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14장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는 시련을 겪는다. 그 시련 모양은 각기 다르겠다. 누군가는 친구의 배신으로, 또 누군가는 가족의 죽음으로, 또 누군가는 사소한 직장 상사와의 다툼으로, 시련이 찾아온다. 저마다 주어진 환경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련이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다. 매번 내가 강조하는 것이겠지만, 그 누구도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을 아무 일도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각자는 각자 자신이 가장 가엾다. ‘가엾다’라. 사전엔 ‘마음이 아플 만큼 안되고 처연하다’라고 쓰여있는데, 그만큼 나는 나를 돌아볼 때마다 내가 아프고, 안되고, 처연하다. 지난 10년간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겠다며 쌓아 온 많은 일들이 뿌듯하고 자부심 넘치고 대견한 것과는 별개로, 그 노력과 결실의 뒷면에는 나의 몸부림과 발버둥과 눈물과 식은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활동들을 바라보는 시선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아닌 이들의 가벼운 조언들, 그리고 지금은 나와는 등진 수많은 손절들이 있었으리라.
나는 늘 말한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 주변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졌다.’ 당장 오늘의 행복을 시작으로, 미래를 조금씩 나눠 가져 간 이들이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주어왔다.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희로애락을 털어놓고 맥주캔을 부딪치던 서른 하나 김 모 친구, 언제 봐도 즐겁고 어디서 봐도 늘 나와 함께 걸어주는 서른 이 모 동생과 구 모 동생, 늘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옆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장난쳐 주는 박 모 친구와 홍 모 친구, 이 모 친구 등등 써 내리지 못했지만 쓰지 못하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로 지금의 나에게 성장을 있게 한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 혹시 당신이 아니라고 서운하다면 서운하다고 해주세요. 이른 아침이라 많이 부족합니다.
반면, 내 과도기로 인해 놓친 소중하고 유능한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준 시련은 - 반대로는 사실 내가 그들에게 준 시련이기도 하다 - 내 온 정신과 온 마음을 헤집어 놓기는 했지만, 그 어지러뜨린 성을 다시 세워 놓을 때는 그 전의 성보다 더욱 단단하고 높게 쌓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내 가치관의 모양을 잡아간다. 자연경관이 드세고 거친 세월의 풍파를 맞아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의 나는 그들의 시련을 맞이한 여럿 경험으로부터 형성되고, 또 단단해진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예전에는 이 말이 참 좋았다. 내가 아닌 그 누군가가 내 상황을 이해하고 내 처지를 이해한다니, 이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 일인가. 그러다 문득 내가 그 누군가에게 ‘그래,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저 그가 그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해내고 있음을 공감할 뿐이었다. 짓궂은 마음이 드는 가끔씩은, ‘그럴 수 있다’라며 공감하는 상대에게 뭐가 그럴 수 있냐고 물어볼 때도 있다. 그 질문에 ‘너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가 너라면 내가 네가 말한 대로, 그냥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어서’라는 대답을 한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게 진짜 ‘그럴 수 있지’의 의미겠다 싶었다. 나의 이야기를 그의 상황이 아닌, 내 상황으로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말이다.
‘인생곡선’을 그릴 수 있다고 한다. 희로애락이 위로 혹은 아래로 번갈아가면서 펼쳐지는 곡선 말이다. 그 곡선을 오르내리면 만나는 각자의 ‘고집’이 있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그 ‘고집’. 수많은 주변인들이 만드는 시련들을 가시밭길 지나듯 몇 길목이나 지나다 보면, 물컹했던 가치관이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그 고집을 우리는 부릴 수밖에 없다. 가차 없이.
거기까지 올라가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러느라 괜히 나쁘게 굴기도 했을 테고, 못된 말을 하기도 했을 테고. 이모, 그럴 때 있잖아 왜. 원래 되게 마음이 여리고 착한데 남들 이기려고 나쁘고 못 되게 굴어야 할 때. 그래서 마음이 아팠지 내가 오늘. 이쁘고 멋지고 대단한 사람인데 자기가 그걸 모르는 것 같고, 사방에서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 같고, 힘들게 하는 인간만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모진 말만 하는 것 같고. 거기서 꺼내주고 싶고. 아무튼 그래.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로부터)
그러니, 쩔 수 있나. 이 가엾은 나를, 내가 고집할 수밖에. 결국은 나만이 오롯이 나를 이해할 수 있겠구나, 하면서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남들이 가스라이팅을 하든 강요를 하든 잔소리를 하든, 사실상 가장 나를 가엾게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란 말이다.
“
그러니,
쩔 수 있나.
이 가엾은 나를,
내가 사랑할 수밖에.
“
오랜만에 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14장 끝.
이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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