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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호 Jan 18. 2021

모두에겐 아니라도 누군가에겐 사랑받고 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8장

상대에게 지치는 순간이 있다. 나만 좋았구나 싶을 때가 있다. 너는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구나. 어떤 이유에서 오는 나에 대한 훈계라든지, 어떤 이유에서 오는 상황에 대한 합리화라든지, 뭐 비슷한 행동이겠지만 우리는 사람이기에 기계처럼 상대가 한 행동을 합리적으로 사고해서 판단하지 못한다. ‘그냥 여기 까진가 보다’ 등의 마음으로 그 사랑을 의심하고 포기한다.


하루를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로 채우는 이들이 있다. 직장 상사 중에도 그런 이들이 있고, 헤어진 내 친구도 상대에게 그랬었고, 심지어 우리 어머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런 일이 삶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이름을 써가면서까지 굳이 굳이 상대의 마음을 사고자 노력한다.


부족함을 내놓는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면 자존심의 문제이다. 살면서 관계의 모양이 바뀐다는 것은, 마치 초등학교 친구와 가끔씩 동창회에서나 만나야 이야기가 잘 맞듯, 왜냐면 초등학교라는 같은 환경에서의 관계와 다 커버린 지금의 관계는 꽤나 다른 느낌이기 때문에, 그 자존심이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우리네 마음에서 비롯된다. 더 쉽게 말하자면 지금 상황에 맞는 친구여야만 그 자존심이 상하는 일을 만들지 않기에 그 자존심이 상하도록 하는 일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나아가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포장지와 함께 우리는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혹은 그에 대한 말을 일절 하지 않거나)


나에게도 그런 거짓말들을 늘어놓던 시절이 있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시절, 그리고 그 관심이 갑작스럽고도 처음으로 있었던 시절, 게다가 나 조차도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지 못하기에 주체적인 내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 그런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진실이 진심이 되지 않고, 거짓이 진심이라며 지금 당신들에게 비치는 이 순간만 넘기자는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길 그렇게 비치길 바라 왔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러했던 시절에 한없이 어렸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미움받을 용기라고 했나. 미움받는 것이 용기라는 신박함에 놀란 적이 있다. 지난 시절, 나에게는 미움을 받아 들을 용기가 있었는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용기는 둘째치고 그 일을 내가 해낼 체력은 있었는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이 쏟아지는 내 성향을 고려하자면, 미움을 받는 순간 독사과를 베어 먹은 백설공주처럼 잠에 빠져버렸겠지. 나에게 다가온 미움을 마치 나에게로의 미움이 아니라고 부정이라도 하듯이.


본심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사랑받고 싶은 사람의 내면에는 결국 그 사랑을 쟁취하고자 희생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본심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고 나쁜 모양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저 어눌하거나 어색하거나 잘 모르거나 희미한 것이기에 보통 꽁꽁 숨겨 내놓지 않는다. 그 감추어진 모양을 다른 포장지로 내놓았을 땐 지나치게 일반적이거나 초점을 흐린 모양, 혹은 무언의 형태로 내놓는다. 아무튼 그 본심은 어떠한 경우든 숨겨둔 벽장이 흔들리면 서슴없이 툭 나와버린다. 내가 바라지도 않았던 순간에 툭. 그리고 본래 예상했던 미움보다 더 큰 형태의 미움으로 돌아온다. 미련하게 왜 그랬을까 생각하면서 후회하지만, 돌이키기 힘들다. 거짓말이니까 말이다.


나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미움과 사랑, 진심과 거짓, 진실과 침묵에 대한 그 보이지 않는 것들에 다소 예민해졌고 쉽게 구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내가 생각하는 결론은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기 글렀다. 글렀다는 표현이 다소 올드하다면, 모든 이들이 사랑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없다. 나의 진심을 느낄 수 있고 감정을 나눌 수 있고 나와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 누군가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큰 착각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에겐 아니라도 누군가에겐 사랑받고 있다."


굳이 우리는 사랑받지 못하는 일에 초점을 두지 않고, 오로지 사랑받을 일에만 초점을 두었으면 한다.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수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의 행동의 원동력이 20년이 넘도록 어쩌면 남들에게 맞춰져 있었으니까. 수많은 관심이 쏟아지는 순간에서도 꿋꿋이 잘해오면서 살았다 믿으며 그들이 주는 인정에 행복해하고 수동적으로 이끌려 왔으니까. 그저 사랑받는 일에 익숙해왔지, 저 자신을 사랑할 일에 익숙하지는 않았으니까.

우리는 누군가에겐 이미 사랑받고 있다. 나도 어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그저 그들만 있으면 된다. 선의의 거짓말을 해내면서까지, 그 거짓이 진실이 아님이 밝혀짐에 벌써부터 두려워하면서까지, 모두를 위한 모두의 친구가 되고자 노력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떻게 보면 그저 나 하나만 나 자신을 사랑해도 충분할지도 모를 일이다.

뜨끔하며 누군가에게 사랑받고자 노력하고 있는 자신에게 더 잘해줄 일이다.


#우리가_가장_못해온_것
우리는 대체 우리 자신에게 어디쯤이었는가 타인에게는 그렇게도 가깝길 원하면서도 나 자신에게는 왜 이리도 냉정했을까 왜 제대로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보지 못했을까
(20200821, 내가 쓴 글)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8장 끝.


이민호 드림

Instagram @min_how_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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