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님 미니 일곱번째
나는 미용실을 싫어한다. 데인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 매직 해달라고 했는데 더 비싼 거 해놓고는 돈을 더 달라는 경우도 있었고, 투톤헤어를 해달라고 했는데 보라색도 예쁠거 같다며 군데 군데 브릿지를 넣고서는 염색값을 더 받지를 않나, 앞머리만 자르러 간건데 자르고나서 머리를 감겨주더니 2만원을 달라고 하지를 않나(나는 이때 이걸 '샴푸'라고 부르면서 가격을 책정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런 경험들로 인해 미용실을 최대한 안가려고 한다. 매사에 쪼들려서 힘들어 죽겠는데 내 의사에 반해 돈을 더 내고 오면 정말 불쾌해지기 때문이다.
어지간히 안가니 중2 때 이후로 어련히 길어지면 단발로 쳐냈던 내가 긴머리를 꽤나 긴 시간동안 고수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명실상부 숱부자. 누구든지 나의 묶은 머리를 보면 감탄할 정도로 정말 숱이 많다. 게다가 반곱슬이어서 안쪽 머리는 꼬불꼬불한데다가 몇 번의 탈색으로 부스스해진 그런 복실복실 커다란 빗자루 머리였다. 일례로 인턴할 때 오랜만에 똥머리를 하고 갔었는데 옆자리 차장님이 '휘경 대리 얼굴이 작았구나~ 맨날 사자머리 하고 와서 몰랐네'라고 면전에 얘기했을 정도. 그러다 자기 전 유튜브로 우연히 '셀프허쉬컷' 영상을 보게 되었다. 아니 머리를 뒤집어 묶은 다음에 일자로 자르기만 하면 허쉬컷이 된다고? 이건 나도 하겠다! 싶어서 당장 불키고 거울 앞에 가위를 갖고 앉았더랬다. 어차피 머리는 자라고, 정말 충분히 길다싶어 훽 묶은 다음 서걱서걱 잘라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엄마가 감탄했다. 잘 잘랐는데? 평소에 앞머리도 귀찮기도 하고 돈도 돈이고 해서 혼자 잘랐는데 뒷머리까지 잘 잘랐다니! 게다가 너무 가벼워! 뿌듯하고 앞으로 미용실 안가도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셀프 허쉬컷을 하기 전 혼자 검정색 염색도 했었는데, 꽤 잘됐었다. 염색에 커트까지.. 물 건너 미용실 돈이 비싸다는 해외가서도 잘 살겠구먼 했다.
이게 바로 화근이었다.
비대면 수업때문에 전보다 밖에 잘 안나가서 머리를 매일 감지는 않는데, 또 이게 이틀이 지나면 감아야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머리가 너무 길고 숱도 많아서 보송이 마르는데 정말 뻥안치고 1시간이다. 하여튼 그래서 감는 것도 샴푸 많이 들고 말리는 것도 일이라 계속 더 짧게 자르고 싶던 차, 저번에도 그랬는데 못할 게 뭐있어? 싶어 또 한번 머리를 훽 묶고 서걱서걱 잘랐다. 중간 중간 풀어서 보면서 했는데도 영 만족스러운 짧기가 아니어서 두어번 더 잘랐는데 약 10분 뒤 멘붕 상태에 빠져버렸다. 너무 많이 자른데다가 진-짜 지저분해서 어디 뒹굴다가 온 것 같았다. 불규칙한 길이, 붕뜬 머리, 몽땅해진 옆머리... 그날 고전물 책 덮고 눈물 찔끔하며 잤다.
그리고 다음 날 미용실에 갔다. 예약 안하고 갔는데 다행히 빈 시간이라서 바로 잘라주셨다. 그간의 기록으로 봤을 때 실례가 되든 안되든 여쭤봐야겠다 싶어서 가격을 미리 여쭤봤다. 친절하게도 샴푸 가격도 알려주셨다. 샴푸는 빼고 커트만 해주세요. 레이어드로 하고 싶은데 디자인컷은 가격 추가되나요? 아뇨 그냥 원래 가격이에요. 안심하고 머리를 맡겼다.
난 사실 지금까지 미용실 비용이 터무니없게 비싸다고 생각했다. 몇 분 걸리지도 않는 커트가 왜 몇만원인거지? 그렇게 따지면 시급이 도대체 얼마인거야? 하지만 그야말로 '개망한 머리'를 꼼꼼히 보시더니 구역을 나눠 한 묶음 한 묶음 정성스럽게 커트를 해주시는 것을 보고 바로 반성했다. 지금까지는 항상 데인 기억 때문에 화만 나고 나온 적이 많았는데, 어제 정말로 패닉 상태였어서 수습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오니 안보이던 것이 보인 것이다. 물론 내가 지금까지 간 미용실 중 제일 정성스럽고 꼼꼼히 잘라주시긴 했다. 사각사각 톡톡톡 쓔욱쓔욱 하는, 자르는 방법 따라 다르게 들리는 가위질 소리도 괜히 재밌게 느껴졌고, 내 머리가 점점 복구되고 있다는 것에 엄청난 편안함이 느껴졌다. 이런 전문적인 손길에 감탄하면서 이런 기술을 익히기 위해 수없이 연마했을 이분들의 노력을, 이 분야를 알지도 못하는 내가 이를 시급으로 계산하려했다는 것이 스스로 가소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직접 깨달아야 정말로 '깨닫는다'고 할만한 일이 많은 것 같다. 부딪히고 깨져보면서 세상을 배워나가야 한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 듯 하다. 머리 개망한 사건과 미용실에서 안정을 찾은 일이 노동과 기술,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묘하고 신기하면서도 감사할 일이니 말이다.
#뉴스아님 #미니 #2021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