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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 Dec 20. 2019

수영 6개월, 내 몸의 변화

수영 배우러 갔다가 알게 된 것들_12

처음 수영을 시작한 건 몸 때문이었다. 오랜 컴플렉스였던 굽은 어깨를 펴고 싶었다. 구부정한 자세를 바로잡고, 어깨도 좀 넓어졌으면 했다.

올해 6월부터 11월까지, 어느덧 6개월을 꽉 채웠다. 생리나 휴가 때가 아니면 일주일에 3번씩 새벽 수영강습을 들었다. 다이어리에 수영 간 날 체크한 걸 세어보니 66번이었다. 50분 강습이니 총 3,300분, 그러니까 55시간을 물 속에서 보냈다.



 시간들은  몸을 어떻게 바꿨을까.


즉흥적으로 수영을 등록하게 했던 굽은 어깨는 아직 펴지지 않은 것 같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길을 걷다가 문득 내 자세를 의식해보면 여전히 어깨와 허리가 구부정할 때가 많다. 사실 수영이 굽은 어깨에 큰 효과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수영 초기부터 하긴 했었다. 수영을 오래 하면 어깨가 다부지고 몸이 탄탄할 줄 알았는데 수영 선생님들과 고급반 수강생들의 몸을 보니 모두 그런 건 아니었다. 선생님 중에는 나처럼  살짝 움츠린 채 걷는 분도 있었다. 평소 꾸준히 자세에 신경을 쓰며 바로잡지 않으면, 수영만으로 자세가 교정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수영의 주된 목적은 아니었으나 혹시나 했던 뱃살도 그대로다.

몸의 모양은 그렇다쳐도, 몸 상태가 좋아졌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품었었다. 지난달 회사 건강검진 문진표를 작성하며 나는 좀 설렜다. 운동 관련 질문 중 ‘지난 1주일간 평소보다 숨이 많이 차게 만드는 운동을 하루 20분 이상 한 날이 며칠입니까’를 읽으며 슬며시 웃었다. 손목 스냅을 부드럽게 꺾으며 ‘3일’에 V 표시를 하던 내 손놀림이 얼마나 거만했는지 모른다. 지난 10년 동안 운동 관련 질문에 늘 ‘0일’ ‘0회’ ‘아니오’만 체크했던 나다. 그런 내가 일주일에 3일이나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거듭나다니, 내가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위풍당당한 V 표시가 무색하게도 건강 상태는 변화가 없었다. 콜레스테롤과 식전 혈당 수치가 작년처럼 정상치보다 조금 높았다. 몸 상태를 바꾸기에  6개월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을 수도 있고, 수영이 이런 수치에는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 운동이어서일 수도 있다.



 때문에 시작했으나 몸은 그대로다. 다만 생각지않았던 변화가 있었다.

수영 등록 첫달, 물 속 호흡법 ‘음~ 파!’와 발차기, 팔 돌리기 같은 기초 동작을 하나씩 배울 때였다. 물 속에 있는 게 좋았고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재미있었지만 동작이 잘 늘지 않았다. 자유형을 할 때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숨을 쉬는 측면호흡이 되지 않아 며칠 동안 물만 먹었고, 제자리에 맴돌거나 오히려 뒤로 가던 평영 발차기 때문에 수영 배우기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끝내 못할 것 같던 그 동작들이 되기 시작했다. 뻔한 결론이지만, 자꾸 하니까 됐다. 무슨 일이든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는 것, 그 당연한 이치를 곱씹게 됐다. 이미 20년 넘게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머리에서만 겉돌다가 이제야 뼈와 살에 새겨지는 느낌이랄까. ‘몸소 체험하여 알게 됨’이란 뜻을 가진 ‘체득(體得)’이란 말은 이럴 때 쓰나보다 싶었다.

‘음~ 파!’처럼 아주 미미한 것도 자꾸 연습해야 한다는 걸 체득하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많이 읽고 연륜이 쌓이면 글도 저절로 잘 쓰게 될 거란 안이한 생각으로 글 쓰기를 미뤄왔었다. 수영이 글을 쓰게 만들 줄, 발차기를 배우기 전엔 상상도 못했다.

‘몸이 정신을 지배하는가,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서 나는 늘 후자를 믿는 쪽이었다. 굳건한 의지만 있다면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자주 늦잠을 자고, 목표했던 일이 늘 작심 3일로 끝나는 건 의지 박약 때문인줄 알았다. 하지만 내 몸을 관통한 수영의 즐거움과 작은 성취의 기쁨들은 새벽에 눈이 떠지게 했고, 몸으로 익힌 삶의 이치는 3일 넘게 글을 쓰게 만들었다. 몸을 통한 경험이 생각을 바꾸고 그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진, 내가 믿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순서로 일어난 변화였다.

또 하나, 완벽함에 대한 강박도 많이 벗었다. 적성검사를 하면 늘 나오던 완벽주의 성향, 스스로를 들들 볶는 그 성향이 싫었지만 어떻게 고쳐야할지 몰랐다. ‘적당히 하자’ 마음 먹어도 어느샌가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슬그머니 되살아났다. 초보면 수영 못 하는 게 당연한데도 동작이 안 된다고 안달하고 위축됐었다.

그런데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대며 온몸으로 철저히 망가진 시간들이 나를 좀 내려놓게 한 것 같다. 일이든 육아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이든,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는 걸 나는 우습고 민망한 몸놀림을 통해 배웠다. 처음엔 그 몸짓들이 너무 부끄러웠지만 그 모든 애쓰는 모습들이 값지다는 걸 천천히 알게됐다.



물론 오롯이 수영이 이 모든 것을 바꿨다고 할 순 없다. 이전부터 해 왔던 생각, 읽었던 책과 감명깊게 본 드라마, 친구들과의 수다 등 많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를 조금씩 바꿔왔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처음으로 한 운동인 수영이 이 변화들을 조금 더 앞당겼음은 분명하다. 올해 수영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물 속에서 보낸 55시간은 나를 조금은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일주일에 3번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 틈틈히 글을 쓰며 전보다 마음이 느슨해진 사람.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이 되어서 좋다. 그래서 기대했던 몸의 변화가 없는 게 별로 아쉽지 않다.


그러고보니 몸에도 변화가 하나 있긴하다.  개헤엄만 칠 줄 알았던 내 몸이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4가지 영법을 할 수 있는 몸이 된 것, 이것도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아직 기초동작만 흉내내는 정도지만 수영 실력이 느는 속도에 더는 연연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좀 더 좋아하게 된 이 시절이, 나는 아마도 자주 생각날 것 같다.

Photo by Haley Phelp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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