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으로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후아는 뭘 하는 회사인가요?” 다음다음쯤에 꼭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여기 멤버들은 어떻게 만났나요?” 그러면 우리 모두의 표정은 'Long story short…'가 되곤 한다. 창업 멤버들이 만난 방식이 조금 독특하기 때문이다. ‘태초에 학교가 있었다’에서 밝혔듯 우리는 대안학교의 교사와 학생 사이로 만났지만, 그 관계가 또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과는 꽤 거리가 멀다. 사실 우리는 교사와 학생으로서 만났다기보다는 교육 커뮤니티의 구성원으로서 만나서 알고 지내다가 어느 시점에 창업을 하기로 의기투합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것은 CEO인 민진하가 서른 살이 채 안 되었는데CTO는 그보다 세 살 위고, 부대표인 나는 그보다 한-참 위라는 것이다. 물론 ‘대표는 창업 아이디어와 기획력을 가지고 있었고, 부대표는 행정과 회계 경험이 풍부해서 그 부분을 서포트하고 있다’라고 설명하면 대충 끄덕이며 알아듣는다. 하지만 (아직 그렇게까지 친하지는 않아서) 말하지 못하는 의문들이 표정에서 묻어난다. ‘그런데, 대표가 제일 어린데 지휘가 되나요?’
그게, 된다. 우리가 회사로서 모인 경력은 1년 반이지만, 우리는 모두 ‘커뮤니티 경력’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는 않아도 여전히 작동하는 세상의 원리 중 하나가 ‘짬’이라면, 그 ‘짬’으로 봤을 때 민진하는 말 그대로 짱을 먹는다. 커뮤니티를 만들기로 작정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결과 인생 경력=커뮤니티 경력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입학한 CTO는 자기 인생의 반절 정도,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커뮤니티에 오게 된 나는 역설적으로 막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진실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교육 커뮤니티’란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있다거나, 온라인 커뮤니티처럼 의견만 주고받는다거나, 같은 학교에 다닌다거나 하는 수준의 의미를 아주 많이 뛰어넘는다. 기숙사가 있는 대안학교, 그것도 부모님이 선생님인 학교에서 학생들을 기른다는 것은 가족과 친척 사이에 있을 어딘가쯤의 밀도를 지닌 공동 운명체가 된다는 뜻이다. 아니, 가족이라고 해도 아침 9시가 되면 삶의 터전으로 떠나서 각자의 하루를 보내지 않는가. 우리는 하루 24시간, 일 년에는 350일쯤을 함께 지냈는데, 이런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서로의 거의 모든 장점과 단점, 약점과 한계, 웃기는 지점과 인생의 흑역사까지 온갖 TMI를 좋든 싫든 다 알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십여 년간 함께 살아온 우리들의 관계는, 거의 그 시간 동안 결혼생활을 지속한 부부처럼 되고 말았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고 아낀다.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 힘들고 아팠던 기억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시공간을 점유하는 사람들답게 적당한 거리를 둘 줄 안다. 위험한 지뢰밭은 요령껏 피해 갈 수 있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이 그 스위치를 누른 뒤 후회하고 만다. 하지만 커피 한 잔을 하면서 다시금 평온함을 복구할 프로세스 또한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서로를 배신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 그냥 안다.
그리고 실제로 회사를 시작했을 때, 다른 무엇보다도 커뮤니티로서의 경력이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이라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회사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강도 높은 커뮤니티이며,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소규모의 인원이 하나의 몸처럼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는 스타트업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역할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해야 했는데, 이 단계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거의 호르몬과 텔레파시 수준으로 이루어진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감지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마치 서로가 대기업 회장님과 그 비서라도 되는 양, 눈썹 움직임과 머그컵을 잡는 손놀림, ‘그렇군요’라는 말의 고저장단을 감지하여 그것이 정말 좋다는 것인지, 좀 더 지켜보자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책상을 박차고 나가기 일보직전인지를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단기간에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커뮤니티 경력이 일종의 걸림돌로 작용할 때도 있다.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기에 다 잘라버리고 일만 생각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커뮤니티의 딜레마와도 일맥상통한다.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란 목적에 맞도록 철저하게 분절되어 있다. 회사에서는 일만, 친구관계에서는 우정만, 동호회에서는 공통 관심사만 생각하면서 지내면 된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부모는 자식을 부양하고, 아이는 몸 건강하게 자라 열심히 학교다니는 식으로 삶의 일부만을 쪼개어 서로의 관계를 목적지향적으로 취사선택할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커뮤니티를 시작하고, 그 안에서 학교를 만든 것은 그 편리한 ‘현대적 인간관계’가 사람 하나를 만들고 키워내는 데에, 그 사람이 행복해지는 데에,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좀 더 나아지는 데에 약보다는 독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닐진대 어떻게 정해진 시간 안에 일만 하도록 강제할 수 있겠으며, 감정을 가진 존재가 자신의 한계에 몸부림치며 성장하는 과정이 어떻게 개인적 차원에만 국한되는 일일 수 있겠는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야 없겠지만, 개인의 성장과 성숙이 조직의 성장동력이 되고, 그것이 사회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시도해 볼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었던 것이학교이고 교육 커뮤니티였다.
그래서 다시, 사람들이 묻고 싶지만 차마 입밖에 꺼내서 말하지 못하는 무언의 질문, ‘대표는 지휘가 되나요?’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이렇게 되물어야 할 것 같다. ‘지휘한다는 것의 정의가 뭔가요?’ 만약 사람들이 묻는 것이 보통 회사에서 그렇듯 명령하고, 지시하고, 위계질서에 따르도록 하고, ‘까라면 까는’ 것이 대표로서의 리더십이라면 그런 것은 없다고 해야 할 것 같다(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 아니라 어느 초기 스타트업에서도 그런 리더십으로 회사를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반면에 후아의 대표인 민진하가 무엇을 위해 후아를 만들었는지 항상 생각하고, 구성원들을 잘 이해하며, 그들이 자기 역량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 같다. 그리고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 관계가 아니라, 각자 다른 종류의 책임과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면서 함께 일하는 회사냐고 물으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근접해가고 있다고 끄덕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너무나 지휘를 잘하는 나머지 가끔 나보다 손윗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하는 민진하 대표는... 너무 노숙해보이거나 혀에 기름바른 CEO같은 이미지를 주지 않기 위하여 최근 IR 발표에는 정장 대신 후아 로고가 새겨진 후드티와 청바지로 의상을 바꾸었다는 소식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