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한 아빠의 검정 비닐봉지
가끔은 머리카락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에서 완벽함을 느낄 정도로 행복은 사소하고 끝이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세상에 균열 없는 행복도 존재할까?
괴롭히는 사람도 괴로운 일도 딱히 없는, 그저 그렇게 운 좋은 일상에도 힘든 날은 있다. 힘들었던 날이면 맛있는 걸 파는 아무 가게에서 포장을 한다.
그때쯤이면 힘이 죄다 빠져서 음식을 씹어 소화시키는 일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가게에서 제일 맛있는 메뉴를 골라 포장을 한다. 집에 도착해서 하는 건 신발을 벗으며 사부작사부작 소리 내기. 내 손에 무언가가 들려있음을 티 내고 싶어서다.
그러고 나면 나를 맞아준 엄마는 나 때문에 돼지가 되어간다면서도 포장을 푼다. 그리곤 마주 앉아 내가 사 온 음식을 같이 맛있게 먹어준다. 그래서 힘든 날에는 포장을 한다. 동시에 아빠가 퇴근길에 들고 오던 검정 비닐봉지에 대해 생각한다.
이제 거의 이십 년 전 일이다. 아직도 그날 아빠의 말투를 기억한다. 딸내미가 가장 성질 더러운 순간이 자다가 깼을 때인걸 알면서도 대범하게, 하지만 세상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아빠는 날 깨웠다.
새벽이었다. 말 그대로 비몽사몽이라 잠시 고장 나있던 나는 아빠에 의해 잽싸게 아빠 방으로 옮겨졌다. 책상엔 검정 비닐 속에 하얀 스티로폼 용기가 열려 있었다. 눈이 잘 안 떠졌지만 냄새로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순대 냄새. 그때 아빠가 딱 이 한 마디를 했던 게 생각난다.
“너무 맛있어서.”
난 지금도 순대를 좋아하는데, 그때는 순대를 열렬하게 사랑하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자다 일어나 온몸이 뜨끈한 상태로 입에 들어오는 순대를 씹었다. 그러다 도저히 잠을 이기지 못하고 홀린 듯이 방으로 돌아가 순대에 대한 아무런 리액션 없이 곧장 잠들어버렸다. 천하장사도 눈꺼풀은 못 든다던데, 순대마저 실패할 줄이야.
다음날 아침에 아빠는 엄마한테 혼났다. 이유는 뭐 뻔했다. 왜 자는 애를 깨워서 순대를 먹이냐고. 나는 그때의 아빠를 이제야 온전히 이해한다. 자는 딸을 깨워서 입에 순대를 넣어주던 아빠를. 맛있다고 말하고 두 개는 더 먹을걸. 아니, 지금이라면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올 텐데.
아빠의 검정 비닐봉지에 항상 순대만 담겨있던 건 아니다. 간장치킨을 수능날 점심 도시락으로 싸갈 정도로 광기가 대단했던 딸을 위해, 아빠의 금요일 퇴근길에는 치킨이 자주 함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들고 올 치킨)를 목 빠져라 기다리던 나에게 안겨진 봉지 속에는 간장치킨 대신 '파닭'이 들어있었다. 그때 한창 유행하던 메뉴였는데, 치킨집 사장님은 어쨌든 간장소스를 뿌려먹는 거니까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고 추천해주신 모양이었다.
당시에는 파의 맛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건 가짜 간장치킨이라며 젓가락을 거세게 내려놓은 나를 타이르고 싶다. 그냥 먹으라고. 이제 그때의 아빠와 지금의 나는 꽤나 닮아있다. 나는 환경 생각한답시고 검정 비닐봉지를 쓰지 않는다는 점만 빼놓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