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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Feb 05. 2024

행복을 말할 수 있는 아이들과 만나는 일

베이킹강사의 일상 속 행복



"엄마, 나는 오늘 하루 너~무 행복해. 좋아하는 베이킹을 해서 너무 즐거워."


수업 중 해맑게 웃으며 짧은 두 팔을 크게 벌려 커다란 원을 그리며 행복한 미소를 가득 지어주는 한 꼬마아가씨의 예쁜 말과 표정이 내내 맴돈다. 퇴근길, 차 안에서 이 아이 덕분에 나도 이 말을 복기해 본다.


"너무 행복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어서."


겨울이었지만 유난히도 따스했던 어느 날, 이른 저녁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되새겨보는 말, '행복'.


다음 주에 이 꼬마아가씨를 다시 만났는데 여전히 행복한 모습으로 즐겁게 반죽을 한다.

아이의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어머님, 지난주 아이가 해준 말, '베이킹을 해서 너무 행복해!' 이 한마디에 저도 너무 행복해졌어요. 어쩜 이렇게 자신의 행복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셨어요.! 너무 예쁩니다."


어머님은 아이가 그런 말을 했었냐며, 정작 표현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딸이 힘든 면도 있다며 웃으신다.

참 행복한 가족이다.






12월부터 시작된 8개의 센터들을 돌아가며 진행한 거의 매일 있었던 베이킹강의에서 많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만났다.

대충 기록을 헤아려보니 12월, 1월 두 달간 약 340명의 수강생을 만났으며, 엄마나 아빠가 함께 수업에 들어오는 강좌도 있으니 대략 500여 명은 만나지 않았을까 싶다.


강의에서는 만 3세에서 초등학생, 그리고 성인분들까지 다양한 수강생들을 만나고 있다.  짧게는 50분, 길면 2시간의 수업을 홀로 이끌어가는 강사로써, 수강생들과 함께 호흡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들기 마련이다.

또한 베이킹강사로써 수업을 준비하기 전과 후에 챙겨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행여 실수가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철저히 준비하고 미리 시뮬레이션도 해본다. 이 일을 한지 벌써 15년이 지나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늘 새로운 수강생들을 만나곤 하니, 항상 단정하고 바르게 임하려고 한다. 좋은 재료들로 세팅한 맛있고 건강한 레시피로 수업을 준비하며, 아이들 수업은 특히 해당 연령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수업 공정을 넣는 품목을 준비하고 과정을 만들어 내는 등 여러모로 신경 써서 준비하고 있다.


내가 수업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베이킹활동을 좋아한다. 물론 간혹 가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엄마가 신청해서 자리한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활동이 시작되면 관심을 보이고 즐겁게 따라오고 집중해 준다.


베이킹을 하는 동안 다양한 아이들을 만난다.

시종일관 해맑은 미소로 쫑알쫑알 입이 쉬지 않고 행복하고 즐거움을 표현하는 아이,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집중하며 공정 하나하나 정성을 다하는 아이, 선생님이 말을 걸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는 아이, 반대로 말이 많고 선생님을 자주 찾아 어머님이 오히려 아이 입을 막아가며 부끄러워하시는 아이도 있다.

한편, 엄마가 자기 작품에 손을 댔다고 울상인 아이, 작품이  맘대로 잘 안되는지 짜증이 나는 아이, 각 공정마다 아이들 흥미도가 다르기 때문에 끈기 있게  한 공정을 오래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정말 많은 아이들을 만나왔기 때문에 적절한 대처를 해주면 아이들은 이내 즐겁게 베이킹 활동을 이어나간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점은, 오랜 활동이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는 빠른 화제전환을 해주는 것이 잘 먹힌다는 것이다. 또한, 어머님들이 평소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봐가면서 적절히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활동에 어느 정도 개입을 해야 할지 등도 결정을 하게 되는데, 이 것은 굉장히 미묘한 부분이기도 하고 오랜 경험 끝에서 나오는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유독 엄하게 하는 어머님들이 계시다면 조금은 천천히 다가가려 하고, 아이의 떼를 이겨내지 못하고 끙끙대는 어머님이 계신다면 다가가 아이에게 재미있는 말을 걸며 손은 재빠르게 해당 공정을 마무리하고 아이에게 폭풍칭찬을 해주면서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며 화제전환을 시켜준다. 그렇게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진정이 되고 어머님과 함께 평화롭게 활동을 하곤 한다.


거의 매일 있던 아이들과의 수업을 통해, 마스크를 써서 잘 보이진 않겠지만 늘 엄마미소를 장착하고 아이들과 호흡한다. 아들이 이제 훌쩍 커서 내 키를 넘어서고 목소리도 굵어지고 말수도 적어지니 일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보면 아들 어릴 적도 생각이 나고 애틋하며 아이들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반대로 아이들로부터 행복한 에너지를 받고 있었다.


1월의 마지막주, 초등학생 대상 방학특강 4주 코스를 참석한 한 아이가 마지막날 나에게 내민 편지봉투.

수업 준비하는 동안 강의실 밖 유리벽에서 선생님을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고 웃어주던 이 친구는 처음에는 부끄러움도 있고 말을 걸어도 대답도 어려워했지만, 4주 차가 되니 제법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친다.

아이가 내민 편지를 읽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안녕하세요. 저는 000입니다.

아이들에게 요리하는 방법도 알려주시고 처음에는 부끄러웠는데 하다 보니 재밌었어요. 그런데 오늘이 마지막이라서 너무 안타까워요.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겠죠? 아주 특별한 베이킹선생님  훌륭한 선생님 그럼 안녕히 계세요.

000 올림.



누군가에게 아주 특별하고 훌륭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게 또 가르쳤던 어린 학생이었다는 것만으로 감동 듬뿍 받았던 어느 날이었다.

바쁘게 사는 것이 내 성격상 맞는다고 생각해서 달려오고 있다가, 갑자기 며칠간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멈춰버렸던 며칠.  쳇바퀴 돌듯 살아가다가 처음으로 멈춤의 시간을 경험했다.


그 시간 동안 갑자기 무엇을 향해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렇게 한순간에 일도 생활도 멈춰질 수 있음을 알고 나니 살짝 내 삶은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는 걸까 라는 상념에도 젖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생각들의 끝자락에 한 아이로부터 받은 편지 속에서 나에게 '아주 특별하고 훌륭한 선생님'이라는 문구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한편, 뿌듯해졌다. 내가 나에게 고마웠다.


좋아하는 베이킹을 해서 행복하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할 수 있는 꼬마아가씨처럼, 나도 내가 좋아하는 베이킹을 일로하고 있으니 행복한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특별하고 훌륭하다 칭해주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이 길을 홀로 묵묵히 걸어가는 동안 겪어왔던 서러웠던 감정들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이 편지를 받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왠지 모르게 펑펑 눈물이 났다.

이 눈물은 기쁨의 눈물인지 혹은 행복의 눈물인지 아니면 회한의 눈물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적어도 순수한 아이들을 계속 만날 수 있고, 그 속에서 행복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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