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이의 눈물
울지 않고 눈물을 흘리던 아이에게...
방문 교사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다.
날씨가 꽤나 추워져 가지만
바쁘게 집집을 돌아다니다 보면
추위도 못 느낄 만큼 정신없을 때가 많다.
부업으로 시작한 이 일은
여러모로 내게 잘 맞는다.
우선 일의 양을 재량껏 조정할 수 있어서 좋다.
주 3일,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학생들의 시간표를 편성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
대면수업이 어려울 때면
비대면수업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도 가능하다.
또 가르치는 일이라는 게
나름의 적성에도 맞는 듯하다.
주로 가르치는 학생들은 초등학생들인데
선생님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질문하고 열심히 받아 적는
아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참 기분이 좋고, 흐뭇하다.
어제는 5학년 성현이네 집을 방문했다.
좀 특별한 친구였다.
말 수가 적고, 온순한 성격인데
낯은 좀 가리지만
장난기가 있는 남학생이었다.
만난 지 한 달이 채 안 되어서 그런지
성현이는 나를 아직 불편해하는 듯했다.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수업에 집중도 잘 못하고
계속해서 딴짓을 하며
같은 질문을 3-4번 해야
겨우겨우 한 번 대답을 할까말까였다.
어제는 그 정도가 좀 더 심했다.
아무래도 수업 진행이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현아. 요즘 무슨 걱정 있니?"
(성현 : 도리도리 > '아니오')
"음... 그럼 성현아.
선생님한테 솔직히 말해봐.
이 수업이 재미가 없어?"
(성현 : 끄덕끄덕 > '네')
적잖이 당황했다.
물론 이 나이 때 어린 친구들 중에
공부를 재미로 하는 친구가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대놓고 나와 함께 하는 수업이 재미없다는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억지로 수업을 진행시키고 싶지 않았다.
보충수업을 하더라도,
오늘은 진도를 미루고,
이 친구와 대화를 좀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이 수업에 대한 아이의 속마음이 어떤지
이 친구의 진솔한 생각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천천히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의외로 성현이는
수업을 할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와의 대화에 임했다.
말문이 열리고 대답이 나오는데
꽤나 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얌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나의 질문에 모두 꼬박꼬박 답해주었다.
그리고 몇 분 뒤
성현이의 붉어진 눈에서
뭔가가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번 더
적잖이 당황했다.
아이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저 때는 소리 내어 울 때가 아닌가, 싶었지만
성현이는 아주 침착하게
그 작고 맑은 눈에서
소리 없이, 묵묵하게
한 방울씩 뚝뚝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 모습이 정말
얼마나 미안하고 짠하던지.
더는 아이에게
뭔가를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옆에 있었다.
왜 우는지
난 알 수 없었다.
이야기 도중 흘린 아이의 눈물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건지
어떤 마음에서 시작된 건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전부 다 알 수는 없지만
성현이는 이 수업 자체를 싫어하는 듯했다.
하기 싫어도,
하기 싫다고 엄마에게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억지로 꾸역꾸역
해야 하니까,
하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내 앞에 앉아 매번 수업을 하려니
얼마나 싫고 힘들었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그냥 냅뒀다.
하기 싫은 거
오늘 하루는 안 할 수 있게,
아무것도 하지 않게 해 줬다.
눈물을 흘리는 데
뭔가를 대답하기 힘들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될 수 있게 해 줬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꽤나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수업을 마칠 시간이 되자 머쓱했는지
아이가 후딱 눈물을 훔치고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보일 듯 말 듯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난 대충
성현이에게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그게 위로가 되었던 건지
또 다른 걱정이 되었던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성현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거야.
물론. 네 나이 때 그게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하기 싫으면 넌 충분히 안 해도 돼.
난 너와 즐겁게 수업을 하고 싶지만
그게 어렵다면 그래도 선생님은 괜찮아.
너가 원하면 내가 네 편이 되어서
엄마에게 잘 이야기해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너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선생님한테 이야기해줘 볼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성현이와 있었던 일을
곰곰이 회상해봤다.
사교육에 종사하면서도
이렇게 힘들게 사교육을 받는
지쳐있는 저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또 현타가 찾아왔다.
말없이 흘리던 아이의 눈물 속에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무겁게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담겨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에게 비치는 모습에
무엇이 아이들의 것이고
무엇이 어른들의 것인지
헷갈리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