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녹천에는 똥이 많다>
2022.11.08 (화)
조금 은밀한 독서모임 11회가 끝났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목표와 신념이 있어서 살아가는 건지, 살아가는 이 삶 자체가 내 목표고 신념인 건지.
어느 방향도 틀린 건 아니지만, 우리가 이번에 읽은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이야기들에서는 분명 전자와 후자의 삶의 방식이 각자의 치열함을 가지고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진짜 사나이'의 장병만이라는 인물은 소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오늘맨입니다. 그를 처음 본 주인공은 명실상부한 밑바닥 계층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죠. 그러던 장병만은, 민주화 시위에 참가하면서 마치 군대처럼 한 곳만 바라보고 전진하는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섞이게 됩니다. 그가 그 속에서 진심으로 민주주의와 더 나은 나라를 꿈꾸었는지는 의문입니다. 단지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전에 없던 소속감, 또 정의를 위해 나아간다는 그런 느낌, 으로써 그가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꼈으리라는 겁니다. 결국 투쟁은 장병만의 삶의 이유이자 원동력이자 삶 그 자체가 되어버리고, 끝내 그는 사슬에 자신을 묶어 버티는 강렬한 최후를 맞습니다.
사실 결과만 놓고 보면 무엇이 중요할까 싶습니다. 맹목적일지라도 최전선에서 노력한 오늘맨들이 있었기에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하면서 또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했던 내일맨들이 있었기에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이어져 왔습니다. 다만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의 핵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지요. 오늘맨은 나의 뜨거운 오늘을 무시당하고 싶지 않고, 내일맨은 내가 쌓아온, 내가 곧은 신념을 가지고 내다보고 있는 내일을 누리고 싶을 테니. 장병만과 후배 기자 모두 지키고 싶던 그것들이 어렴풋이 이해가 갑니다.
두 번째 이야기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준식은 오늘맨에 가깝습니다. 어렵사리 정규직이 되어 아득바득 살아가고, 쓰레기와 배설물 더미 앞이지만 내 아파트를 마련하고, 필사적으로 똥을 참아가며 금붕어 어항을 집으로 옮기고... 그런데 그의 앞에 난데없이 잊었던 동생 민우가 등장합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양 내일을 말하며 살아가는, 순수한 듯하면서도 정말이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민우를, 당연히 준식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충돌은 결국 준식으로 하여금 운동권인 민우를 경찰에 고발하게 합니다. 물론 동생을 넘기고 나서도 그 애매하게 평범한 양심으로 어쩔 줄 모르고 도망치지만.
신기하게도, 우리 독서모임 인원의 절반은 다음 생애에 준식처럼, 절반은 민우처럼 살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모두가 준식이라는 인물에 더 공감했음에도, "그러므로 또다시 준식으로 산다 vs. 그러니 이번엔 민우로 산다"라는 입장 차이가 재밌었습니다. -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삶의 방식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때로 혐오하기까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인정하거나 나아가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두 자신의 오늘과 내일에 대한 태도를 되돌아볼 수 있던 시간이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합리화일지라도 각자의 인생에 각자만의 이야기를 붙이고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거겠죠.
*위 글은 이창동의 <녹천에는 똥이 많다>에서 발췌한 구절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