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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착 Oct 03. 2019

아, 한국 가기 싫다!

또 한 번 장거리가 되어야 하는 이 신혼 생활! 

"착착아 벚꽃 피었다!"

출근한 강구구가 사진을 보내온다. 사진을 썩 잘 찍지는 않았지만 꽃이 예뻐서 기분이 좋다. 프리랜서로 재택근무를 주로 하다 보니 밖에 나갈 일이 없다. 강구구의 스윗함 덕분에 봄을 이렇게나마 조금 느낀다. 그러나 벚꽃이 피었다는 건 내가 떠날 날이 다가온다는 뜻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휴일을 즐겼다. 늦게까지 자고 일어난 다음 침대 위에서 넷플릭스를 보다가 간단하게 아침으로 그래놀라와 아몬드 요거트를 섞어 먹고, 커피를 마시며 잠을 깼다. 최얌얌 발톱을 깎이다가 서로 조금 기분이 상했다. 어릴 때부터 발톱 깎는 걸 싫어해서 한동안 방치해두었다가 조심성 없는 강구구가 자꾸 그 발톱에 상처를 입어서 다시 깎이려고 노력 중이다. 하루에 한 개나 두 개씩 깎이고 있었는데, 떠날 날이 다가오자 마음이 급해져 세 개 째 깎인 게 화근이었을까? 얌얌이가 인간 어린아이 못지않게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해 나는 동물 학대범으로 몰릴까 봐 발톱 깎기를 포기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옷장 정리도 했다. 이곳에 다시 온지도 삼 개월이 되어 가는데 난장판이었던 집을 하나씩 정리해서 비로소 이제 옷장까지 왔다. 처음엔 화장실을 정리하고(내가 없는 사이에 물때와 곰팡이가 생겨있어서 너무 거슬렸다. 곰팡이는 아직도 완벽히 깨끗하게 없애지는 못했다.), 다음으로 주방을 정리했다. 역시 내가 없는 사이에 기름때로 사방이 끈적했고 집기의 위치도 엉망이고 음식물  튄 자국도 즉시 닦지 않아 굳어 있고 조리대 주변이 너무 어수선했다. 당연히 요리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날 잡고 그런 걸 하나씩 정리했다. 거실도 마찬가지다. 내가 집에서 일을 해야 하니까, 언제까지나 작은 티테이블에서 할 수는 없었다. 이건 오자마자 강구구와 함께 협동하여 책상을 재배치하고 작업 환경을 만들었다. 나가서 동네 사람에게 중고 의자도 하나 사 왔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침실이다.


옷장에 옷이 가득한 이미지

*이미지: Unsplash의 Nick de Partee

https://unsplash.com/photos/5DLBoEX99Cs


우리의 침실에는 옷장과 침대가 있고, 그 외에 잠깐 물건을 올려두는 서랍 겸 선반도 있다. 침실이 어지러운 원인은 무엇보다 많은 옷들이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외 강구구가 즉시 갖다 버리지 않고 주변에 모아두는 휴지와 간식 껍질 등도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쓰레기가 발생하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쓰레기통에 버려야만 직성이 풀리는데 강구구는 그렇지 않다. 이걸 여러 번 말해봤으나 전혀 시정되지 않아서 반쯤 포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때때로 쓰레기통에서 사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으니 일단 옷을 정리하기로 했다. 예전부터 마음먹고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서 계속 미뤄두었고, 서서히 곳곳에 옷이 쌓여있는 풍경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나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 집의 문제점은 수납공간이 적다는 점이다. 아니 이건 누구나 겪는 문제점이겠지만, 뉴질랜드의 집은 충격적으로 옷장이 좁다. 지난번에 살던 집도 다를 바 없었고, 지금 사는 집에도 빌트인 행거에 옷을 최대 이삼십 개 정도 걸면 끝난다. 그만큼 좁고 작다. 아마 키위들은 패션에 관심이 없고 늘 같은 옷만 입기도 하니까 옷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계절이 한국처럼 극단적이지도 않잖아!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우리는 엄선한 옷만 들고 왔음에도, 꾸겨 넣는다 해도 저 옷장에 다 들어가지 않는 양의 옷을 가지고 있다. 나야 나갈 일이 적으니까 옷을 좀 처분해도 괜찮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강구구의 상황은 또 그렇지도 않다. 수건, 속옷, 양말 등은 서랍에 따로 수납하는데도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아니 정말 이건 우리가 옷이 많은 편이 아니지만, 우리 둘이 합치면 옷이 삼십 개도 넘는 건 당연하다!) 행거를 추가로 사서 이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부족한 건 마찬가지다. 오늘은 그래서 우선 옷을 하나하나 다 꺼낸 다음, 내 옷은 자주 입는 옷 몇 개만 남기고 반팔과 바지를 작은 박스 두 개에 정리해 넣었다. 그 외에 강구구 옷도 자주 꺼내던 옷들 위주로 가까이에 배치하고, 꺼내기 힘든 뒤쪽 행거에 나머지 옷을 다 때려 박았다. 그래도 들어가지 않는 건 현관 쪽에 따로 싸놓았다. 헌 옷 수거함에 넣을 예정이다. 이러고 나니까 한결 침실이 쾌적했다. 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쌓여있던 선반도 정리했다. 침실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거실로 빼고, 화장품과 각종 약과 고양이 털 제거 용품 등만 남겼다.


이렇게 삼 개월에 걸친 청소가 드디어 끝났는데! (그 외 냉장고나 식품 저장고, 책상 정리, 수납장 정리 등도 틈틈이 진행했다.) 이제 다시 한국에 돌아갈 시간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우리는 비자 때문에 한국과 뉴질랜드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번에는 내가 사정이 있어서 들어가는 거지만, 어쨌든 원할 때 마음대로 다시 들어올 수 없는 건 사실이다. 그 생각만 하면 슬퍼진다. 나는 한국에 가고 싶지 않다. 돌봐야 할 고양이가 있고, 돌봐야 할 집이 있는데요! 내가 여길 떠나면 열심히 정리해 놓은 집이 또 난장판이 될 거고, 그럼 나는 그게 정상화될 때까지 우울할 게 뻔하다. 바쁜 강구구가 집안에 잘 신경 쓰지 못한다는 걸 안다. 말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도 알지만(?) 혹시나 해서 한번 말해봤다.

"구구야. 나 없는 동안 집 많이 더럽히지 말고 있어야 돼."

"알겠어."

"내가 열심히 정리해놨는데 또 다 엉망진창 될 것 같아. 네가 다 더럽힐 거잖아."

"그게 숙명이지."

"물건 쓰고 제자리에 둬. 그러면 더러워지지 않아."


꼭 정리해둔 집이 더러워질까 봐 그러는 건 아니다. 삶의 터전을 자꾸 옮겨야 하는 건 번거롭고 불안한 일이다. 나는 이곳에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잠깐 한국에 가 있으면 일이 밀리기만 한다. 자동차 정비도 맡겨야 하고, 보험도 확인해볼 게 있고, 사둔 식재료도 요리해서 먹어야 하는데! 파스타를 해 먹으려고 소스도 샀고 팬케이크 믹스도 갔다 오면 유통기한이 지날 것만 같다. 냉동실에 얼려둔 명란도 마저 먹어야 하고, 강구구는 안 먹고 나만 먹는 홀밀빵도 아직 남아있다. 한국에 간다 해도 공과금도 신경 써서 내야 하고 비자의 진행상황은 계속 살펴야 하는데 에이전시와 시차만 많이 나게 되어 불편하다. 내가 없으면 강구구가 고양이 화장실도 자주 안 치워줄 것 같은데(그는 고양이를 사랑하지만 바쁘다.), 꾹꾹이 패드도 얼마 안 남았는데, 스크래처도 알아보던 중이었는데! 모든 일이 중간에 끊기는 게 싫다.


"내가 양말 이상하게 벗어서 미안해."

"양말을? 이상하게 벗었어? 몰랐네. 왜 그랬어."

"벗어서 바닥에 뒀어. 이제 안 그럴게."

"왜 바닥에 뒀어. 나빴네."

그러고 보니 집을 깨끗하게 치워놨더니 어쩐지 강구구가 조금 더 조심한다. 다음 주엔 강구구가 휴가를 받아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난다. 또 다시 잠깐이 될지 한참이 될지 모르는 장거리-기러기 인생이 된다. 아, 한국 가기 싫다. 정말 한국 가기 싫다. 이 또한 지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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