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돌아보는 법
오늘 모임에서 숙제를 받았다. 주제는 ‘남편을 바꾸는 방법’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배우자의 장점 5가지를 적어야 했다. 나는 한참 동안 키보드를 두드리지 못했다. 타인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받아들였다. 과연 누가 누구를 바꿀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가 나를 바꿀 방법’이라니,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상대방을 바꾸고 싶다면 내가 먼저 변화하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는, 내가 변해서 상대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하면서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는 뜻이 아닐까? 물론 내 변화가 상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나의 인식이 변하는 과정일 것이다.
얼마 전, 신혼 초에 적었던 작은 수첩을 발견했다. 펼쳐보자마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결혼한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적었던 내 마음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30년 동안 서로 주고받은 감정과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 텐데, 결국 사람의 본질적인 부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혹은 타인에게 예전과 다른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때면 먼저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러면 마주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내 감정의 변화인 경우가 많았다. 내 마음의 온도에 따라 상대가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결국 그것은 내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왜 불편한지 들여다보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예전에 남편에게 "당신이 변했다"라며 서운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남편은 "나는 예전과 다르지 않은데, 그렇게 느꼈다면 당신의 마음이 변한 게 아닐까?"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했다. 정말 내가 변한 걸까, 아니면 남편이 변한 걸까?
바뀌어야 할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른다. 나를 바꿀 방법? 확실하진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 떠올랐다. 바로 '용기 내기'다. 나는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주저하는 편이다. 특히 그 용기가 관계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그렇다. 부딪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인데도, 지레짐작하고 미리 포기해 버린다. 그러다 결국 어찌할 수 없는 절벽과 같은 상황에 마주하고 나서야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
특히 불편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 그 이유는 일그러지는 관계가 두렵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면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피하고 만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를 일이고, 관계란 결국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 덕분에 타인과 얼굴 붉힐 일은 없었고,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요즘은 그런 내 성격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런 고민 속에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어쩌면 완벽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집착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잠시 고민을 내려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기로 했다. 나와 남편, 그리고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며, 숙제로 받은 남편의 장점을 떠올려 보았다.
첫째, 나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준다. 남편이 내 선택에 'NO'라고 말한 적은 단 한 번, 아이들 교육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을 때뿐이었다. 그때도 "더 많이 고민한 사람의 결정을 존중하는 게 맞다"라며 결국 내 의견을 따랐다. 아이들에게도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이제부터는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라고 선언했고, 이후로 단 한 번도 잔소리나 간섭을 한 적이 없다.
둘째, 만족하는 삶을 산다. 남편의 일상은 단조롭다. 아침엔 수영, 저녁엔 요가, 낮에는 마당을 거닐며 새싹을 살핀다. 일주일에 한 번 합창 동호회에 가고, 가끔 동창이나 옛 동료를 만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여행을 다녀온다. 그렇게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소소한 변화를 즐기며 스스로의 삶에 만족할 줄 안다.
셋째, 요리로 주변을 즐겁게 해 준다. 특히 남편이 끓이는 죽과 떡국은 인기 만점이다. 지인들이 팥죽이나 녹두죽, 죽 종류 무엇이나 먹고 싶다고 하면 기꺼이 끓여준다. 내가 이곳에 와 있는 동안에도 팥죽을 끓여 이웃들을 초대했다고 한다.
넷째, 기다려주는 마음을 가졌다. 내가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부터 운동을 습관화할 수 있도록 오랜 시간 함께했다. 아침잠이 많은 나와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본인과의 루틴이 맞지 않았음에도, 기다려 주고, 함께 운동하기를 하며 내 변화를 기다려 주었다. 그 결과 지금은 나 홀로 운동할 수 있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다섯째, 편견이 없다. 사람과 세상을 바라볼 때 편견 없이 자유로운 시선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면이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여섯째, 꾸준하다. 남편은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결혼 후 지금까지 30년 동안 매일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빠짐없이 해왔다. 추울 때나 더울 때도 어떤 불가피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한결같이 꾸준히 운동을 한다. 여전히 어렵고 귀찮을 때가 있기도 하지만, 몸이 어느새 습관대로 움직인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꾸준함의 힘인 것 같다.
이렇게 하나하나 떠올려 보니, 변화란 어쩌면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나의 부족한 점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성장하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 같다.
앞으로는 불편한 감정도 조금 더 용기 내어 표현해보려 한다. 동시에, 지금처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천천히 성장해 나가고 싶다. 완벽한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함께 걸어가는 것. 그것이 30년을 함께해 온 우리가 앞으로도 나아갈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