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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Nov 27. 2023

입시 지옥에 입문하는 씁쓸한 마음



11월 16일 수능이 있던 날 밤, 아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아들, 딱 6년 남았네. 6년 후 오늘, 우리 아들 수능시험 치르겠네. 지금 공부하고 달리는 목적도 어찌 보면 6년 후 이 날을 위해서인 것도 일부 있어. 지금까지 부족하다 생각했던 과목들도 중학교 들어가고 남은 6년간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요 엄마, 어디에서 들었는데, 우리는 수능을 위해 12년을 달린 대요. 그런데 이미 6년이 지나버렸고 6년밖에 안 남았대요. “


“누가 그렇게 말해? 6년밖에 가 아니야 6년이나 남은 거지. 커서 네가 하고 싶은 거 하기 위해 열심히 하면 뭐라도 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하는 아들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북돋아주었지만 들었는지 어쨌는지 학원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집을 나서는 아들을 바라본다. 요즘 알게 모르게 공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 해 마음이 짠하다. 수험생을 둔 부모의 마음은 더 하겠지. 나는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을 키우고 있을 뿐인데 벌써부터 이렇다.


지금은 강남 8 학군까지는 아니지만, 경기도 내에서 나름 학군지에 살고 있다. 결혼 후 다른 지역에 살다가 친정집 근처인 지금 동네로 다시 이사를 왔다. 그런데 이곳이 어느새 동네에서 아이들 교육시키려면 가고 싶은 단지 1순위로, 학군을 따지고 교육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동네였고, 그 입시 열기는 유치원 때부터 이미 시작이 되고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되어 동네로 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고 보니 나 때 보다 더하면 더했지 엄마들과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입시 전쟁은 더 극심해진 듯 보였다. 물론 아이들은 그 속에서 나름의 돌파구를 찾고 있고 즐겁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을 테다. 내가 그랬듯이. 하지만 알게 모르게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비교, 사교육 열기는 더 심해져 있음이 뻔히 보인다.


나도 어릴 적 입시로 유명한 서울의 한 지역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지금의 동네로 이사를 왔다.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고, 학원을 다니고 문제집을 풀고 시험을 보고 등수를 매기고 그런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커왔다. 그렇게 커왔기에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동네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고, 이런 학창 시절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한 수순, 비슷한 길을 걸어온 친구들이 있었고 특별히 굴곡진 삶을 살아본 경험이 없는, 누군가에게는 평범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사는 것. 사실 지나고 보면 아주 많이 다를 것은 없는데, 더 열심히 했으면 달라졌을까. 아니면 덜 했었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그런데 이제는 이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면서, 아이 학년이 점점 올라가면서 나 때보다 더 치열하고 힘들게 입시를 준비하고 치르고 있는 안타까운 아이들이 보인다. 몇 년 후 내 아들이 겪어야 하고 이겨내야 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아들도 어디에서 저런 말을 들었는지 친구들인지 학원인지 학교인지 모르겠지만 적지 않은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받는 것도 사실일 터.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로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며 자라게 하고 싶었던 엄마의 교육관은 점점 흐려지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입시에 발을 딛기 시작한 예비 중1 엄마가 되어 버렸다.


나도 입시를 겪었지만 생각해 보면 죽을 만큼 힘들었던 것 같지는 않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나름 공부를 잘한다 싶어서 자신감이 충만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험을 봐서 고등학교 입시를 치러야 했던 지역이었기에, 공부를 한다는 아이들이 모인다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노력을 해도 조금씩 미끄러지는 성적에 마음 아프고 눈물 흘려야 했던 날들도 있었다. 나름 한다고 해도 성적이 잘 안 나오던 과목은 엄마가 대치동 유명학원까지 그룹을 짜서 들고 나르기도 하고, 유명 강사를 초빙해 작은 동네 학원에 모여 특강을 듣기도 했었다. 이런저런 방법들을 다 동원해 주셨던 엄마에게도 감사한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사교육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었을 텐데 그걸 감내하신 부모님의 노고까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학교의 거의 대다수의 아이들이 학원이나 과외를 했었고 독서실을 다녔으며 모두 다 그렇게 달렸고 공부를 했으니 그게 당연한 줄 알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아이를 키우면서 보니, 과거 입시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오히려 더 대학 가기 힘들어진 다양한 시스템들에 머리가 아프고, 아이와 부모 학교와 학원이 함께 고민을 하고 입시 컨설턴트까지 두고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 방법과 전략을 짜고 입시를 준비하는 형태를 보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용기를 북돋아주고 자신감을 심어주고 칭찬해 주면서 더욱더 빠져들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데 노력했다. 남들은 어릴 적부터 학습지 선생님을 부르고 학원을 보내고 했지만 나는 대부분 이때 이 정도 학원은 보내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들 속에서 소신껏 내가 생각한 우리 아이 맞춤 교육을 위해 노력했었다. 관심사에 대해 충분히 빠져들게 하기, 좋아하는 것을 최대한 시켜주기, 아이와 즐겁게 놀면서 서서히 스며드는 공부하기 등.. 조금은 다르게 내 아이에게 맞는 사교육을 선택하고 싶었다. 공부 위주의 학원에 아이를 묶어놓는 대신, 엄마와 함께 공부를 하고 내가 해줄 수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학원을 선택했다. 하지만 공부를 좀 시키려고 마음먹은 엄마들은 일찍부터 아이에게 영어와 수학 공부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아이들의 형태를 보니 그렇게 하는 것이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깊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는 입시형 교육으로 이미 각이 잡힌 아이들이 있는 학원에 늦게 들어가면서 그 속에서 나름의 고충을 겪으며 감내하고 힘들어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나라 입시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들이 공부하는 태도가 눈에 거슬릴 때면,


“너 지금까지는 괜찮았지, 중학교 가서 첫 시험 보면 성적 쫙 나오니까 두고 봐! 얼마나 잘 나오는지 보자!”


화가 나서 이렇게 내뱉어 버리곤 한다. 아들은 또 이 말에 얼마나 상처를 받고 공부에 대한 압박을 받았을까. 아니면 모르쇠로 그냥 흘러버렸 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시험에 대한 압박감, 중압감을 어느 정도는 갖고 살아가는 것이 나태해지는 학생들에게 정신을 바짝 차려줄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유난히 입시에 열을 올리고 사교육이 성행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시험에 나오는 공부와 책을 골라 읽는 현실을 보면 늘 안타깝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아들의 수학 학원 관리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려 20분 동안 통화를 하면서 학원들이 하는 뻔한 말들을 들으며 부아가 치밀기도 하고 아이 공부 방향에 대한 선택을 나보고 하라고 하는 식의 행태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늘 학원들은 그렇지. 돈 벌어야 하니까..

정말 마음 같아선 학원을 다 빼고 마음껏 하고 싶은 거 하며 쉬게 하고 싶다. 그런데 본인도 그러면 안 될 것 같다고 하고 나 역시도 선뜻 그렇게 못하고 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겠지. 이렇게 엄마도 아이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6년 후 어영부영 수능을 치르겠지. 아쉬움을 가득 안고 고사장을 나서겠지. 적어도 아들이 본인의 성적을 떠나서, 고사장을 나서며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고, 나 역시도 그렇다.


예비 중1을 둔 엄마의 마음은 착잡하다. 아이는 또 어떨까. 세상의 잣대가 무섭고, 환경이 주는 영향이 크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어떤 주변 환경 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던지 간에 본질을 잊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자존감만큼은 잊지 않기를 바란다. 엄마는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리고 아이를 다독인다.


이런 것들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성장해 있겠지.

아이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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