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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듣지 못할 노장의 연주

마리아 조앙 피레스, 마지막 내한의 순간들

by Aurore오로르

적어도 한국에서는, 다시는 듣지 못하게 될 세계적인 노장의 연주. 하루종일 내리던 비를 피해 어렵게 도착했던 과정은 모두 잊히고 꾸밈없는 그녀의 연주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하고 머릿속 한 구석을 차지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시대를 풍미했던 연주자라도, 사람이 나이가 들면 당연히 파워가 떨어지고 손이 젊을 때만큼 돌아가지 않습니다. 개인차야 있겠지만 연주자들도 당연히 '전성기'가 있기 마련이죠. 솔직하게 말해, 나이가 지긋하신 연주자들의 콘서트를 즐겨 가지는 않았어요.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수많은 연주자들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2024년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세상을 떠나자 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폴리니는 살아있는 전설이었고 저도 피아노과 입시를 거치며 꽤나 들었던 연주자였어요. (물론 입시생에게 좋은 레퍼런스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입시곡으로 주로 쓰이는 쇼팽의 에튀드를 워낙 빠른 속도로 연주해 내서 제게는 감탄과 좌절 용도로 많이 쓰였습니다.) 제게 '폴리니'라는 이름이 어떠한 추억으로 자리 잡아있는 상태에서 거장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자 마음이 많이 심란했어요. 분명 23년 내한이 취소된 이후 다시 오실 줄 알았는데, 물론 연세가 많으셨고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외할머니의 죽음 이후로 또다시 '죽음'이 피부로 와닿는 감각으로 느껴졌습니다.


'20세기 피아노의 황제, 마우리치오 폴리니 별세' 사건 후로 노장들의 연주를 놓친다면 다시는 살아있는 에너지와 뜨겁게 움직이는 손가락, 숨결과 함께 내뿜는 음악을 듣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20세기의 전설, 마리아 조앙 피레스가 공식적으로 마지막 내한을 알린 연주회의 티켓을 고민 없이 구매했죠.


비가 내리던 연주회 당일, 그녀의 연주를 들으려 많은 분들이 예술의 전당에 모여들었어요. 유명한 음악 유튜버들, 멀리서 봐도 태가 나는 악기 연주자(혹은 지휘자)인 것 같은 분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사람들 틈 속에서 어렵게 구석에 자리 잡아 얼른 커피를 한잔하고 연주회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입장하는 순간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들더군요. 드디어 조명이 무대를 비추고, 거의 2천 명을 모이게 한 피아니스트 답지 않게 소박한 차림을 한 연주자가 걸어 나왔습니다. 등장할 때의 박수는 보통 연주회가 끝나고 받는 박수의 양과 비슷했습니다. 등장 자체로 받은 환호에 보답하여 곱게 인사를 하더니 갑자기 달려들어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그날 왜 그런 방식의 연주를 했을까요? 남은 체력을 피아노에 모두 쏟아 붓기라도 하듯 한 곡이 끝나도 박수조차 받지 않고 바로 다음 곡을 연주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피레스는 그날의 곡을 연이어서 들려주고 싶어 했죠. 수많은 빨간 객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차지한 관객들은 그녀의 의도를 바로 알아채고 숨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마치 수많은 세포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신체 기관이 뇌의 지시를 알아듣고 일제히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그만큼 얼굴도 모르는 관객들과 연주자가 말 한마디 없이 '가슴 깊이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곡 정도가 진행되는 동안 그곳에 있는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어요. 그 흔한 기침 소리, 잊을만하면 나오는 핸드폰 소리, 한숨 소리까지... 오로지 피레스의 피아노 음악만이 연주회의 공기 속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녀는 온몸으로 연주했습니다. 팔꿈치, 어깨, 등까지 모든 신체가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을 도왔어요. 그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곧 날아갈 것 같은 나비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세월이 느껴져 서글프기도 했지만 그런 감정 따위는 70년을 무대를 누볐던 피아니스트의 내공에 대한 감탄으로 탈바꿈했죠.


무대에서 보여준 그날의 연주는 평소 유튜브나 CD에서 듣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녀의 연주는 깨끗하고 영롱하기로 유명하죠. 그래서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기도 하고요. 하지만 직접 들은 음악은 그런 소리보다는 벨벳 같은 소리였습니다. 참 부드럽고 따스했어요. 왼손은 쿠션 같은 피아노 건반 위에서 자유롭게 뛰놀았고 우나 코다 페달은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언제 떼고 누르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역시나 잘 다듬어진 음원과 실제 연주회장의 울림은 같을 수가 없었지요. (이럴 때는 과거 유럽 귀족들이 왜 그렇게 연주자들을 자신의 궁으로 들여오고 싶어 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쇼팽과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사이에 잠시 쉰 것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달렸던 연주가 끝나자 함성과 박수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소리'란 바로 그날의 순간을 표현한 어구였어요. 시간이 지나기가 안타까울 정도로 귀한 앙코르 연주까지 끝났지만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도, 앉지도 않았습니다. 그녀가 무대 뒤로 사라져도, 객석의 불이 켜져도 관객들은 존경과 아쉬움을 담아 박수를 보냈어요. 여러 번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 그녀가 객석의 불이 켜져도 관객들이 박수를 멈추지 않자 마지막으로 뛰어나와 깊이,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고 그제야 관객들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지요.


서초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을 이동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침대에 누워서도 여운이 가지 않아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어요. 연주자는 물론이고 관객까지 완벽했던 공연. 다시 경험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어 고장 난 테이프처럼 머릿속으로 연주의 순간들을 계속해서 다시 재생시키는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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