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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 Aug 21. 2019

신들의 봉우리, 유메마쿠라 바쿠

꽤나 제 취향인 타임 킬링용 소설, 만화입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

위험천만한 경험을 직접 하는 것은 무서워서 싫지만, 안전한 침대 위에서 대체 경험은 해보고 싶은 사람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소설/만화를 읽고 싶은 사람

고독한 미식가 만화를 좋아했던 사람

에게 추천하는 소설/만화이다. 



소설판. 안타깝게 품절

나는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얼마 전에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다던 친구 P에게 이 책을 추천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냉정하게

등산 소설 안 사요 안 사. 돌아가

하고 나의 조언을 쳐냈다. 알고 보니 그의 아버지가 등산 마니아였기 때문에 P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이산 저산 등산히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사춘기를 지나며 등산이라곤 싫어졌다고 한다. 그제야 나는 아, 이 책을 읽는데 아재/아빠들의 땀내, 강제적인 하이킹, 무더운 여름, 그래서 등산 싫어 같은, 그런 장벽이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나 역시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몸 쓰는 것을 하나같이 다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 티피컬 한 이과 계열 대학원생이라고 하자) 하지만 산 꼭대기에서 아래를 바라볼 때의 그 짜릿함(과 공포와 성취감), 그리고 새하얗게 눈으로 덮인 산의 절경, 이를테면 이 글의 커버 이미지라던가, 혹은 


이런게 싫을 리가 없잖아

위의 저런 풍경. 


그런 풍경을 보는 것까지 싫어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나 대신 시릴 만큼 무서운 다짐으로 산을 오른다. 그리고 생생하게 산의 높이와, 위험함을, 그리고 덤으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얽힌 한 가지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유메마쿠라 바쿠가 쓴 소설 "신들의 봉우리"는 그런 소설이다.


"등산"이라는 단어에는 아저씨들의 땀냄새가 묻어 있다. 어쩔 수 없다. 젊은 층의 일반적인 취미라고는 하기 어렵다. 부모님과 함께 올랐던 산이 기억난다. 저 멀리서 벌어지던 술판, 등산용품을 팔던 상점들.

솔직히 이 소설 속 이야기는 산을 오르는 아저씨들의, 좀 땀내 나는 이야기가 맞다. 하지만 설령 그런 땀내를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책을 읽다 보면 솔직히 그들의 이야기에 빠지게 된다. 유메마쿠라 바쿠는 산악 소설에 미스터리를 교묘하게 살짝 얹어서 산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까지 이야기에 끌어들인다.


소설, 그리고 소설을 바탕으로 한 만화는 영국의 유명한 산악인 조지 말로리(실존인물로서,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다 실종되어, 1999년이 되어서야 그 유해가 발견되었다)의 카메라에 얽힌 이야기로 시작된다. 


사진작가 후카마치 마코토는 우연히 조지 말로리의 카메라를 에베레스트 산 아래 마을의 미심쩍은 산악 용품점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작가는 바로 공식적으로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한 사람은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지만, 어쩌면 실종된 말로리가 최초의 등반자일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독자의 관심을 끈다. 말로리가 언제 실종되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는 산을 오르던 중에 숨을 거두었나, 혹은 하산 중에 숨을 거두었는가? 말로리가 찍은 필름만 있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후카마치는 긴장 속에서 카메라를 연다. 필름만 있다면, 그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관련된 가장 큰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망이다. 후카마치가 발견한 카메라에는 필름이 없다. 그렇다면 필름은 어디에 있는가? 아니, 애초에 말로리의 카메라가 어떻게 산악 용품점에 있는가? 대체 그것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누구인가? 필름은 어디에서 사라진 것인가? 후카마치는 필름을 찾기 위해 탐문을 시작한다. 그리고 말로리의 카메라에 대한 조사를 계속하던 후카마치는 오래전 산악계에서 잊혀진 한 산악인의 그림자와 조우하고, 유메마쿠라 바쿠(=작가)는 비로소 산을 등반하는 사람들의 열기 가득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짜릿하다. 하지만 내 목숨은 하나이고 나는 운동신경이 없는지라 내가 하고 싶지는 않다. 

적당한 스릴과,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생생한 묘사, 그리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어쩌면 무의미할지도 모를, 산 정상에 서고자 하는 사람들의 땀내가 훅, 하고 얼굴을 때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소설 속 저 사람들은 대체 왜 위험천만한 산을 오르는 걸까?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데?

나는 못해. 도저히 못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위험하게 매달려 있는 소설 속 인물들, 심지의 자의로 그 경계선에 선 그들의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재구성한다. 배경에는 새하얀 만년설과, 위험한 바위만이 존재한다. 하늘은 이미 어둑어둑하고, 바람은 거세게 불기 시작한다. 등산복을 껴입은 사람들이 높이, 더 높이 올라간다. 이번에는 위험천만한 위기를 넘긴다. 하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그런데, 대체 왜 나와 당신과 우리는 (마치 신들의 봉우리 소설/만화 속 인물들이 아등바등 산을 오르듯) 왜 죽을 둥 살 둥 세상을 사는 걸까?

조지 말로리는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하는지 묻는 기자에게

Because it is there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George Mallory, 1915

이 말이 질문에 대한 한 가지 해답이 될 수 있을까?


만화판. 고독한 미식가의 다니구치 지로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Caveat

- 제 취향인 소설/비소설/영화/음악/요리/등등등에 대해서 씁니다. 

- 될 수 있으면 지나치게 유명한 책과 영화들에 대해서는 쓰지 않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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