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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뚜막 고양이 Jul 17. 2023

4. 단 둘이

<무제>

”집에 잘 들어갔어?”

나는 복잡한 마음을 잠재우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려와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밝았다.

“ 응 잘 들어왔어.”

“ 근데 말이야 너, 집 앞에서 왜 그렇게 날 급하게 가라고 했어? 너한테 할 말 있었는데 말이야. “

“아.. 아까는.. 엄마 들어오실 시간이라 마주칠까 봐 그랬어.”

“들키면 큰일이거든. 기분 나빴어?”

우리 엄마는 그녀의 존재에 대해 이미 아시는데 그녀에게는 비밀인가 보았다.


“근데.. 무슨 말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궁금한 듯 물어왔다.

“아니야 됐어”

“아 왜~ 궁금하단 말이야.”

“ 그게 말이야. 너한테 고백하려고 했는데, 망했어.”

나는 실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

그녀는 기쁜 듯이 보였다.

”아 몰라.. 제대로 고백도 못하고 이게 뭐야. “

우리는 그날을 1일로 지키기로 했다.


4월 15일은 우리 학교 개교기념일이다. 학교 생일이니만큼 우리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 틈을 타 그녀를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그날 우리 집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와 단 둘이 집에 있을 걸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띵동”

그녀가 우리 집에 도착해서 벨을 눌렀다. 그 순간 내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자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는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웃고 있는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헤벌쭉 해져서 따라 웃고 있었다.

먼저 내 방을 소개하고 나란히 내 침대 위에 앉았다.

무작정 우리 집에 초대하긴 했지만 나는 무엇을 할지 몰랐다. 그냥 동성 친구들이 왔을 때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갈 거라 예상했던 것처럼 그렇지 않았다.


“너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음.. 모르겠는데. 그냥 이야기나 할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켜해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자 입술이 촉촉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와 다르게 내 입술은 바짝 말라가는 느낌이었다.

”물 좀 마시고 올게. “

나는 얼른 주방으로 가 정수기에서 물을 따러마셨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다시 그녀 옆으로 가 앉았다. 나의 시선은 자꾸만 그녀의 입술을 향했다. 이러려고 우리 집에 그녀를 부른 건 아니었지만 키스를 하고 싶어졌다.

나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로 다가갔고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입술은 도톰하고 부드러웠다. 나는 그녀의 입술을 탐닉했다. 멈출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그녀가 내 침대에 누웠고,  나를 끌어당겨 안아주었다.

나는 하늘색 남방을 입고 있는 그녀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단추 4개를 풀자 가슴을 감싸고 있는 속옷이 드러났다. 큰 옷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그녀의 몸은 제법 육감적이었다. 봉긋하게 솟아있는 가슴을 보니 만지고 싶어졌다. 그녀의 가슴을 만져보았다. 속옷 위로 만지는 거라 살의 촉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느낌은 참 좋았다.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촉감이었다. 나는 흥분한 나머지 그만 신체의 변화가 생겨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얼른 입술을 떼고 살짝 이마에 뽀뽀를 해주곤 침대 끄트머리에 앉았다.


그리고 분위기를 전환시키려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영화 한 편 볼래?”

“어떤 거“

”아무거나.”

”좋아 “

그 당시 우리 집에 있는 비디오테이프는 별다른 게 없었다. 무슨 영화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내 방을 벗어나야 나의 욕구를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뮬란”을 골라 재생시켰다. 거실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의 화면은 재빠르게 지나가고 있었지만 나의 신경은 온통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우리의 몸이 닿아있지도 않았는데 계속 신경이 쓰였다. 영화를 보다 그녀는 내 어깨에 슬쩍 기대었다. 그녀의 머리에서 장미향 샴푸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그 냄새만으로도 나는 아찔해지고 말았다.

나는 다시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철컥 “

그때였다. 갑자기 현관문이 벌컥 열리고 내 동생이 집으로 들어왔다.

“너 뭐야. 이렇게 집에 일찍 온 거야.”

시간은 아직 12시밖에 되지 않았다.

동생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학교가 오전 수업만 하고 끝났어. “

나는 얼른 일어나 동생을 다시 현관으로 밀어내며 속삭였다.

”다시 나가. 얼른. “

”아 왜~집에 있고 싶은데. “

눈치 없는 녀석이 순순히 말을 듣지 않았다.

”이 자식,  일단 가방만 놓고 나가. “

나는 이를 앙다물고 힘을 주어 말했다.

나는 쫓아내듯 녀석을 집 밖으로 내보내고 다시 그녀 옆으로 돌아왔다.

”동생 괜찮아? 그냥 집에 있어도 되는데.. “

그녀는 걱정이 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 저 자식 옆동에 친구네 집에 가 있을 거야. “


우리의 분위기는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식어내려 버렸다. 다시 조금은 떨어져 앉아 영화를 끝까지 보았다.

영화의 내용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냥 끝까지 봐야 할 것만 같았다.


점심때가 지나자 어김없이 배가 고파왔다. 나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집 앞에 있는 분식집에 가서 김밥과 라볶이를 사 왔다.

“나 라볶이 좋아해.”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곤. 음식을 오물오물 씹어서 삼켰다.

그녀와 우리 집 식탁에서 음식을 함께 먹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우리가 결혼이라도 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녀와 결혼한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어떤 집에서 살까? 아이는 몇 명 낳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다 현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녀의 집만큼이나 큰집을 준비할 수 없을 것이다. 이내 나의 상상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밥을 먹은 후 내 방으로 돌아가 만화책을 보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평소 만화책을 즐겨보진 않는다고 했지만, 내 방에 꽂혀있는 만화책 중에 하나를 뽑아 내 침대에 엎드려 읽기 시작했다.

“ 나도 친구한테 이 만화책에 대해 들은 적 있어”

그녀가 골라든 책은 천계영 작가의  ‘언플러그드 보이’였다. 나는 그 책의 표지를 종종 따라 그리곤 했었다. 나도 얼른 만화책 한 권을 뽑아 들고 그녀 옆에 엎드렸다.

“미스터 초밥왕.”을 읽으며 낄낄 거리자, 그녀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즐겁게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 자식이 밖에 있으라니까”

나는 투덜거리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곳엔 남동생이 아닌 엄마가 서계셨다. 나는 깜짝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 엄마는 작은 사이즈의 낯선 운동화를 보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누구 왔니? “

”어.. 어… 친구… 친구가 놀러 왔어. “

”이현아 잠깐 나와봐. “

이현이도 방에서 나와 우리 엄마에게 인사를 드렸다. 우리는 나쁜 짓하다 들키기라도 한 사람들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안녕, 네가 이현이구나. 예쁘게 생겼네. 우리 상원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재미있게 놀다가.”

‘엄마가 왜 벌써 들어온 거지? 분명 약속 있어서 오후 늦게 돌아오신다고 했었는데.’

엄마가 들어오시는 바람에 나의 계획은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방으로 다시 들어와 뻘쭘히 앉아 있던 그녀는 이제 그만 집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엄마가 오신 게 많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이현이가 급히 가방을 챙겨 들고 현관으로 나오자,

엄마도 따라 나오셨다.

”더 놀다가지 그러니, 아줌마가 맛있는 것도 좀 만들어주고 그러려고 했는데... “

”아니에요.. 집에 갈 시간이 되어서요. “

”안녕히 계세요. “

나에게는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 그녀는 우리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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