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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Apr 21. 2023

감기 후 회복엔 돼지국밥이 제격

소식좌의 1식 일기 아홉 번째

며칠을 꼬박 앓았다. 삼 년 이상을 코로나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하면서 다녔는데 마스크를 벗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감기란 놈이 습격을 해 온 것이다. 주변인들이 다 한 번씩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녔는데... 뒤늦게 찾아온 이 감기란 놈도 코로나 못지않게 사람을 괴롭히는데 새삼 인간의 나약함에 허탈함이 일시에 몰려왔다. 사지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랄까. 몸이 몹시 아프다기보다는 마음이 공허해지는 상황이 더 참기 힘들 정도로.


목이 따끔따끔한 데다, 약간의 근육통과 나른함이 동반돼 혹여라도 코로나일까 싶어 병원엘 들렀다.


"선생님 갑자기 목이 너무 아프네요. 목소리가 안 나올 지경이고요."


"이런 지 며칠이나 되셨어요?"


"한, 이틀 됐나... 열은 정상이더라고요."


"음.. 일단 코로나 검사는 해 보시는데, 제가 보기엔 급성 인후염 같아요. 뭐 일종의 감기죠."


아니나 다를까. 진짜 오랜만에 찾아간 병원엔 나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평일인데도 꽤나 많아 보이는 것이다. 때마침 뉴스에는 환절기 감기로 고생하는 사람, 독감에 걸린 사람, 코로나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뒤엉킨 병원 상황이 보도되고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열심히 낀 마스크 덕분인지 아니면 철저한 위생수칙을 지킨 덕분인지 모르겠다. 코로나는 물론이고 감기 한 번 앓은 적이 없었건만 싶어 뭔가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지만 별 수 있나. 감기는 약을 먹어도 일주일 안 먹어도 일주일,일단 목 아픈 것이라도 면해야지 싶어 약을 처방받아 나오는데 끼니를 거른 탓인지 몸이 휘청, 꺾이는 것이다.


감기에 걸리면 하루 이틀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이나 이온음료만 넘기는 것이 내 오래된 습관이다. 무엇이라도 섭취하고 약을 먹어야 한다고 늘 엄마한테 혼이 나곤 했지만 온통 입안이 까끌까끌하고 쓴데 대체 뭘 먹는단 말인가. 상황이 이런 탓에 계절마다  감기로 앓아눕곤 했던 예전의 나는, 환절기만 되면 볼 살이 움푹 파이고 가뜩이나 퀭하게 생긴 눈이 쑥 들어가는 흉한 몰골이 되곤 했었다.


더군다나 이번엔 워낙 오랜만에 앓는 감기인 데다 봄이면 지독하게 나타나는 '꽃가루 알레르기'까지 겹치다 보니 눈물, 콧물에 목안은 가래로 가득해서 더더욱 무엇인가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누룽지라도 먹어볼까 했지만 웬걸, 쓰도 이리 쓴 소태가 없었다. 이를 어쩌나. 약이라도 먹어야지 있는 대로 빠져버린 힘을 보충할 것인데 슬그머니 걱정이 되는 것이다. 먹지 않아도 때가 되면 훌훌 털고 일어나던 그 청춘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의 나는.


곧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먹을거리를 찾아 동네를 헤매다가 문득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돼지국밥 식당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돼. 지. 국. 밥'. 한자씩 머리로 떠올릴 때마다 어쩐지 힘이 솟아나는 음식, 바로 내 힐링푸드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엄마에게서 내게로 전해진 힐링푸드.


엄마는 나와는 달리 통뼈에 강골이셨다. 지병이 있긴 했지만 수칙을 잘 지키셨고, 좀처럼 잔병치레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해서 감기를 달고 사는 내게 엄마는 천년만년 건강하게 장수를 누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랬던 엄마도 오래 앓아오던 지병으로 인한 합병증에는 속수무책이었고, 이로 인해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는 감기도 가끔 앓으셨었다.


멀리 살고 있는 오라버니가 병문안차 내려오는 날, 감기로 몸이 허해졌다며 아주 특별한 보양식을 먹으러 가자 매번 요청을 했는데 그 음식이 바로 돼지국밥이었던 것이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고 나면 땀이 나면서 몸이 한층 개운해진다는 게 엄마의 지론이었다. 십분 맞는 얘기다. 오빠의 말을 빌자면 엄마는 돼지국밥만 드시고 나면 주름이 펴질 만큼 환하게 웃으시며 "내 인자 다 나았다"를 연발하셨다고 하니.


그렇게 돌아가시기 몇 해전부터 당신의 힐링푸드 내지는 회복음식으로 돼지국밥을 정하시더니 고깃국을 좋아하지 않는 아니 거의 입에도 대지 않는 내게도 권하시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고기를 너무 먹지 않으면 허리가 꺾이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면서 앓고 난 다음에는 억지로라도 먹어보란 당부도 잊지 않고 말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에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곱게 썬 부추도 양껏 넣었다. 여러 식재료가 어우러져 입맛을 돋우는 국밥을 보고 있자니 먹기도 전에 눈이 뜨끈해져 온다. 이 한 그릇에 담긴 엄마의 서사가 떠올라 목이 매인다. 돼지국밥의 무엇이 엄마에게 강한 에너지와 살아갈 활력을 충전해 주었을까. 왜 엄마는 게도 깊고도 묵직한 이 음식의 저력을 애써 전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국밥 한 술에 생각 두 술이 얹어진다. 쓴 맛 뒤에 구수한 향기가 따라오는 걸 보니 코도 뚫리고 미각도 조금씩 살아나는가 싶다.


"아이고 국밥 한 그릇도 다 못 묵어서 우얄라꼬요? 밥도 쬐매 줬는데. 보자 하이 감기 끝인가 본데, 감기에는 무조건 잘 무야 됩니대~이"


봄 햇살 사이로 번지는 국밥집 이모의 잔소리가 정겹다. 며칠을 시큰둥하게 누워있다가 돼지국밥 반 그릇을 비우고 나니 소리도 빛도 어쩐지 선명하게 다가옴이다. 소화도 시킬 겸 동네 한 바퀴 돌고 나서 약을 먹어야겠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맛이 보장된 돼지국밥집이 있어 다행, 엄마의 당부를 여즉 잊지 않아서  다행, 감기가 곧 떨어질 것 같아서  또 다행인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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