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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Jun 30. 2024

0630 안경 고치기

2024년 여름일기

2024년 6월 30일(일) 갠 후 맑음


어젯밤 침대에 안경을 벗고 잠시 누웠는데, 나도 모르게 안경을 등으로 살짝 눌렀더랬다. 잠깐 엎드려있을 거라 생각하고 참대 위에 안경을 놓아둔 게 잘못이었다. 그래도 살짝 눌렸으니 괜찮겠지 하며 잠들었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 안경을 쓰는데 초점이 맞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안경다리가 아래로 살짝 휘어져있었다.


그때 시간은 10시 30분. 11시까지 선생님댁에 가야 하는데, 나갈 준비는 다 되어있었지만 가서 안경을 고치는 게 얼마나 걸릴지 몰라 안경점을 가는 게 고민이 됐다. 지금 가면 아슬아슬할 수 있어 돌아오는 길에 들릴까 하다, 몇 시간을 초점이 안 맞는 상태로 있으면 눈에도 안 좋을 거 같고, 돌아오는 길에 다른 일이 생길지 몰라 빨리 다녀오기로 했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의 안경점에 도착하니 10시 40분즘 이었다. 가게가 10시에 오픈이라 내가 첫 손님일 거 같았다. 들어가기 전, 첫 손님인데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고쳐달라고 하는 거라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 가게 첫 손님은 물건을 팔아줘야 그날 가게 매출이 좋다는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 난 안경대를 고쳐야 하고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이니. 미안함과 급한 마음을 안고 가게로 들어갔다. 사장님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아주셨다.  


사장님께 안경다리가 휘어져 고치러 왔다 하고 안경을 드리자, 사장님은 안경을 이리저리 보더니 갑자기 안경코를 빼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 안경닦이 천으로 안경코 부분을 닦고 새 안경코로 바꿔주셔서는 거였다. 이어 휘어진 안경대에 몇 번 힘을 주어 금세 고쳐주시곤, "안경을 그동안 잘 쓰셨네요."라며 건네주셨다. 내가 안경을 쓰고 잘 고쳐진 것을 확인하시더니, 안경닦이가 있냐고 물어보시고 새 안경닦이 천까지 선물해 주셨다.

'안경다리만 고치러 왔는데 안경코도 바꿔주시고 안경닦이까지 주시다니... 돈을 내지 않는 첫 손님이었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잘해주시다니...'

정말 고맙고 감동적이었다. 전에 안경을 맞추러 왔을 때도 가격과 상관없이 친절히 대해주셨던 사장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안경코는 그냥 바꿔줄 테니 오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사장님은 그냥 가도 된다며 인사해 주셨고, 난 고마움에 여러 번 인사하며 가게를 나왔다.

가게를 나와 걷는데 '다음에도 안경을 하면 꼭 여기서 해야겠다, 다른 사람이 안경점을 물어보면 여기를 소개해줘야겠다'란 마음이 절로 들었다.


가만히 앉아 손님이 언제 올까 기다리다 그저 시큰둥하게 안경테만 고쳐줄 수도 있는데, 그 이상의 것을 친절히 해주시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며,

'이게 안경점 사장님의 장인정신이구나, 이런 정신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 걸까, 이분은 어디서 그런 태도와 마음을 배우셨을까' 궁금했다. 장사가 안되면 친절하기도 어렵고, 그런 행동을 하기도 쉽지 않을 수 있을 텐데, 이분은 그런 순간을 어떻게 이겨내셨을까도 알고 싶어졌다.


건물 1층에 있는 동네 안경점. 이렇게 오랫동안 가게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이런 건가 싶었다. 손님에게 정성을 다 하는 것.

'그래, 그냥 안경을 팔고 고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게 있어야 이렇게 유지될 수 있는 거겠지.'


어쩌면 동네의 작은 안경점. 하지만 안경점 하나를 유지하는데도 엄청난 내공이 필요함을 느낀다. 오늘 동네에 숨어있는 고수 한 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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