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이유는 딱히 없는지도 모르겠다.
#꾸준히 글 쓰는 연습 + 한국어 연습을 위한 일환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수필을 업로드하려고 한다. 다소 개인적이고 급하게 쓰는 글이니만큼 완성도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한다. 브런치에 잡소리 하나 더 늘리는 것뿐일 텐데 결국.
전화기 카톡에 생일 알람이 뜨지 않도록 설정해 둔 지 오래다. 그래서 나의 생일도 보이지 않고 남의 생일도 보이지 않는다. 허나 왜인지 모르겠지만 랩탑 카톡엔 생일 리스트가 뜬다. 다른 친구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로그인한 카톡에서 C의 생일 알람을 봤고, 아무 생각 없이 축하한다고 말하고 얘기가 좀 길어졌다.
C는 나의 대학교 1년 선배, 그래도 내가 서울에서 그나마 다시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전혀 다른 전공으로 대학교 후반부에 동아리에서 만난 사이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인싸가 아니었다는 공통점 때문에 지금도 내가 감정적으로 많이 이입하는 것 같다. 그는 내가 아플 때 서러울 때 조용히 곁에 있었다 - 이성이었지만 이상한 느낌 없이, 그냥 아프다고 하면 얼른 나으라고, 새해가 오면 복 많이 받으라고, 추우면 따뜻하게 지내라는 메시지를 잊지 않고 보내주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번듯한 대학병원의 전공의가 된 그를 만난 건 지지난 번 서울을 방문한 3년 전쯤이었다. 그동안 일어났던 삶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가장 근접한 대학시절 인연이었다 (그쯤 성취한 사람이 부릴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는 얘기). 사람 몸을 다룰 일이 전혀 없는 내 직업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고민을 듣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도 종종 내 생일 축하를 했었고 (같은 달에 생일이 있다) 상술한 기억 때문에 3년 만에 보는 사이어도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넸다. 요즘 한국에 사는 이들과 말을 나누면 다들 빈말로라도 서울 언제 오냐고 묻는데, 그런 말도 없이 본인 지금 얘기나 우리 옛날이야기뿐이었다. 불현듯 깨달음이 왔다 - 이제 인연의 끈이 다한 것일까. 그에 대한 나의 호감의 대부분은, 그가 내 인생의 매우 힘든 시기에 나를 아껴주고 다독여주고 멀리서 지켜봐 줬다는 것과 그런 보살핌에 대한 부채의식이다.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그 사람과, 접점도 별로 없는 만남에서 내가 바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는데 왠지 그때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아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서울에 남기고 온 다른 인연들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으로 바꾸면서 예전 전화기에 저장해뒀던 좋아하는 메시지를 사진으로 찍어 둬서 기운내고 싶으면 가끔 열어본다. '너를 알게 돼서 좋아", "우리 같이 힘내자" 등등 예전의 따뜻한 메시지를 보면서 이 친구 저 친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는데, 1) 그 친구는 내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2) 그 친구의 지금 모습과 이 기억 속 모습이 같지 않다. 3) 설령 1과 2가 충족되어도 10년도 전에 좋은 마음으로 서로를 응원했다는 사실이 지금의 인연을 이어가야 할 하등의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의기소침해지곤 한다.
자라온 터전을 떠난다는 건 비단 유년시절의 혼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추억은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그 추억을 현재로 되돌릴 육신이 같은 장소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한 상실감을 유발한다. 그 상실감이 지금 내 선택을 후회할 만큼의 거대한 손실은 아니지만, 아주 가끔, 고등학교 시절의 그 어처구니없는 경쟁을 벗어나 진짜 가족 같은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던 시절이 그리운 때가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과 아량을 베풀었던 이들도 본인 삶의 무게에 버거웠을 텐데 말이다. 그런 이들 속에서 성인으로서의 홀로서기를 한 데에 감사하지만 그걸 다시 재생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그냥 숙연해진다. 수혜자로서 살았던 특별한 시기를 그냥 인정하고 넘겨버릴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 특별한 기억을 재생하려면 그냥 남들에게 베푸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시기가 다가온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