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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한숟갈 Nov 22. 2019

김치  금(NO)치!

시댁 김치는 사절입니다~

 “엄만데, 다음 주에 김치 담으려고 하는데, 너 올래? 심심하니까 와서 옆에 앉아 놀다 가. 뭐 할 것도 없어~” 갑작스러운 시어머니 전화에 당황하긴 했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가고 남편도 출근 한 시간이라 여유를 부리고 있던 참이었다. 평소 시어머니에게 좋은 며느리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고, 혼자 김장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마음에 망설이지 않고 단번에 수락했다. “네 엄마, 갈게요.” 대답은 했지만 나는 김치를 직접 담아 먹기 때문에 이런 전화를 받는 게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었다. 시누이 셋 중에 둘은 시어머니 집과 5분 거리에 살고 있다. 내 생각 같아서는 굳이 나를 부를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잊지 않고 전화를 했다. 그렇다고 내가 가서 정말 놀다 올 수도 없는 일인데 말이다. 큰 시누이는 떡집을 운영하는데 그게 입소문이 많이 나 장사가 꽤 잘 됐다.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로 늦게 오거나, 배추 절일 때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식이었다. 작은 시누이는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이었다. 약속을 해도 일찍 오는 법이 없거니와 올 때마다 아침을 시어머니 집에서 먹으니 와서 되려 일을 보태주는 경우가 많았다. 

 한 해는 전날 내려가서 마늘도 까고, 파도 다듬고 있었는데 시어머니와 둘째 시누가 내 앞에서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은정이한테 마늘을 믹서기로 갈아서 쓰자고 했는데, 얘가 안된단다.” 시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애가 좀 촌스럽잖아. 호호호.”시누가 대답하면서 농담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얘는 나이는 어린데 하는 짓은 꼭 애늙은이 같다니까.” “너는 일하는 게 그렇게 재밌니? 그러게 재밌으면 너 혼자 다 해봐라~깔깔깔~”시누이가 자기가 한 얘기가 너무 재밌다는 듯 큰소리로 웃었다. 나도 그냥 웃었다. 산더미 같은 일들은 당연히 일 좋아하는 내 차지가 되는 경우가 많았고, 시댁에서 김장한다는 전화를 받으면 마음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낮에 어머님 전화받았는데 김장한다고 내려오라 하시네.” 남편에게 말했다. 간절한 내 눈빛이 통하지 않은 채 남편은 대답만 했다.“언제 갔다 오는데?”

“담 주에.”시무룩하게 대답했다.

“그럼 밥은? 갔다가 바로 와.”남편은 내가 원하는 답을 하지 않은 채 자기 끼니만 걱정했다. 

“막차로 가서 다음날 저녁 막차로 올게. 애들은 둘 다  못 데려가니까 한 명만 데리구 갈라구. 버스 타려면 힘들어서. 둘째는 울 엄마한테 물어볼게, 하루만 봐줄 수 있는지.”

작은 아이는 친정엄마에게 맡기기로 하고 나는 큰아이만 데리고 내려가기로 했다.


일주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고, 김장날이 왔다. 버스는 평소보다 빨리 대전에 도착한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이왕 도착한 거 빨리 끝내고 돌아갈 생각에 서둘러 시어머니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니 나를 반긴 건, 하얗게 뽀얀 살을 내민 마늘 더미였다.

“낮에 언니들이랑 파는 다듬었는데, 마늘은 까놓기만 했다”시어머니가 나 보기가 미안했는지 말을 보탠다. ‘후~ 이러니 나를 부른 거겠지’.  마음을 가다듬고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백 포기가 넘는 절여진 배추가 화장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밤새 뒤집고, 씻고 해야겠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후회가 됐다. 

저녁밥이 생각이 없었기에 까놓은 마늘 먼저 살폈다. 양푼으로 한가득이었다.

“그냥 믹서에다가 갈아서 쓰자. 맛만 좋다더라.”시어머니가 신경이 쓰였는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마늘을 빻기 시작했다. 원래 단순노동이라는 게 신경 쓰고 싶지 않을 때나, 화났을 때 하기 좋긴 하다. 나도 모르게 안 좋은 기분이 티 날까 싶어, 그 일에만 열중했다. 쿵! 쿵! 쿵! 점점 빻는 소리가 커졌다.

 저녁식사 후 시작된 일이 새벽에 끝났다. 오랫동안 앉아 있으려니 다리도 저리고, 쉬지 않고 팔을 움직였더니 안 아픈 곳이 없는 것 같았다. 다음날 일을 해야 했으므로 마늘을 다 빻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 손에 밴 마늘 냄새가 슬슬 올라왔다. 잠이라고 해야 얼마나 잤나? 배추를 뒤집어야 하고, 또 다 절여지면 씻어야 했으므로 잠자는 건 거의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 이긴 했다. 

 다음날 아침 배추를 씻어 쟁여 놓을 때까지도 시누이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시어머니가 전화하니, 큰 시누이는 바빠서 늦게나 온다고 하고, 둘째는 천천히 오겠다는 대답뿐이었다. 먹지도 않는 김치 도와주겠다고 나는 경기도에서 어제부터 와있는데, 정작 김치 먹을 당사자들은 급하진 않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분주히 양념에 넣을 파, 양파, 갓들도 씻고, 자르고, 풀도 쑤고 시간이 빨리 가주기만 바랬다. 

  늦게 나타난 시누이는 역시나 아침도 안 먹고 왔고 일하다가 밥상을 차려 줘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점심때가 지나 이제 배추와 양념을 버무리는 일이 남을 때였다.

“배추를 너무 많이 준비해서 우짜냐? 은정아 너라도 갖다 먹을래?”시어머니가 수북이 쌓인 배추를 보며 걱정을 하셨다. 옆에 있던 둘째 시누이가 얼른 대답했다.

“엄마 나 줘요. 우리 시어머니 주게. 우리 시어머니는 장사하시던 분이라 김장 안 하시는데 우리 집 김치 맛있다고 하셨어. 한통 주지 뭐. 그리고 내 친구도 김장 이번에 안 하는 것 같던데, 걔도 한통 주면 좋아할걸.”시누이는 인심 쓸 일에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나는 가져가기 힘들다는 핑계를 대고, 아무 말 없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평소 김장을 하면 시어머니, 큰 시누이, 작은 시누이에 막내 시누이 이렇게 나누어 먹는다. 나는 멀기도 하고 친정엄마가 옆에 있어서 멀리 대전에서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사돈집은 물론 시누이 친구 김장까지는 내 몫이 아니라 생각하니 내가 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큰 아이는 혼자 할 일이 없어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둘째랑 같이 놀게 친정엄마에게 맡겨두고 올 걸 후회가 밀려왔다.

절여 놓은 배추 이파리마다, 일일이 양념을 채워 넣으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야속한 시곗바늘은 느리게만 돌아가고 있었다.

 김장이 마무리되고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이제 여러 개 나온 큰 통들을 씻어 놓으면 김장은 완전히 끝나는 것이었다. 통 씻기 또한 당연한 듯 나의 몫이 되었으므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커다란 통을 씻으려 낑낑거리고 있을 때 시어머니가 나를 보더니 급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빨리 나와 밥해야지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엄마, 통이 커서 엄마 혼자 씻기 힘드실 거예요. 이거 제가 씻어 놓을게요, 혼자 하려면 힘드시잖아요.”내가 대답하니

“시간 없다. 얼른 밥해서 얘 먹여 보내야지.” 둘째 시누이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엄마, 서두를 필요 없어. 천천히 가두 돼.”둘째가 내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빨리 밥 먹고 가야지 무슨. 밥부터 해라.”시어머니는 나를 보고 말하고는 거실을 계속 닦았다. 시계를 보니 서둘러 밥을 하지 않으면 나는 막차도 놓칠 것 같았다. 거실에 앉아 있는 둘째 시누이를 두고 안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불러 밥을 하라시니 갑자기 참고 있던 설움이 밀려왔다. 둘째는 차로 5분 거리가 집이고 나는 끝나고 경기도까지 가야 하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차도 없어 버스를 타고 아이까지 데리고 가야 하는 길이었다. 왜 놀러 오라고 전화를 하셨을까? 나는 또 왜 거절하지 못했을까? 후회만 밀려왔다. 

막차를 타기위해 서둘러 저녁을먹고 시댁을 나섰다. 버스 타고 오는 내내  큰 아이 손을 꼭 잡고 왔다.


  상처만 남은 김장을 끝내고 집에 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남편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속사포처럼 쏟아부었다. 했던 얘기 또 하고 울고 또 하고 울고... 얼굴이 퉁퉁 붓고 목소리까지 변할 때까지 울고서야 겨우 진정이 됐다. 

“다시는 가지 마. 전화 와도 못 간다 그래. 김치 안 갖다 먹는다구!”남편이 나를 달랬다. “다시 가고 싶지 않아. 안 가게 해줘. 내가 그리 이쁨 받고 자란 딸은 아니지만 누구도 나를 이렇게 대하지 않았어!” 겨우 달래는 남편을 향해 다시 쏘아붙였다.     

 길을 가다가 누가 시어머니에게 나를 보며 누구냐고 물으면 “응? 내 며느리. 딸이나 마찬가지야. 나는 딸이나 며느리나 똑같어.” 평소에 시누이가 많다는 게 걸렸는지 “너는 얼마나 좋으냐? 언니들만 있어서 일 생기면 알아서 다해 주잖아. 그러니깐 편하지.”이런 말을 자주 했었다. 이런식의 모순된 말은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마음속으로 ‘다시는 전화가 와도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나는 외며느리였으니까.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머릿속을 비우려고 양도 세어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잠든 남편을 두고 혼자 거실로 나왔다. 불도 켜지 않은 캄캄한 거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 밤은 참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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