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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Dec 13. 2023

유별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상치를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나는 사실 유별나다라는 말을 굉장히 듣기 싫어한다. “유별나다”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보통의 것과 아주 다르다.”라는 것으로 중립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내게 있어 “유별나다”라는 단어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사실 평균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라는 것이 한국인의 문화 같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개인적으로 어릴 적부터 “유별나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좋은 감정이 들었던 경험이 아예 없기 때문인 듯하다. 오히려 굉장히 나쁜 뉘앙스로 “유별나다”라는 표현을 들으며 자라왔다. 


“너는 왜 이렇게 눈물도 많고 징징거리고 엄살이 심하니? 너만큼 엄살 심한 사람은 없을 거야. 넌 너무 유별나” 라든가, “너는 애가 왜 이렇게 고지식하니? 너는 유별나.” 라든가 하는 표현을 어릴 적부터 들으며 자라 왔다. “유별나다”라는 단어는 나를 지적하기 위한 의도가 가득한 단어였기 때문에 그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불안감이 엄습해 오며 위축이 된다. 지금 생각하면 행동 자체가 아니라 특성 자체를 지적당한다는 부분이 내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처럼 느껴져서 더욱 무겁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하다.


특히나 어릴 적부터 대인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웠다. 친해지고는 싶었지만, 어쩐지 사람들에게 말 붙이는 것도 쉽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나와는 그다지 친해지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남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맞고 오는 것도 일상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네가 너무 유별나서 그래. 너무 징징거리니까 친구들이 싫어하는 거 아냐.”라는 말을 들어왔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유별난 사람”이 될까 봐 위축되어 가며 사회적 긴장도를 높여 왔다. 그렇게 긴장하며 다른 사람 앞에 나서서 말을 하기 어렵거나, 혹은 관계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가면서 아이러니하게 점점 더 유별난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점점 유별나다는 단어는 내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트리거가 되어 온 것 같다.





통계학에도 “유별남”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 이상치(outlier)라는 용어인데 정의 자체는 간단하면서도 추상적이다. “일반적인 데이터 분포를 따르지 않는 값”이라는 정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반적인 것이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바로 그것이 이상치 처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일반적인 분포와 다르다는 것은 사람마다 그 기준이 천차만별이다. 물론 이상치를 판별하는 기준이 어느 정도 있기는 하다. 표준편차의 N배 이상 벗어난 경우를 이상치로 보기도 하고, IQR(3분위수에서 1분위수를 뺀 값)에서 N배 이상 벗어난 경우를 이상치로 보기도 한다.  표준편차나 IQR 개념을 몰라도 상관없다. 요지는 이상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상이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주관성이 개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치가 발생했다고 판단했을 때, 이상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이상한 데이터니까 무시하고 데이터를 봐야 하는 게 맞을까? 혹은 특이 패턴이기 때문에 집중해서 봐야 하는 게 맞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역시도 사람마다 주관적이다. 버려서 봐야 하는 경우도 있고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하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이상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관점을 설정해야 하는 것이다. 데이터를 면밀히 살펴보고, 이상치가 분석에 필요없다는 판단을 하면 과감히 버려야 하는 것이고, 중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상치 그 자체를 분석할 필요도 있다. 


결론적으로 이상치가 발생할 경우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이상치에 대한 분석가의 해석이 중요할 뿐이다. 데이터 분석에서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면 사람 사는 일에 이상치, 유별남에 대해서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세울 수 없음은 자명하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해석이 중요할 뿐이라는 사실을 서른 넘어 조금 늦은 나이에 깨달았다.





여전히 “유별나다”라는 단어에 대한 감각은 여전히 불쾌하다. 혹시나 튀는 행동을 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내가 너무 못나보이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이 또 나를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엄습해 올 때가 있다. 어릴 때의 나는 그 감각에 사로잡혀 위축되었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상치는 그 자체로는 중립적이다. 개인의 해석이 필요한 일이다. 다소 공격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 이제는 “그래서 뭐?”라고 스스로 자문한다. 


“그래서 뭐?”라고, 해석을 요구하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없다면 내 유별남에 대한 감각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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