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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호 Jul 01. 2022

나는 그 가엾은 나를 고집할 수밖에 없다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14장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는 시련을 겪는다. 그 시련 모양은 각기 다르겠다. 누군가는 친구의 배신으로, 또 누군가는 가족의 죽음으로, 또 누군가는 사소한 직장 상사와의 다툼으로, 시련이 찾아온다. 저마다 주어진 환경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련이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다. 매번 내가 강조하는 것이겠지만, 그 누구도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을 아무 일도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각자는 각자 자신이 가장 가엾다. ‘가엾다’라. 사전엔 ‘마음이 아플 만큼 안되고 처연하다’라고 쓰여있는데, 그만큼 나는 나를 돌아볼 때마다 내가 아프고, 안되고, 처연하다. 지난 10년간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겠다며 쌓아 온 많은 일들이 뿌듯하고 자부심 넘치고 대견한 것과는 별개로, 그 노력과 결실의 뒷면에는 나의 몸부림과 발버둥과 눈물과 식은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활동들을 바라보는 시선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아닌 이들의 가벼운 조언들, 그리고 지금은 나와는 등진 수많은 손절들이 있었으리라.


나는 늘 말한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 주변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졌다.’ 당장 오늘의 행복을 시작으로, 미래를 조금씩 나눠 가져 간 이들이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주어왔다.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희로애락을 털어놓고 맥주캔을 부딪치던 서른 하나 김 모 친구, 언제 봐도 즐겁고 어디서 봐도 늘 나와 함께 걸어주는 서른 이 모 동생과 구 모 동생, 늘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옆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장난쳐 주는 박 모 친구와 홍 모 친구, 이 모 친구 등등 써 내리지 못했지만 쓰지 못하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로 지금의 나에게 성장을 있게 한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 혹시 당신이 아니라고 서운하다면 서운하다고 해주세요. 이른 아침이라 많이 부족합니다.


반면, 내 과도기로 인해 놓친 소중하고 유능한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준 시련은 - 반대로는 사실 내가 그들에게 준 시련이기도 하다 - 내 온 정신과 온 마음을 헤집어 놓기는 했지만, 그 어지러뜨린 성을 다시 세워 놓을 때는 그 전의 성보다 더욱 단단하고 높게 쌓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내 가치관의 모양을 잡아간다. 자연경관이 드세고 거친 세월의 풍파를 맞아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의 나는 그들의 시련을 맞이한 여럿 경험으로부터 형성되고, 또 단단해진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예전에는 이 말이 참 좋았다. 내가 아닌 그 누군가가 내 상황을 이해하고 내 처지를 이해한다니, 이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 일인가. 그러다 문득 내가 그 누군가에게 ‘그래,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저 그가 그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해내고 있음을 공감할 뿐이었다. 짓궂은 마음이 드는 가끔씩은, ‘그럴 수 있다’라며 공감하는 상대에게 뭐가 그럴 수 있냐고 물어볼 때도 있다. 그 질문에 ‘너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가 너라면 내가 네가 말한 대로, 그냥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어서’라는 대답을 한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게 진짜 ‘그럴 수 있지’의 의미겠다 싶었다. 나의 이야기를 그의 상황이 아닌, 내 상황으로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말이다.


인생곡선 그릴  있다고 한다. 희로애락이 위로 혹은 아래로 번갈아가면서 펼쳐지는 곡선 말이다.  곡선을 오르내리면 만나는 각자의 ‘고집 있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이해할  없는  ‘고집’. 수많은 주변인들이 만드는 시련들을 가시밭길 지나듯  길목이나 지나다 보면, 물컹했던 가치관이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그 고집을 우리는 부릴 수밖에 없다. 가차 없이.


거기까지 올라가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러느라 괜히 나쁘게 굴기도 했을 테고, 못된 말을 하기도 했을 테고. 이모, 그럴 때 있잖아 왜. 원래 되게 마음이 여리고 착한데 남들 이기려고 나쁘고 못 되게 굴어야 할 때. 그래서 마음이 아팠지 내가 오늘. 이쁘고 멋지고 대단한 사람인데 자기가 그걸 모르는 것 같고, 사방에서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 같고, 힘들게 하는 인간만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모진 말만 하는 것 같고. 거기서 꺼내주고 싶고. 아무튼 그래.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로부터)


그러니, 쩔 수 있나. 이 가엾은 나를, 내가 고집할 수밖에. 결국은 나만이 오롯이 나를 이해할 수 있겠구나, 하면서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남들이 가스라이팅을 하든 강요를 하든 잔소리를 하든, 사실상 가장 나를 가엾게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란 말이다.


그러니,

쩔 수 있나.

이 가엾은 나를,

내가 사랑할 수밖에.



오랜만에 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14장 끝.


이민호 드림

Instagram @lukelukeand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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