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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귤 Sep 16. 2020

저는 미련한 게 아니라 멋진 건데요

제로 웨이스트 하는 귀차니스트


들고 다니는 걸 싫어한다. 부피가 크다면 더더욱.


에코백조차 꺼려해서 파우치를 덜렁거리며 들고 다니고, 부슬비가 떨어지면 그냥 맞는다. (요즘은 머리 빠질까 봐 자제 중) 그래서 더더욱 미니멀 라이프에 만족하는 귀차니스트다. 근데 어떻게 제로 웨이스트를 하겠다는 건지 신기하다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귀찮다. 손에 물기가 있는 건 또 싫어서 핸드타월을 대신할 손수건이 필요하고, 플라스틱 컵 대신 집에서 텀블러를 챙겨 와야 한다. 그리고 얘네를 챙기려면 가방이 필요하다.


게으름뱅이면서 귀찮음을 감수하는 이유는 그만큼 분명한 가치가 있어서다. 살림살이는 좀 늘어나는 대신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줄어든다면 그것도 나한테는 미니멀 라이프다.


그런 나의 특기는 빈손으로 세계맥주 4캔 사놓고 ‘아맞다 가방’. 결국 후드티 주머니를 축 늘어지게 하는 맥주의 꿀렁임을 느끼며 편의점을 나서는 것은 비닐값 100원이 아까워서 만은 아니다. 비닐을 쓰기 위해 값을 지불해 수요를 늘리는 게 께름칙해서다.


한두 번 사용하고 버려지기 십상인 비닐봉지는 사실 '환경보호'를 위해 발명됐다. 쉽게 젖고 찢어지는 종이봉지를 위해 잘려나가는 나무들을 살릴 대체품. 하지만 발명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비닐봉지는 다회용이 아닌 일회용이 되었다. 이젠 반대로 종이 사용을 권장할 정도로 비닐의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는 걸 발명가가 알면 관짝에서 뛰쳐나올지도.



지난 토요일, 여느 때처럼 아름다운가게에 들렀다 오는 길에 생크림을 사야 한다는 게 생각났다. 옷을 담아갔던 쇼핑백을 들고 나올걸 후회해봤자 이미 마트 앞. (쇼핑백도 기부 가능해 항상 두고 온다) 하나 사러 갔다 열 개 갖고 나오는 곳인 마트에 담을 거라곤 손바닥만 한 파우치가 전부. 나는 비닐봉지를 샀을까?



손으로 들고 갈 수 있을 만큼만 샀다

과자를 하나만 골라야 해서 과자코너를 10분은 돈 것 같다. 파우치와 생크림 그리고 과자를 쥐어 손이 한껏 꼬깃꼬깃해진 채로 앞으로는 꼭 가방을 들고 다니리라 다짐했지만, 아직도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그럴 땐 최소한의 소비를 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니까.


일부 사람들의 말처럼 불편을 감수하는 게 진짜로 미련한 걸까?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비닐봉지를 받는 대신 에코백을 올려놓는 나에게 “이거 젖을 텐데 괜찮겠어요?”하고 사장님이 걱정해주신다.

말리면 돼요, 하니까 사장님이 그런다.

“그러네요.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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