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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Mar 16. 2023

'더 글로리' 마지막회, 40년 전 노래에 담긴 의미

더 글로리, 송골매의 '아가에게'

복수는 가깝고 영광은 멀어 보였던 '파트 1'을 거쳐 '파트 2'로 돌아온 '더 글로리'를 정주행 했다. 결말에 대한 무수한 추측과 스포일러가 난무했기에 어느 정도 기대는 했었다. 뉴스에서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 끔찍한 '학폭'의 사례들을 대하며 내심 기대를 넘어 시원한 복수극이 펼쳐지고 피해자들을 위한 멋진 피날레가 작품 전체에 울려 퍼지기를 염원했음이다. 현실에선 어렵지만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판타지, 드라마에서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가능하기에.


휘몰아치는 전개 속, 마지막 16화에서 나는 어떤 슬픈 아름다움을 목도했다. 슬픈 아름다움이라니! 너무 슬퍼서 아름다운 것인가, 아름다움이 극에 이르러 슬프게 보인 것인가 정확히 읽어낼 수는 없어도 내게 다가온 그 장면은 분명 '아름다운 슬픔' 혹은 '슬픈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그 스틸은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복수와 폐허의 황량함이 없는 유일한 모습이었다.


해변을 향해 달리는 차 안, 동은(송혜교)과 여정(이도현)의 맞닿은 감정을 드디어 사랑으로 정의할 수 있게 만든 노래 한 소절이 여정의 입을 통해 흘러나올 때, 나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음악감독은 어쩌면 여기서 이 노래를 ost로 쓸 생각을 했을까 싶을 만큼 예상밖의 선곡이었기에 말이다.


달빛처럼 고요한 그대는 누구인가
햇살처럼 화사한 그대는 누구인가
그 누구의 사랑으로 여기에 서 있는가
영롱한 그대 눈빛은 내 모든 우울에 빛을 던지고
조그만 그대 입술은 외로운 마음에 위로를 주네
그대와 나의 만남은 보배로운 약속
내일은 그대의 것 내일은 소망의 날
나의 사랑아-
달빛처럼 고요한 그대는 누구인가
햇살처럼 화사한 그대는 누구인가
그 누구의 사랑으로 여기에 서 있는가
그대와 나의 만남은 보배로운 약속
내일은 그대의 것 내일은 소망의 날
나의 사랑아-
그대와 나의 만남은 보배로운 약속
내일은 그대의 것 내일은 소망의 날
나의 사랑아/ 송골매, '아가에게' 가사


1983년 발매된 송골매 3집의 수록곡, '아가에게'였다. 여정이 부르는 소절에 이어지는 구창모의 목소리는 40년 전의 노래가 어떻게 지금의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 가능한지를 시청자들에게 설득해내고 있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이 노래 '아가에게'의 가사는 배우 임예진이 자신의 조카를 보고 쓴 것인데, 아기의 순수함과 대면한 마음이 가사에 잘 녹아있어 세대를 아우르며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기도 하다.


이 노래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나는 대학에 막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캠퍼스는 날로 초록으로 짙어지던 초여름이었고 나는 그 여름의  캠퍼스를 열정 하나로 누비던 학보사 수습기자이기도 했다. 더위로 이름난 도시의 지열이 서서히 끓어오르던 그때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기만 했던 내 유일한 안식처는 학교 앞 음악다방이었다. 당시에도 음악다방이나 경양식을 파는 레스토랑에 가면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었기에 아주 가끔 서툰 취재로 온몸이 땀에 젖은 날이면 동기 하나와 그 다방엘 들르곤 했었다. 물론 선배들이 알았다면 불호령이 내릴게 뻔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낯선 풍경일 테지만 뒤쪽으로 LP음반이 빼곡한 DJ부스가 있는 그 음악다방엔 우리가 듣고 싶은 노래들이 웬만큼 다 있어서 종이에 신청곡을 적어서 주면 그 노래가 흘러나와 공간을 울리곤 했었다. 비틀스나 퀸 같은 외국의 록 그룹을 좋아했던 내게 당시 굉장히 한국적인 록을 구사하는 송골매는 탐구의 대상이기도 해서 가끔은 그들의 신곡을 선곡해 달라는 요청을 했었다. 어느 하루, "이 노래는 말이죠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로 지금 들려주고 싶은 그런 노래입니다."라는 DJ의 멘트와 함께 '아가에게'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록 그룹의 노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감미로운, 거기에다 가사는 해석하기 따라서 조금 오글거릴 수도 있던 그런 노래.


이 노래가 대중들에 선을 보인 이후 사랑에 빠진 이들이 이 노래를 디딤돌 삼아 고백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리고 유난히  뜨거웠던 그해 여름, 학교 앞 음악다방에선 이 노래를 신청곡으로 들려주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 아가를 위해 쓴 가사가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과 닿아 있었음일까,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예의 오글거림은 없어지고 순수함의 정수만 남아 사랑의 결정체란 이런 것이라 받아들이게 된다. 가사를 몇 번이고 곱씹어 보라. 노래는 확장돼 우리의 구석구석에 스며들고 거칠기만 한 이 세상에 이런 순수한 아름다움도 있다고, 당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 수 있다고 얘기하지 않는가.


다시 더 글로리의 마지막 회  여정과 동은이 달리던 차 안으로 돌아와 본다. 동은은 여정의 노래를 들으며 미소를 짓는다. 웃음을 잃고 감정마저 탈곡이 돼 비릿한 입꼬리만 가진 줄 알았던 그 동은이 여정이 부르는 '아가에게'에 담긴 그의 마음을 읽고 웃는다. 아마도 작가는 이 신을 통해 둘의 사랑만큼은 서늘한 복수의 그늘로부터 비껴 나 있음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필시. 더 글로리에서 유일하게 복수의 흔적이 배제된 장면에서 흘러나오던 그 노래 송골매의 '아가에게'. 가사는 드라마에 스며들어 처절한 아픔의 순간을 마무리해 가는 두 사람을 어느새 대변하고 있었다.


폐허와 황량함을 이야기하면서 이 노래를 가져와 종래는 시청자들을 설득시키는 영리함이라니! BGM이나 OST는 이렇게 쓰여야 한다. 작가가 장면을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히 해주면서도 미장센을 극대화시키고 시청자나 관객을 완벽한 몰입의 경지로 이끌어야 한다. 40년 전 20세기의 노래가 21세기 드라마 전체의 서사를 압축하고 대중을 감동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노래가 가진 불멸성 아닐까.


'그대와 나의 만남은 보배로운 약속
내일은 그대의 것 내일은 소망의 날
나의 사랑아'


이 몇 줄의 가사가 혹여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된다 할지라도 드라마 전체를 통해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순간이 노래 '아가에게'를 통해 정의 됐음에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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