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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스 Apr 03. 2024

아빠의 영화

브라키오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

    인생에서 제일 처음 본 영화가 뭔지 모르겠지만 극장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본 영화는 확실히 기억난다. 그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었다. 영화광 아빠는 매번 형과 나를 이끌고 고속터미널에 있는 극장에 데려가 영화를 보여주셨다. 그때 우리 집은 자가용이 없었기에 버스를 타고 30분이나 가야 했다. 동네에도 극장들 꽤나 있었는데 왜 거기까지 가야 하는지 어린 나이에도 이해가 안 되었지만, 아빠는 그 극장만 고집하셨다. 뭐라더라! 최신식이어서 스크린 크기도, 사운드도 남다르다 하셨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암튼 그날도 구름 떼처럼 몰려든 관객들 사이에서 우리 삼부자는 영화를 봤다. 좌석이 매진되어서 계단에 앉아서 봤다.      


브라키오사우루스 (쥬라기 공원 중에서)



     그날 나는 영화 속에서 공룡이 처음 등장할 때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주인공들이 사파리 트럭 같은 걸 타고 넓은 평원을 지나갔는데...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려 고개 돌리면 엄청나게 큰 초식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가 나무 위에서 잎사귀를 뜯고 있다. 그리고 저 멀리 잔잔한 호숫가에는 다양한 종의 공룡들이 마치 원래 거기 있었다는 듯 한가로이 공간을 누비고 있다.      


     ‘세상에~ 정말 살아 있잖아!’

     그걸 보고 전율이 일었다. 정말 마법이었다. 화석으로만 보던 게 저렇게 살아 움직이다니!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난 감탄사만 내뱉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집에 오는 길, 형과 나는 내내 영화 이야기만 했다. 공룡 중에 누가 힘이 더 세냐! 누가 제일 싸움 잘하냐! 그런 논쟁이었다. 결론이 안 날 때는 아빠한테 물어봤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는 답 없이 미소만 지으셨다. 당신은 늘 그런 식이었다. 필요할 때 빼고는 말이 거의 없으셨다. 버스에서 내려 집에 오는 길, 나는 아빠에게 다시 물었다.      


     “아빠! 그럼 공룡은 이제 없는 거야? 영화처럼 부활시키면 되잖아!”

     “이 바보야! 영화니까 그게 가능한 거지?”

     옆에서 까까머리 형이 대신 답했다. 시무룩해졌다. 초식공룡이 있으면 진짜 좋을 것 같은데... 영화의 감흥이 식는 느낌이었다. 그런 날 보던 아빠는 자리에 앉으시더니 나보고 자기 위에 올라타라 하셨다. 갑작스러웠지만 발이 아팠던 나는 옳다구나! 당신 어깨에 올라탔다. 불과 1m 위였지만 세상은 달리 보였다. 거리를 밝히는 등불이 흔들려서 그런가! 피부에 와닿는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무등 탄 채 얼마 걸었을까? 아빠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보라 하셨다.     


     “윤석아~ 저거 봐! 아직도 공룡이 살아있는데!”

     정말이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우리의 그림자는 브라키오사우루스의 모습이었다. 기분이 좋아서일까? 나는 뿌뿌! 하고 공룡소리를 내었다. 형은 그런 날 보더니 질 수 없다는 듯 티라노사우루스 흉내로 날 위협했다. 그렇게 우리 삼부자는 어둑해진 밤거리를 쥬라기 시대로 돌려놓으며 엄마가 차려놓은 저녁을 향해 네 발로 걸어갔다.     


     그때 느꼈다. 내가 꿈꾸기도 전에 이미 내 꿈은 결정되어 있다는 걸...      


     아빠는 그런 내 꿈을 전폭 지원해주셨다. 미술을 전공하셨기에 내게 그림 그리는 법을 알려주셨고 셰익스피어, 디킨즈, 알렉산드르 뒤마의 소설책을 사주셨다. ‘아바’와 ‘나나 무스쿠리’의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도, 축구 볼 때는 엉덩이 들썩여야 제 맛이라는 걸 알게 해 준 것도 당신이었다. 특히 당신은 찰리 채플린의 광팬이셨다. 집에는 채플린이 만든 모든 영화가 다 있었다. <모던 타임스><황금광 시대><위대한 독재자><시티 라이트> 등등... 그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조금씩 꿈을 키워나갔다.      


찰리 채플린 <키드>


     그리고 운 좋게 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영화감독 대신 ‘드라마 피디’라는 다소 안정적인 직업을 택했지만 말이다. 처음 방송국에 합격통보받았을 때 아빠는 야윈 몸뚱이로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날 꼭 끌어안으셨다.      


     “고생했다! 윤석아~”

     “다 아빠 덕분이에요.”

     정말 그랬다. 아빠의 피는 나였고 당신은 나의 살이었으니까. 내 머리칼을 쓸어 넘기시는 아빠, 그날만큼은 당신의 깊게 패인 볼우물이 보조개처럼 느껴졌다.      


     아빠는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셨다. 5년 넘게 지속된 항암치료와 통원, 그리고 기약 없는 입원이라는 무한 반복 속에... 아빠도 나도 우리 가족 모두 지쳐만 갔다. 촬영 없는 날에는 서울대병원에 와서 아빠를 돌보며 나는 의자 3개 붙여놓고 잠을 자야 했다. 괜찮아질 거라고 아빠를 늘 위로했지만 정작 나는 괜찮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고 또 너무 피곤했다. 남들처럼 데이트도 하고 싶었고 또 쉴 때는 여행도 다니고 싶었기에...    


     “지금 우리 아들 드라마 할 시간이네. 채널 좀 돌려봐요.”

     아빠는 내가 만든 드라마를 꼭 보셨다. 같은 병실 쓰는 다른 환자에게 저 드라마 우리 아들이 찍은 드라마라고 자랑하셨다.      


     “아빠! 제가 찍은 건 아니에요. 저는 그냥 조연출이에요.”

     “조연출이 어때서. 언젠가는 너도 연출할 거잖아!”

     괜히 그런 아빠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회사 일을 묻고 또 이성 관계도 묻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늘 궁금해하셨으니까.      


     “근데 요즘에는 소설이나 시나리오 안 쓰냐?”

     “글쎄요. 시간이 없네요.” 나는 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난 네 글 좋은데...” 그러면서 당신은 안타까워하셨다.      


     어느 날 아빠는 내게 다이어리 하나 구해 달라 하셨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지루한 병원 생활에 뭐라도 하는 게 당신을 위해 좋을 것 같았으니까. 아빠는 매일매일 뭔가를 쓰셨다. 일기라도 쓰시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몇 개월 지나고 아빠는 내게 다이어리를 건네셨다.      


     “이게 뭐예요?”

     “혹시 이야기 필요할까 봐.”

     아빠는 수줍은 목소리로 내게 말씀하셨다. 얼마나 열심히 쓰셨는지 다이어리 전체에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나는 열심히 읽었다. 아빠가 쓴 건 역사 소설이었는데 이야기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아무래도 아빠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좀 올드했다.      


     “어떠니?”

     “아빠 정말 고생하셨고 좋은데요. 요즘 트렌드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드라마 하기에는 조금 힘들 것 같아요.” 그렇게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 그러니... 아.. 혹시나 해서.”

     아빠는 그렇게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다.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것만큼 잔인한 건 없었으니까. 아빠는 내 어깨를 툭툭 치시더니 옆으로 돌아누우셨다. 나는 다이어리를 다시 아빠의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아빠는 돌아가셨다. 의사는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 했지만 단 한순간도 그 말을 믿지 않았기에... 당신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내게 크게 다가왔다. 평범한 일상 중에서도 발작처럼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제 곧 태어날 손녀를 한번 안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엄마랑 찍은 사진은 많은데 아빠랑 찍은 사진은 거의 없어서... 내가 연출한 드라마를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더 이상 그럴 수 없어서... 가슴이 메어왔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이제 7살이 된 딸이 날 반긴다. 열쇠를 열고 돌리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녀석은 현관으로 뛰어온다. 장난꾸러기에다가 겁도 많은 게 딱 나를 빼다 박았다. 가끔 딸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거울 보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물론 나보다 훨씬 예쁘지만)     


     “왜 이렇게 늦었어?”

     “아! 아빠 회의하느라.”

     “먹을 거 안 사 왔어?”

     “졸음 껌이라도 먹을래?”

     “오늘 내가 어린이집에서 쓴 시 보여줄까?”

     딸과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둘 다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하는데 어떻게든 이야기는 통한다. 게다가 이야기의 끝은 한결같다.      


우리 딸이 쓴 시 <가을바람과 놀다>


     “아빠! 안아줘.”

     “아빠 피곤한데...”

     내 대답 따윈 이미 상관없다는 듯 딸은 내 몸을 정글짐 삼아 기어오른다. 하루 종일 일하고 오느라 녹초 된 상태지만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하루가 달리 점점 무거워지는데 조만간 호빵맨처럼 목을 갈아 끼워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딸을 무등 태우고 집안 이곳저곳, 혹은 동네 한 바퀴 돌다 보면 예전 생각이 많이 난다.      


     ‘아빠도 날 업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렸을 때 나는 귀가 많이 아팠다. 귀에서 계속 짓무름이 나서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우는 날 업고 동네 한 바퀴 도셨다. 그때 아빠의 등에는 센서가 있는 것 같았다. 여름에는 시원했고 겨울에는 따뜻했으니까. 한없이 넓은 등판에 볼을 비비고 아빠의 체온을 느끼곤 했다. 그렇게 날 살피던 아빠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셨다. <울고 넘는 박달재> <신라의 달밤>이 아빠의 애창곡이었다. 구성진 당신의 목소리, 흥겨운 발걸음 박자에 맞춰 신선한 밤공기를 들이마시다 보면 내 울음은 점차 잦아들었다.  


     나는 아빠와는 달리 트로트 대신에 동요나 발라드를 부른다. <에델바이스><섬집아기>나 성시경의 <두 사람>이 주로 부르는 노래다. 음치라 혹여 누가 들을까 봐 소곤소곤 부르지만 그래도 딸은 제법 잘 들어준다. 신청곡을 말할 때도 있고 자기도 아는 노래가 나오면 둘이 같이 합창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몇 곡 부르다 보면 딸은 내 등에 업혀 새록새록 잠이 들곤 한다. 무겁지만 하나도 무겁지 않다. 팔이 떨어질 것 같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다.


      ‘아빠도 이런 내 마음이었겠지!’     


     멈춰 서서 밤하늘을 바라본다. 저기 아빠가 있다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저길 보고 있으면 당신과 통하는 느낌이 든다. 건강할 때 아빠의 모습을 그려야 할지 아니면 야윈 모습의 아빠를 그려야 할지 순간 헷갈린다. 그때 내가 내뱉은 목소리가 머릿속에 재생된다..     


     “아빠! 요즘 트렌드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비릿한 내 목소리 그리고 날 쳐다보는 당신의 씁쓸한 눈빛... 옆으로 돌아눕는 아빠의 모습...     


     이제 당신의 높이가 되니 당신의 마음이 보인다. 우리 딸이 내게 그렇듯... 나는 당신의 희망이고 당신의 걸음이었구나! 그때 왜 나는 그 마음을 미처 몰랐을까? 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그저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을 텐데...     

     “죄송해요. 그때 좀 더 따뜻하게 말씀 못 드려서...”

     하지만 이미 아빠는 아득히 먼 곳에 있다. 언제나 뒤늦은 후회 때문일까? 당신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당신은 이젠 여기 없지만 그래도 난 당신을 느낄 수 있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 영화를 닮은 당신은 여전히 예전처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날 내려보고 있다는 것을...

     조금 멀리 있을 뿐이다. 조금 높이 있을 뿐이다. 내가 볼 수 없지만 내 목소리는 닿는 거리에서...




    가로등 불빛 때문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보인다. 잠든 딸을 업은 내 그림자다. 25년 전, 그때와 많이 닮아있다.  

     “아빠 말이 맞네요. 아직도 공룡이 살아있어요!!”

     당신 목소리를 닮은... 나는 혼자 조용히 읊조려본다.





아빠 기일을 맞이하여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꺼내봅니다.

다들 옆에 있을 때 한번이라도 더 손을 잡아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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