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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강 Cindy Kang Aug 23. 2019

집순이인 내가 어쩌다 뉴욕으로

서울, 뉴욕, 런던... 어쩌다 집을 떠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뉴욕 롱아일랜드 시티, 갠트리 파크, 2017


나는 조기 유학생이다. 아니, 그랬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던 2009년, 겨우 중학생이던 나는 유학이 유행이니 뭐니 하는 생각도 없었다. 중학교 졸업을 겨우 반년 앞두고 뉴욕 JFK 행 비행기를 탔다. 뭣도 모르고 동부로 공부를 하러 가니 당연히 뉴욕에 가서 생활하고 학교를 다닐 줄 알았다. 하지만 당연하다고 여긴 것은 늘 그렇지 않다. 나는 뉴욕에서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들어와 "백인들이 많은 안전한 동네"라고 불리는 코네티컷 주의 작은 학교로 가게 되었다. 이게 이 긴 이야기의 시작이다.


크고 작은 일들은 많이 있었다. 나는 집에서나 친한 친구들 앞에선 시끄러워도 밖에 나가면 온갖 내숭이란 내숭은 다 떨며 소극적으로 행동했는데, 이런 성격은 중학교 때도,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그냥 어딜 가던 절대 없어지지 않았다. 이런 내가 인생의 반을 아웃도어 스포츠를 하는 데 보내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있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한국에서는 친구들과 깔깔대며 아이돌, 연예인들 얘기, 동네에 생긴 새로운 분식집, 짜증 나는 학원 숙제 이야기 등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웃다가 목이 다 쉬어서 집으로 돌아온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이 내가 켜놓고 사는 싸이월드를 알 리도 없고, 한국에서 핫한 아이돌 오빠들을 알 리는 더욱더 없었다. (원더걸스의 텔미를 아는 친구 한 명은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얼굴에 낙서를 하거나 스티커들을 붙인 사진을 미니홈피에 올리고 서로의 사진을 퍼다 나를 때, 나는 이를 다 드러내고 외국인처럼--마음만은 로컬 미국인이었다--사진을 찍고 당당하게 보정 하나 없이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로선 참 힘든 적응기였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나는 유학생 타이틀에 익숙해진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점점 발랄하고 적극적인 한국인일 때의 모습과 외국인들 사이에 있을 때의 얌전하고 소극적인 모습에 괴리감이 생겼다. 어릴 때부터 외국에 왔다 갔다 하며 지냈기 때문에 영어가 불편하지도 않았는데도 왜 그랬는지 의문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는 그저 환경을 바꿔서 진짜 나 자신으로 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가 뉴욕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난 디자인을 공부할 거고, 이 촌구석에서 벗어나서 도시에 가서 내 진짜 모습대로 살 거야!'라는 생각 하나였다. 우리가 아는 뉴욕은... 고등학생이던 내가 알았던 뉴욕은, 늦은 시간에도 불빛이 꺼지지 않는 도시이며, 열정과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다른 서로를 인정하고 응원하며 발전을 위해 사는 멋진 곳이었다.


뉴욕에 있는 대학에서 합격 통지서가 왔을 때, 입학 결정을 내리고 가족들과 신나게 전화를 했을 때, 뉴욕행 짐을 챙길 때, 나는 정말이지 너무 설레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같은 학교를 가게 된 친구에게 카톡으로 '야, 가면 우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올라가 봐야지, 아냐 뉴요커는 그런 관광스러운 건 안 하나?' 하면서 낄낄대던 기억도 난다. 물론 저 위의 말이 죄다 틀린 말은 아니다. 생략된 부분들이 많다는 거지.




나는 뉴욕의 디자인 스쿨에서 일러스트레이션 학과를 졸업하고 미술관, 아트 페어 등 여러 예술 관련 기관과 기업들에서 경험을 야금야금 쌓은 후 현재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운 좋게도 런던의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활동하게 되었고, 베이스는 뉴욕에 두고 가족들이 있는 서울에서 왔다 갔다 하며 세계 여러 곳의 사람들과 연을 쌓고 작업을 하고 있다. 피땀 눈물을 흘리며 지내 온 과거가 생각나며 머리가 지끈하고 눈물이 핑 돌려고 한다.


그런데 잠시만. 갑자기 생각해보니 너무 이상한 거다. 난 사람을 만나며 에너지를 받는 사람도 아니며, 주말엔 가족들이랑 집에 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다. 사실 주중에도 집에만 있고 싶다. 가만히 앉아서 창밖으로 하늘을 구경하면서 공상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일이다.


이런 내가 어쩌다가 그 정신없이 바쁜 뉴욕과 사랑에 빠졌으며, 안정은커녕, 도전할 일 투성이인 프리랜서 아티스트의 삶을 살게 됐을까. 어쩌다가 그 좋아하는 집과 가족들을 두고 자꾸 여러 나라로 다니게 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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