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베르테 Oct 31. 2024

익숙한 낯섦

D-30

이제 출근할 날이 한 달 남짓. 문득 매일 반복되던 일상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남은 한 달간, 익숙한 것들을 낯선 눈으로 바라보며 기록해 보기로 했다. 그동안의 시간을 되짚어보고, 남은 시간을 잘 매듭 묶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늘 아침형 인간을 꿈꿨지만, 밤늦게 잠드는 습관 탓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여전히 나의 숙제다. 알람 소리에 겨우 눈을 뜨면 시작되는 양치질, 샤워, 옷 갈아입기...30년 넘게 반복된 움직임은 마치 프로그래밍이 된 AI처럼 자동으로 작동된다. 생각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움직이는 몸,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알고리즘이 코드처럼 각인된 것만 같다.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길에 올랐다. 그런데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들이 유난히 다르게 보였다. 

산의 빛깔이 달라졌다. 마치 깊은 가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동안 수없이 지나친 이 길인데, 오늘따라 모든 것이 새롭다. 사오리 지하차도를 빠져나와 마주하는 파란 하늘, 강 위로 놓인 다리를 달리는 순간의 시원함, 안개에 흐릿하게 보이는 산줄기는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했다.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만드는 몽롱한 풍경은 날마다 다른 빛깔로 나를 설레게 했다.     


한참을 달려 사무실 건물이 보이는 횡단보도 앞에 섰다. 빨간 신호에 멈춰 선 그 순간, 그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떨리던 첫걸음부터 지친 발걸음까지, 모든 순간의 궤적이 이 길 위에 새겨져 있었다.     

한 달 후면 이 시간에 이 길을 오가지 않을 것이다. 관성처럼 이어지던 일상도, 때론 불평 속에 흘려보냈던 나날들도, 숨 쉬듯 자연스러웠던 그 모든 순간도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늘 보던 거리가 마치 다른 도시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오늘, 그러나 이 낯섦은 이상하리만치 편안하다. 스쳐 지나간 일상의 작은 조각들이 어느새 내 일부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초록 불 신호등이 켜졌다. 신호를 따라 움직이며 생각했다. 시간이 빚어낸 이 익숙한 낯섦은, 언젠가 되돌아볼 때,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던 순간들로 기억되리라고.     


그 순간, 나는 나직이 말했다. “그동안 수고했어. 참 잘했어.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애썼어. 너는 매 순간 열심히 살았어. 칭찬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