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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Aug 27. 2020

Ep18. Happy New 2020

호주 워킹홀리데이 일지 마지막화(2020.01)


Goodbye Fletcher


하아.. 1년 2개월. 이젠 진짜 안녕.
1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친구들. 둘 다 저보다 어려요.
Dubbo 생활의 시작과 끝을 같이했던 내 친구 Taka. 보고싶다 친구야.


2018년 1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대략 1년 2개월을 다녔던 공장을 

드디어 그만뒀습니다.


1년 전, 세컨비자를 받기 위해

3개월만 머무르고 떠날 예정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그땐 이렇게나 오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정말 사람 일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일이 고되고 몸과 마음이 지쳐

그만 둘 생각을 100번도 넘게 해 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끝끝내 버텨냈네요.

그놈의 돈이 뭐라고.


덕분에 세계일주를 위한 경비는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개그맨 Steve 아저씨
사차원 Double D
가장 오랜 파트너 Crane Guy


태어나서 처음 해본 일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누구는 1년 2개월의 시간을

이런 곳에서 허비했느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내내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냈거든요.


하지만 돌이켜보니

절대 그 정도로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이 곳에서 시간과 마음고생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제가 얻은 경험과 배움의 가치가 얼마나 값진지 전 압니다.

스스로를 자위하기 위한 합리화는 아닙니다.

두고두고 이 시간을 추억하며 회상할 것 같습니다.

누구도 쉽게 겪어보지 못할, 

그리고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그런 특별한 시간이었거든요.


공장을 떠나는 마지막 날

그 날의 감회가 떠오릅니다.

시원 섭섭하달까, 후련하면서도 아쉬운

그런 복잡한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죠.


정말 지긋지긋했지만

고마웠다.

이젠 정말 안녕.

Goodbye Fletcher




Ielts

그래서 2년 동안 내 영어실력은 얼마나 늘었을까


제 비자는 3월 만료였습니다.

그래서 2월부터 출국 전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로드트립을 떠날 예정이었죠.

그때까지 약 2주 정도의 시간이 비었습니다.

그 시기에 제가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영어시험.


세계일주 준비를 위해

호주에 온 목적은 딱 2가지였습니다.

돈과 영어.

돈은 준비가 되었지만,

영어는 확신할 수 없었죠.

그래서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2년 동안 호주에 살면서

내 영어는 얼마나 늘었을까.


그렇게 2주

정말이지 오랜만에 그리고 열심히

시험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쳤죠. 


민망한 점수지만 제겐 중요한 증표.


충격적인 결과였습니다.

2주 한다고 점수가 얼마나 나올까

사실 기대는 크게 안 했는데

예상보다 잘 나왔거든요.


Overall Band Score라는 게 평균점인데

10점 만점에 7점이라는 소립니다.

성적표를 받은 날 기분이가 매우 좋아서

아싸!!! 하고 소리쳤어요.

물론 시험에 대해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그렇게 높은 점수는 아닙니다.


가장 충격이었던 건

엄청 잘 봤다고 생각했던 듣기(Listening)와

2주 동안 가장 열심히 했던 쓰기(Writing)가

완전히 망했다는 사실.

또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말하기(Speaking)에서

기대 이상의 점수를 받은 부분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점수가 전혀 예상치 못한 식으로 

거꾸로 나와버렸다는 거죠.


한국에 돌아가면 제대로 한번 다시 도전.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웠습니다.

생각보다 내 머리가

그렇게 돌대가리가 되진 않았구나.

세계로 나가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

라는 확신을 갖게 됐거든요.


시험 점수 그 자체는

커리어로써도 스펙으로써도

제겐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러려고 본 시험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저 한 장의 종이 쪼가리에는

제게 굉장히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스스로가 그동안 헛된 시간만을 보낸 건 아니었구나

라는 사실을 증명하게 해 준 하나의 증표였거든요.

지난 시절에 대한 걱정과 후회를 조금이나마 덜어준, 

그래도 내가 할 만큼 했다는 위로와 보람을 건네준

내가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인 셈이었습니다.


물론 좀 더 열심히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그래도 뭐 이젠 다 괜찮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더라구요.


그동안 고생 많았다.

짜식.




Goodbye Dubbo

이젠 진짜 안녕


정들었던 나의 마지막 쉐어하우스. 너도 안녕 !


일도 그만뒀고,

영어시험도 봤겠다.

이젠 정말 떠날 일만 남았습니다.


돈만이라도 제대로 벌겠다고 

2년 동안 정말 많은 걸 꾸역꾸역 참아냈습니다.

먹을 거, 입을 거, 사야할 것들에 돈 쓰지 않고,

친구들이 휴가 때마다 좋은 곳으로 놀러 갈 때,

저와 제 여자친구는 흔들리지 않고

집에서 묵언수행을 하거나, 

동네 주변을 가볍게 드라이브 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순간만을 위해서 말이죠.


짐을 정리하고,

마음도 정리하고,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비자가 많이 남은 친동생은 이곳에 좀 더 남기로 합니다.
Taka와 Bella. 가장 친했던 두 친구.


그동안 참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살아보고, 헤어지고

그랬습니다.


처음 이곳에서 만나 함께 지내온 친구들 중

제가 떠나는 마지막까지

동네에 남은 친구들은 몇 없었습니다.

더보 생활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이 친구들에게도 작별인사를 합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이곳이 분명 그리워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떠나기 전

여기저기 발도장을 찍으러 다녔습니다.

자주 가던 동네 음식점들을 순회하고,

비싸서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맛집에도 가고,

혀와 뇌리에 그 그리울 동네의 맛들을 잘 새겨두고 왔습니다.


2005년식 Ford Falcon. 33만km를 달렸지만 여전히 튼튼했던 내 동반자. 로드트립도 함께.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조형물
Goodbye Dubbo


그렇게 2월의 쌀쌀한 어느 날 아침

저희는 홀연히 떠났습니다.

호주땅 둘레의 약 4분의 1을 

차를 타고 여행하기 위해서.


앞으로 죽기 전에

저곳에 또 한 번 갈 일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없겠죠.


하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동네의 생김새와 집 구조,

도서관의 위치, 맛있는 피자집의 파스타맛

장보던 거리의 북적거림, 공원의 냄새

저 동네에서의 모든 순간과 기억들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생생합니다.




Epilogue


호주 워홀 일지는 

이번화를 마지막으로 끝이 납니다.


글솜씨가 참 없는 것 같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일지였습니다.

2년 동안의 소회를

어떻게든 글에 잘 녹여내고 싶었지만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그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인상 깊은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고도 싶지만

그것도 잘 안되네요.


다음부터는

약 한 달 반 동안 

여자친구와 함께했던

로드트립에 관해 써보고자 합니다.

그때의 기록도 풍성하거든요.


그동안

이 재미없고 감동도 없는 글을

곧잘 읽어주신 고마운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이젠 정말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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