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울살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a Aug 22. 2019

제 친구 파티에 함께 가시겠어요?

함께 파티 가기의 어려움

2014년 6월 10일

정말 지긋지긋한 회사를 얼마 전에 퇴사한 직장동료가 (그렇다, 저건 본인이 현재 하루하루 힘겹게 다니는 회사이다) 조만간 퇴사 파티를 연다고 페이스북 초청장을 보냈다. 영어 타이틀은 Redemption Party. 살다 보니 퇴사 파티라는 것도 가게 됐는데, 파티 호스트는 유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평생을 톰보이로 살아온 사람이다. 이제는 친구가 된 이 사람은, 파티란 예쁘게 놀러 가는 곳이 아니라 대충 아무 때나 아무나 불러서 하는 것임을 잘 안다. 파티 공고는 아래와 같다.


"제 퇴사 파티에 초대합니다. 오셔서 힘찬 새 출발의 디딤이 되어주세요.... (중략)... 친구분 데려오셔도 환영입니다. 빈 침대와 침낭이 각각 하나씩 있으니 시외에서 오시는 분께서는 주무시고 가셔도 됩니다"


동생과 사는 좁은 집에서 여는데 숙소까지 제공하는 신개념 파티이며, 별도로 밝힌 바에 의하면 테마는 "구질구질". 그가 페이스북 메시지에 쓴 대표 이미지와 아주 잘 어울린다.



1. 치마 ㄴㄴ

2. 남이 밟아도 상관없는 신발

3. 술 쏟아도 상관없는 옷

4. 맨발 환영 (발 닦을 시설 완비)



가 대충의 code of conduct이다. 서울에 있으면서 부담 없이 사람을 만나고, 부담 없이 내 주위 사람들 간의 교집합을 만들어내는 일이 부족함에 아쉬움을 많이 느꼈기에 친구를 너무나도 데려가고 싶었다. 누구를 데려갈 수 있을까 전화부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는데 결과는 조금 암담했다.


망가짐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탈락했다. 늘 고급스러워 보이고 싶어 하는 욕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우월함을 가장한 벽을 쌓음은 물론이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가장 비겁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

너무도 전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사소한 주제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시 한번 탈락했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떠오른 이들은 직업상의 문제보다는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생각에, 삶에 거의 공통점이 없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 "hmm..."이상의 할 말이 있으려면 사소하고 기괴한 이야기에 대한 애정이 필수적이다. 공통점이 많아 보이는 한국 사람들 간에도 거대한 문화 차이를 느끼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인데, 새로운 사람들과 말도 안 되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예를 들어 '벨로시랍터의 울음소리는 몇 가지인가', '픽사의 전등 로고가 몇 번 점프하는가'와 같은 심오한 토론 주제 말이다) 편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구분은 중간지대라는 것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기 때문이다.

하나 아쉬웠던 기준은, 나이였다. 미국 어딘가였다면 충분히 초대할 수 있을 이들이지만 한국이라는 맥락 안에서 한국어를 쓰면서 엮이게 될 나이 역학 때문에 너무나도 멋진 사람들을 많이 제외해야 했다.


전화부에 저장된 이름 모두가 내 삶의 인연으로 소중하다, 그런데 "구질구질 랜덤한 퇴사 파티"에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단둘이 만나면 그 이상의 위안을 얻을 수 없을 만큼 깊은 대화를 하고 좋은 추억을 나누고 내가 많이 배우는 이들인데, 파티 이야기를 꺼내서 공감을 얻을 사람조차 많이 없었다. 까짓 파티가 뭐라고, 시작하지 않았어도 좋을 스크리닝을 시작한 나 자신에게도 실소가 나왔지만, 친구로서 그들을 바라볼 때와 다른 기준을 적용하게 되는 것은 흥미로웠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헬싱키에서의 기억이 있다. 우스펜스키 성당 근처에 Signora Delizia라는, 우리말로 하면 "별미 아가씨"정도의 이름을 가진 아담한 까페가 있다. 별미라는 말이 과장된 표현도 아닌 것이, 안에 들어가면 주인이 직접 공수해온 이탈리아 식료품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설명해드립니다"라는 글귀가 있다. 고르지 않은 바닥과 벽 굽이굽이 들어차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마치 아주 오래된 술집을 연상케 하는데, 서버와 주인은 이탈리아인이다.


내가 거기 간 날은, 진눈깨비가 헬싱키의 더러운 공기를 적시던 올봄의 어느 주말이었다. 작년 가을 여행하면서 주먹구구로 익힌 이탈리아어를 조금 썼더니 젊은 웨이터 (알고 보니 헬싱키 알토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산업 디자인 학도였다)가 유달리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는 곧 나의 extra hot extra strong 핫초코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성의 날' 이라며 50% 할인까지 적용하여. 물론, 여성의 날은 이미 지난 상태였다 :D


그러나 귀여운 이딸리아노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나에게는 현금이 없었고 시뇨라 델리찌아는 카드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싱크대에 들어갈 운명이었던 나의 엑스트라 핫 엑스트라 스트롱 초콜릿을 구해준 것은 나이 지긋한 핀란드 신사였다. "He says it's ok." 안쪽에서 대화를 엿들은 그가 돈을 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꽤 많은 시간이 흘러 까페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근 뒤에도, 그 핀란드 아저씨와 나는 바닥을 닦으며 가게를 정리하는 그 청년과 함께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딱 한 마디다.


"나 저녁에 파티에 초대받았는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


이탈리아 청년이 투덜댔다.

이탈리아에 연고가 많은 지인도 있고, 책에서 얼핏 본 풍월도 있어서 나는 저게 무슨 의미인지 빛의 속도로 감지했다.

그때 열쇠는 나에게 있었다. 딱 한 마디만 하면 되는 거였다.


"내가 같이 가 줄까?"  


그러나.... 조깅을 할 요량으로 뉴발란스 조깅화+유니클로 파카를 입고 나온 나는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party-eligible stranger로 그날 나는 너무 어색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올 테니 날 초대해달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지금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쓰는 내 기분이 마치 지난봄 페데리꼬의 그것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친구는 있어도 파티에 같이 갈 사람이 없을 수는 있으며, 파티에 같이 갈 사람이 꼭 좋은 친구는 아니어도 된다. 그냥 오다가다 만난 누군가가 perfect plus-one이 될 수도 있으니 파티란 참으로 멋진 행사가 아닌가 싶다. 이번 파티엔 동반자 대신 거대한 냄비와 참석할 예정이다. (냄비 속 친구는 french onion cheese bread) 다만 다음 파티엔, 나도 누군가를 데려가고 싶다. 혹은, 나도 누군가의 '파티에 데려가고 싶은 사람'으로 파티에 있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1863년 파리 살롱과 2014년 서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