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웨이스트 샵 알맹상점 방문기
"뭐 하는 곳이냐면, 포장은 없고 그냥 알맹이만 파는 곳이야. 신기하지?" 엄마에게 알맹상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왠지 작지만 오밀조밀한 느낌이 들어서 알맹이만 있는 그곳과 참 어울리는 이름. 괜히 문방구에 드나드는 초딩처럼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나의 목적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아니다. 사장님 죄송해요.
내가 알맹상점의 문지방을 얼마나 밟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껏 구매한 제품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소소하다.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호기심에 고체 치약을, 제로 웨이스터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실리콘 빨대를, 수세미를 바꿀 때가 된 거 같아서 마 수세미와 삼베 수세미를 샀다.
나무를 깎아 만든 수저 젓가락 세트와 신상 비누들을 소유하면 왠지 더 멋진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향유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슬프게도 그게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걸 알아버린 나는 물건 하나하나를 열정적으로 들여다보며 구경만 한참 한다. 사장님도 그런 '알맹이' 없는 소비는 환영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여부는 여쭤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주기적으로 가는 이유가 있다. 작은 플라스틱들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다. 페트병 뚜껑이나 렌즈통처럼 크기가 작은 플라스틱들은 제대로 분리수거가 되었어도 선별과정에서 버려진다. 플라스틱 방앗간에서는 이 비운의 플라스틱들을 분쇄해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어낸다. (역시 귀여운 이름이다. 심지어 참여자들을 '참새 클럽'이라 칭한다. 굉장히 귀엽다.) 알맹상점에서는 작은 플라스틱을 모아 플라스틱 방앗간에 전해준다.
참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작은 플라스틱들을 깨끗이 씻어 간다. 무게를 재고 스탬프를 찍는다. 100g에 도장 하나. 아이패드에 기록한다. 가지고 간 플라스틱들을 색상별로 분류하면 끝.
부피가 크지도 않은 플라스틱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당장 치워버리고 싶은, 성질 급한 미니멀리스트는 보관통이 적당히 차기만을 기다리다 부리나케 알맹상점으로 향한다. 근데 매니저님들은 100g이 채워지지 않았어도 도장을 찍어주시고, 분명 하나짜리 무게인데 쾅쾅하고 두 번을 찍어주시고 그런다. 원래는 매니저님이 도장을 찍어주셨어서 알게 된 재미인데, 나처럼 플라스틱을 들고 오는 사람이 많아져서인지 이제 셀프로 바뀌었다. 그래도 여전히 앞에서 기웃거리면 친절하게 이용법을 알려주신다.
이것도 재활용이 되는 건가? 아직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땐 가져가서 여쭤본다. 보통 PP, PE가 적혀있지 않으면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 저번에는 '재활용이 안 되는데 많이들 가지고 오는 것'이 뭔지 궁금해져서 그것도 여쭤봤다. (안물안궁이셨겠지만 글에 쓸 거라는 tmi까지 말했다. 참을 수 없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씻어서 가지고 오는 것. 특히 우유갑은 씻어서 가위로 잘라 펼쳐야 한다. 많이 들어오는 일반쓰레기는 빨대. 역시 안 쓰는 게 최고다. 그리고 실리콘이나 종이가 붙은 페트병 뚜껑. 손끝으로 안쪽을 만져보면 느껴진다. 잡아 뜯으려고 해도 쉽지 않게 붙어있어서 재활용이 불가하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제 양파망과 크레용도 받는다는 말도 덧붙여주셨다. 알맹이만 판매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제 역할을 하지만, 시간을 내어 작은 플라스틱을 모아 주시는 것은 올바른 분리수거 방법을 한 명에게라도 더 알려주기 위함이 아닐까. 귀찮은 질문쟁이인 나도 많이 배워왔다. (내가 그동안 거절당한 ‘일반쓰레기’들은 배달음식 포장 칼, 마스크 클립, 오렌지주스 속뚜껑.)
알맹상점에서는 영수증이 자동으로 출력되지 않는다. 봉투를 거절하기도 전에 구입한 알맹이를 껍데기 없이 스윽 건네주는 곳이다. 지금은 조금 특별한 공간이지만, 그 특별함이 언젠간 대수롭지 않아지기를. 내가 기획에 참여한 제품이 입점하는 날도 오기를!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49 2층
화~일 14:00~20:00
(월요일 휴무. 까먹고 낭패 본 적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