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모순>
2022.07.19 (화)
조금 은밀한 독서모임 4회가 끝났습니다.
우선 이번 모임은 글 공유가 늦었습니다. 변명을 하자면 너무 지치는 며칠을 보내서 글 쓸 엄두가 안 났어요. 그래도 제가 사랑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고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이처럼 나를 고민하게 했다가도, 행동할 책임감을 갖게 하는 무언가 인가 봅니다. <모순> 속 안진진은 자신이 사랑을 느꼈던 김장우에게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고, 입술을 맞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 때문에, 진진은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요. 그녀의 마음은 김장우의 투박한 지프차에 끌리지만, 결혼이라는 사업에 최적화 된 나영규와는 또 다른 탄탄대로가 펼쳐집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확실한 예약'을 해주는 나영규와의 결혼을 선택합니다.
사랑은 두 존재 사이의 상호작용이면서도, 따지고 보면 내가 중심이 되는 선택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두 남자의 속성을 저울 재듯 비교하던 주인공이 결국에는 '내가' 현재 가지지 못한 것을 찾아 결정을 내렸듯이, 우리도 은연중에 나의 기준에 빗대어 사랑을 재단하고 선택합니다. 그것은 나와 반대 지점의 사람을 선택하는 모험일 수도 있고, 역으로 내 결점을 보완할 사람을 찾는 안정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결혼은 더 많은 조건을 필요로 하는 사업이자 약속이죠. 모순적이지만 사랑과 결혼이 꼭 동일 선상에 있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경이로운 일으로 느껴집니다. 상대와 내가 하루에 하나씩만 다른 행동을 했어도, 그게 수십 년 간 쌓이면 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 않나요. 그런 두 존재가 새롭게 만나 둘만의 헤리티지를 쌓아가는 겁니다.
사랑뿐 아니라,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해도 내 안에 크고 작은 모순이 시시각각 일어납니다. 오래 준비하던 시험을 포기해도 오히려 좋기도 하고, 욕심은 많아서 일을 벌여놓고 게으른 몸을 일으키긴 싫고... 모임에서 저는 모순이 저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라고 했는데, 지금 보니 모순은 그저 삶 그 자체네요. 소설 속 가정의 비극이 어머니의 동력이 되고, 평화가 이모의 목을 졸랐듯이.
삶은 어디로 흐를지 몰라서, 우리는 변화와 안주 사이에서 그 어느 하나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아서 그것만으로 좋은 것들도 있고, 변하고 낯설어서 되려 반가운 것도 있습니다. 가장 희망적인 건, 양쪽이 공존해서 시너지를 낼 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안주하다 보면 변화를 위해 발로 뛰는 나를 발견할 테고, 변화에 지쳐 잠시 안정 속에서 유영하다 보면 그것도 그 나름 잠깐 행복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글처럼 쉽게 모순을 받아들이고 이점을 취하는 유연한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도 어쨌든 나를 살아가게 하는 모순이든 못 견디게 하는 모순이든, 소화하고 극복도 해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순과 잘 공존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어쩌면 합리화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 조금 더 나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면 뭐... 합리화 좀 하면 어떤가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어떤 모순과 인생이든, 뚫고 가보기 전엔 실체를 알 수 없다는 겁니다. 모두 살아가면서야 비로소 탐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그 탐구에 매진해서 순간순간을 주체적으로 즐기고 싶습니다.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는데, 나만의 역사가 쌓이다 보면 사랑도 삶도 깊어지리라 믿습니다.
모두, 늘 나의 인생 해석에 함께 해주어 감사한 밤입니다.
*위 글은 양귀자의 <모순>에서 발췌한 구절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