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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Jun 30. 2024

0628 직원워크숍

2024년  여름일기

오늘은 직원 워크숍 날.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 번씩 전체 직원 워크숍을 하는데, 워크숍 담당자에 따라 장소와 활동이 달라진다. 이번 담당자의 선택은 명동이었다.


을지로입구역에서 모여 점심으로 크라운파크호텔에서 뷔페점심을 먹었다. 호텔뷔페인데 음식종류가 많지 않고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 조용히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오래된 호텔이라 중후한 분위기를 풍겨, 마치 내가 기업의 중역이 되어 점심을 먹는 거 같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기업의 중역이 아니고 기분만 재밌게 느낄 수 있는 게 더 좋다 싶었다.


밥을 먹고 나와 와펜하우스란 곳에서 자기만의 키링 만들기 체험을 했다. 난 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의 주인공인, 율마, 달, 고양이, 비행기, 기타, 펭귄을 골라 꾸몄다. 키링이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니고 단체프로그램이 아니라면 만들지 않았을 거였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골라 채워가니 물건에 의미가 부여되고, 이걸 달고 다니며 꼭 하나씩 이뤄가야 지란 마음을 먹게 됐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나름 괜찮았던 시간.


체험을 마치고는 예약해 둔 근처 그림심리치료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간단한 심리검사와 그림 그리기를 했다. 상담사가 불러주는 10개의 그림을 차례로 그리고, 나중에 돌아가며 그림을 채워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그림을 통해 나의 현재관심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잠깐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10명이 단체로 진행하다 보니 자세하고 깊이 있게 진행되지 못해 아쉬웠다. 한 가지 색의 펜을 선택해 그리게 했는데 그 색의 의미가 무엇인지, 10개의 그림이 뜻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나름 의미를 갖고 그린 것들이 어떤 마음상태를 보여주는지를 알려주고 해석해 주면 좋았을 텐데, 아무런 설명 없이 지나버렸다. 서로의 그림에 그려준 것은 어떤 의미였는지를 나누기만 했어도 의미가 있었을 텐데. 기대가 컸던 터라 아쉬움이 더 진했다. 그러다, 한 사람에 만원이고 차까지 주는데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게 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정도면 그 비용에 충분한 내용이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을 덜기 위해 나름의 그림 해석.

과거에는 특별한 것 없이 일을 하며 지내왔다면 지금은 일하는 곳을 바라보고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앞에 펼치진 수갈래의 다양한 길이 있고, 평안한 마음으로 집안에서 주변을 돌아보며 여유롭게 지낼 수 있는 미래로 향해가고 있다. 그리고 거기엔 푸른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고양이와 강아지가 있고, 주변에는 꽃들도 만발이 놓여있는 평화로운 곳이다.

음, 이렇게 해석하니 나쁘지 않네. 이번의 단체 체험도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심리치료카페에서 나와, 힙한 을지로의 가게로 향했다. 커다란 옛날 빌딩 안에 다방 분위기의 카페에 들어갔는데, 실제 다방을 커피숍으로 바꿔 운영하는 거 같았다. 아주 어릴 때 보았던 물건들이 자연스럽게 있어 실제 수십 년 전 다방에 있는 듯했다. 내가 어렸을 때 다방은 불건전한 이미지여서, 뭔가 금단의 장소에 와있는 거 같았다. 요즘 젊은 세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재미있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친구들과 다시 찾아와도 좋을 거 같은 곳.


다방 카페에서 잠시의 휴식을 갖고, 수제맥주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대회에서 금상과 은상을 받은 맥주집이었는데, 청년들이 운영하는 힙한 곳이었다. 하나씩 맥주를 고르고, 안주가 나올 때까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다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분이 "공유 같은 외모에, 너무 많이 나오는 이야기 같지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요."라 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 그렇지, 그거 중요하지.'

평소에는 그냥 익숙한 대답처럼 느꼈을 텐데 뭔가 다르게 다가왔다.


대화가 통한다는 건 그저 말이 잘 통한다는 일차원적인 내용은 아닌 거 같다. 워크숍을 하면서도 그런 걸 느낀 것이,내가 마음 편한 사람하고 있을 때는 웃게 되고 대화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때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고 하고 싶은 말이 잘 떠오르지도 않았더랬다. 그리고 대화를 한다 하더라도 그저 공간을 채우기 위한 소리가 되어 흩어져 날아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가는 사람과는 대화에 무게가 실려 그 사람과 나에게 남아있게 되는 걸 느꼈으니까. 그게 어쩌면 대화가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이지 않을까 싶었다.

평소에 말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는 나는, 대화하지 않아도 편안할 수 있는 그런 사람도 중요한 거 같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소리가 아닌 다른 형태의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이상형을 물을 때, 때에 따라 대답이 달라졌던 거 같다. 비교적 최근에는 ‘몸도 마음도 영혼도,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대인관계적으로 건강한 사람. 그리고  나와 잘 맞는 사람. 서로 사랑하고 위해주며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서로에게 좋은 인연.’ 그렇게 대답했던 거 같다. 거기에 나도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넣어볼까.


맥주집에서 대표적인 안주들을 섭렵하고, 2차로 을지로 골뱅이 집으로 갔다. 거기서 사이다와 함께 골뱅이무침, 노가리, 치킨으로 남은 배를 다시 채웠다. 역시, 탄산이지. 사이다를 먹으니 제대로 놀고먹는 느낌이 났다. 그렇게 잠시 다시 앉아 이야기를 하고 9시 20분에 자리가 파하며, 워크숍이 종료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그날 찍은 사진을 공유하며 진정한 마무리까지 완료.


오늘 하루, 9시간 동안 을지로 일대를 관광객처럼 돌아다녔다. 그 덕에 평소 알지 못했던 장소에서 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게 나와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그리고 단체생활 때 할 수 있는 경험이겠지.

여름의 평일 하루가 그렇게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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