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9장
내가 믿는 지금 이 순간과, 지금 이 느낌과, 지금 이 직감을 가장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아닌 누구도 나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길 바라곤 한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내가 아닌 누군가의 선택에 태클을 걸길 바라곤 한다. 나의 가치관, 생각, 수많은 선택의 기로를 견뎌온 시간의 끝에서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 그러니까 내가 괜히 신경 써서 한 소리 해줘야 할 것 같은 바로 그것이 '남의 얘기'다.
평소에 제가 불편하셨던 분들, 앞으로도 그 정도는 참고 사세요. - 모 트윗 인용 (20201218, 내가 쓴 글)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은 그저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나 발휘되는 신기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작 자기 살길 찾기도 바빠야 할 주제에 남 얘기에나 귀를 기울이고 입을 열고 있는 모양새인 것이다. 그렇게도 냉철하고 객관적이고 뚜렷한 가치관을 가진 자신이, 정작 자신의 이야기에는 가장 멍청하고 흐릿한 시선으로 저 자신을 바라본다.
'나 자신은 결국 나 자신에게 가장 관대하다.'
- 자신이 세운 그 잣대, 계획, 큰 그림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은 도저히 저 자신에게만은 차갑게 가져가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도 사랑한다. 그렇기에 지지리 못난 내 친구가 친구 자신을 사랑하는 꼴을 지나친 사랑이라 폄하할 것이다. 알고 보면 자신도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 왜 그렇게 그 사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냐며 소리치는, '네가 다 맞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착각이야'라는 말을 하루에도 열 번 입술 앞을 맴도는지.
얼마 전까지 헤어진 지 꽤 된 내 친구(유 모씨, 나와 1살 터울의 절친)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았다.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느꼈는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알고 보니 괜찮은 '척'을 해가며 이것도 저것도 하면서 비어 버린 삶의 공석을 꽉꽉 채우고자 노력해온 것뿐이었다. 연락을 해볼까, 연락을 했다, 연락이 왔다, 연락을 끊었다, 연락을 다시 해볼까. 그 반복의 시간 속에는 결국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이 그득했다. 결국 우리는 불쌍한 우리가 더 불쌍해지길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친구에게 조언이랍시고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고 있는 나를 보자니, 나도 내가 안타까웠다.
'너도 꽤 오래전에 이랬었던 적 있잖아'
시간이 지나고 30년이라는 시간을 사람이라는 바람을 맞으며 휘청휘청 살아보니, 결국 평생 그 바람의 흐름에 관한 예상이 종처럼 잡히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마음가짐이 늘 달라왔기 때문이라 느낀다. 지금 당장 생각하는 A라는 생각이, 내일에 B가 되어버리고, 1년 후 C가 되어버렸다가도, 그다음 해에 또 A로 돌아오게 되는 신기한 내 마음가짐 때문에.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과 마주하는 당신과 당신의 휘청이는 마음가짐 때문에. 그렇게 너도 나도 너와 나를 모르는 그런 일들이 가득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나를 가장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나 자신이라는 점을 인지한다. / 그대가 어떤 부분에서 꽤 괜찮은 사람인가에 대한 일을 그대 자신이 가장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 자기 살길 찾기가 가장 힘든 이유는 자기 살길에의 자신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자기가 가장 모르기 때문임을 인지한다. / 그리고 이런 사실 조차 자기 자신만 모른다는 것을 인지한다. / 세월이 흘러도 사람 속 하나 모르듯, 나 자신 알기가 가장 힘들다는 것을 인지한다.
엄마 말씀 들어서 나쁠 것 없다는 말은 옛 말이다. 요즘 세대라 칭하는 Z세대, 그리고 적어도 작가 본인을 ‘젊은것들’로 칭하고 싶은 마음이 짙으니, 밀레니얼 세대까지를 통틀어 MZ라고 한단다. 우리(?) 세대들은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체감하고 있는 세대라고 말한다. 없던 것들이 생기는 데에 익숙하고, 그것을 배워야 살아남는 것이 당연한 세대다. - 잠시 드는 생각은 이게 10년 20년이 지나 읽힌다면 나도 옛사람이 되는 것인가. 슬프구먼 -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우리는 어머니라는 준거집단보다 대중의 대다수의 의견을 취합해 새로운 준거집단을 만드는 신기한 역량을 그저 타고난 듯 발휘한다. 그리고 그들과의 소통의 결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표현하고,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고, 결국 나 자신도 모르던 자신을 알게 된다.
"그러니 그저 떠들어봐라."
친구들과 만나 내 이야기를 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을 것이다. - 물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도 있겠다 - 그저 당신이 모르는 당신을 알기 위해 그저 많은 이들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하는 일을 서슴없이 해내길 바란다.
나의 경우에는, 남들과 떠들고 있는 가운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편이다. MZ의 누군가가 불특정 다수와의 소통의 결과로 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표현하고,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고, 결국 저 자신이 모르던 자신을 알게 되는 일처럼, 나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알게 된다.
"그러니 그저 떠들어봐라."
그렇지 않고서야 정작 자신도 가장 모르는 저 자신의 일을
그저 자신의 틀에 두고는 아무런 변화를 꿈꿀 수 없으리라.
- 물론 독자 자신이 많은 사람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것이 그 선결조건일 것이다.
이번 9장은 좀 늦었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9장 끝.
이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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