 그것이 경력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저 그것이 경험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저 그것이 본인만이 생각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인 그런 것들이 아니라, 결국 그것이 정말 당신만 해낼 수 있는 그것이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고 해서 모든 디자이너들이 같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20살의 나이 듦과

25살의 나이 듦과

30살의 나이 듦이 달랐듯이


40살의 나이 듦과

50살의 나이 듦과

60살의 나이 듦은 다르리라


때마다 주름의 안쪽면을 마주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다. 그저 겉면을 보며 '아 들었구나, 나이가'하는 한숨으로 우리는 우리의 요동치는 감정을,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휘몰아치는 그 감정을 위로하곤 한다. 나의 서른은 스물에서 스물아홉을 꼬집어온 결론으로서 목주름을 얻은 셈이다. 그 목주름을 가지고 우리는 우리만이 해내는 것들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나이가 들었다. 그렇기에 나이 들지 않은 이들과는 다른 나이 든 맛이 있는 셈일 테다. (아 그래 적어도 쌓아 놓은 것이 있으니 다행이다 하는 마음 말이다.) 이 와중에도 쌓아 놓은 커리어가 없다며 다행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제발 그러지 말아 주길 바란다. 분명한 건 당신은 뛰어나니까.


흐르는 '시간'을 속절없이 마주한다는 것은,

결국 내게 쌓이는 '때'들을 불려내는 것이고,

그 '때'가 제대로 쓰일 '때'를 기다리는 것이고,

적절한 때에 '때'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일 테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12장 끝.


이민호 드림

Instagram @min_how_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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