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퇴근을 하자마자 도장으로 달려갔다.
피아노학원과 맞붙어있는, 벽지 색이 다 바랜 오래된 곳이었다. 어릴 때 다녔던 태권도장 생각이 났다.
낡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인상이 몹시 강하고 몸이 좋은 관장님이 계셨다.
전화로 문의했던 사람이라고 하니 명랑한 톤으로 인사해 주셨다. 두 배로 무서웠다.
등록절차는 까다롭지 않았다. 간단한 신상정보를 적은 뒤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제하고 끝.
태권도장에 온 이유에 대해 묻기는 하셨는데 태권도를 다시 배워보고 싶었다고 간단하게만 대답했다.
상담전화 이후 찾아본 화려한 기술들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기엔 아직 내 사회적 체면이 우선이었다.
등록한 기념으로 가볍게 첫 수업을 하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시작한 첫 수업은, 근력운동이었다.
있기는 있다던 그 성인부가 태권도 성인부가 아니라 운동 광인 관장님과 함께하는 학부모 단체 PT 부였던 것이다.
낚인 기분이 들었지만 이미 결제한 뒤였다.
다행히 중간중간 태권도 동작을 알려주시긴 했다. 나만 따로 불러서 발차기 자세도 봐주셨고 말이다.
급조한 느낌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왕 다니기 시작했으니 한 달은 잘 채워보자고 생각했다.
*
태권도장을 등록했다는 소식에 가장 어이없어한 것은 엄마였다.
그렇게 가기 싫다고 떼쓸 때는 언제고 니 돈 주고 다닐 생각을 다했냐며 17년 전 태권도장에서 쌓은 내 흑역사를 읊어주셨다.
특히 부모님 초청행사 때 송판을 깨지 못해 엉엉 울면서 무대를 장악했던 얘기를 그렇게 하시더라.
나도 생생히 기억하는 일이었다.
분명 연습 땐 송판 한 장만 깨는 거였는데 무대에 올라가니 송판 두 장이 겹쳐져있었다.
관장님께서는 혼자 송판을 깨지 못한 내 옆에 서서 송판이 깨질 때까지 기다려주셨다.
문제는 내가 차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눈물때문에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송판을 무작위로 쳐댔다.
갈수록 힘은 약해지고 헛발질이 늘어났다. 발등에 감각이 없었다.
결국 송판을 다시 한 개로 변경한 후에야 나는 간신히 송판을 깰 수 있었다. 관객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엉엉 울면서 엄마 품에 안기자 관객들이 한번 더 환호했다.
그렇게 나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내려갔다.
이 날의 기억은 내가 그 어떤 미련도 없이 도장을 그만둘 수 있게 해 준 핵심 사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