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망한숟갈 Nov 19. 2019

글씨 잘 쓰는 시어머니 딸

시어머니의 글씨 잘 쓰는 딸을 인정해야만 했다

 시할아버지 제사가 돌아왔다. 매번 돌아오는 제사지만 영원히 익숙해질 수 없는 일 같았다. 제사 준비로 바쁠 것 같아 전날 미리 시댁에 가 있었다. 자유의사라기보다는 그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더 컸다. 새벽부터 시장에 가서 장을 봤다. 고사리, 도라지는 물론이고 산적용 고기, 과일에 야채까지 한가득 들고 시어머니 뒤를 쫓아다녔다. 나는 얼굴도 못 본 시할아버지를 위해 상을 준비해야만 했다.      

   시어머니와 나는 인연이라면 인연 일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아버지 제사 다음날이 어머님 생신이고, 시할아버지 제사 다음날이 내 생일이니 우연치고는 좀 깊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시어머니와 내 동생은 생일이 같고, 시아버지 제삿날과 우리 아빠 제삿날은 비슷하기까지 하니, 이 정도면 보통 인연은 아닌 것 같았다. 이런 묘한 우연처럼 관계가 끈끈하면 좋았으련만, 사사건건 겹치는 양쪽 집안 행사로 나는 친정 일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으니 사이가 좋을 리 만무했다.     

  5월 중순이라고는 하나 날씨로만 보면 한여름은 된 듯 무더웠다. 아침부터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서야 겨우 시댁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장에서 사 온 것들이 거실을 가득 매웠다. 시어머니는 손이 큰 편이라 음식을 많이 하셨다. 남은 음식은 시누들도 주고 작은 집들도 나누어 주는 게 미덕이라 여기고 사셨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요즘 제사 음식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비교적 젊은 나의 시각에서 보면 힘 낭비요 돈 낭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시어머니와 나는 어딘지 모르게 엉켜있었다.

“이제부터 엄마라고 불러라. 나는 네가 친딸 같아. 그렇게 친 모녀처럼 살자.”시어머니가 먼저 나에게 잘 지내보자고 제안했었다. 내키지는 않았으나 거절하기도 어렵고, 잘 지내려는 마음에 “네. 저도 좋아요.”라고 동의했다. 진짜 엄마를 하나 더 얻었다 생각하고 진심으로 잘하고 싶었다. 나중에 큰 상처로 되돌아올 줄 그때는 몰랐었다.          

  이번처럼 장에 다닐 때면 짐을 거의 내가 들었다. 나이 드신 분보다야 젊은 내가 낫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순서는 시누가 짐을 들면 시어머니 손으로 가고, 그 짐이 다시 내게로 오는 순이었다. 한참을 그러고 다니면 결국은 시누이랑 시어머니는 같이 걷고 있고 나는 짐을 들고 뒤를 쫓는 모양새가 되곤 했다. 나는 며느리니까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우선 밥부터 먹고 해요.” 

“그래 그러자, 밥 얼른 해 먹고 서둘러라.” 아침 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이었기에 먼저 밥을 해 먹기로 했다. 간단하게 전날 먹다 남은 반찬들을 놓고 대충 차려 밥을 먹었다. 

 “엄마, 청첩장이 왔네요. 누구 거예요?”거실 한편에 놓여있는 청첩장이 눈에 띄길래 물어보았다.

“친척 아들이 결혼한단다. 네가 이제 이런 델 다녀야 하는데. 친척이라고 길을 가다 마주쳐도 얼굴도 모르니... 그렇게 살면 안 돼. 이제 네가 다녀야지.” 했다.

“천천히 다닐게요.”건성으로 대답했다.

“둘째 언니(시누이 셋 중에 둘째)가 글씨를 참 잘 쓴다. 걔가 노래도 잘 부르고 정도 제일 많아. 근데 글씨를 그렇게 예쁘게 잘 쓴다. 학교 다닐 때부터 그렇게 잘 쓰더라.”하셨다. 분명 그 청첩장을 작은 시누이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는데, 청첩장 글씨를 작은 시누이가 썼는지 의심이 들었다. 뜬금없는 칭찬에 당황했지만 가만히 듣고 있었다.

“걔가 고집은 무지하게 쎄. 어릴 때부터 그랬지. 한번 쏘가지를 내면 웬만해선 풀리질 않았어. 근데 글씨 쓴 걸 보면 예쁘게 잘 쓰더라~.”시어머니는 한 손으로 청첩장을 든 채, 행복하고 인자한 눈빛으로 봉투에 적인 글씨를 보고 있었다. 글씨 잘 쓰는 게 대단한 재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

‘시어머니 친딸은 글씨를 잘 쓰는구나.’ 멍하니 생각했다. 

  결혼 생활하면서 나는 시어머니의 그윽하고 인자한 눈빛을 받아 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내가 식구들을 위해 설거지하고 청소를 할 때도 그냥 수고했다 였다. 큰 시누이가 떡집을 차렸을 때도 가서 집안일이며 떡집 일을 도왔다. 작은 시누이가 이사 갔을 때도 청소하는 시어머니 옆에 그냥 있기가 뻘쭘해 일손을 거들었다.

“잘했다. 수고했다.”이 말 한마디면 끝이었다.

단호하고 매섭던 얼굴이 지그시 감으며 미소 짓는 얼굴로 변해 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시어머니 말처럼 친딸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거실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나만 설거지를 할 때도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줄 알았었다. 

 식후 그깟 과일 아무나 깎으면 어떠랴만 굳이 굳이 내가 잘 자른다며 다른 사람은 손도 못 대게 말리는 신랑을 보면서도 ‘내가 하고 말지. 내가 잘한다는데 그럼 해줘야지. 에휴~’ 생각했었다. 시어머니가 겉으로는 무뚝뚝해도 속으로는 날 보고 계시겠지라며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었다.      


  오후 내내 제사상에 올릴 전을 부쳤다. 식구들이 좋아하는 두부는 큼직한 것으로 2모나 붙이고, 작은 시누이가 좋아하는 꼬치도 하고 넓은 제사 전도 붙였다. 제사가 끝나면 먹을 김치를 다시 담고, 저녁으로 먹을 찌개를 끓였다. 저녁이 돼서 식구들이 한두 명씩 오기 시작했다. 오는 순서대로 전도 내오고 새로 담은 김치도 내왔다. 나는 아침 먹은 게 다였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청소하고 설거지도 하고 하루가 길었다. 바쁘고 힘든 떡집 일로 시어머니 마음에 늘 안타까운 큰 시누는,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고, 글씨를 잘 쓰는 둘째 시누이는 거실에서 내 남편과 얘기하고 있었다. 친딸 같은 나는 진짜 친딸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후식을 준비했다. 

  처음부터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라 생각했다. 내가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시어머니 친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안 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걸 몰랐다. 

시어머니의 글씨 잘 쓰는 친딸을 인정해야만 했다. 


작가의 이전글 촌스러운 사랑이라 좋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