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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e Oct 14. 2019

24. 새롭게 알게 된 진실

그곳에서 6.25는 '북침'이었다

탈북 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북한 지도부의 실정과 무능에 대한 환멸,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었다. 그러나 태국에 3개월 간 머물면서 접한 한국의 서적을 보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었다. 내가 북한에서 배웠던 모든 것이 가짜이고 조작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북한에 있을 때는 하도 세뇌교육을 받아서 의심조차 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무심히 그런가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모든 것들이 다 거짓이었다. 북한의 근현대사 자체가 모순덩어리에 대부분 역사왜곡이었다. 그곳에서는 당연했던 것들이 밖에 나와서 보니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감성만 자극하고 선동적인 북한의 교육내용과 과학적이고도 증거가 뚜렷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시각에서 본 북한 역사를 비교해보니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가 분명했다. 

                                                                                출처: 국방부

특히 6.25전쟁에 대한 진실은 실로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탈북 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북한 정권의 선전대로 6.25전쟁이 힘 센 미국과 한국의 합작품이라고 믿고 있었다. 입만 열면 정의를 떠들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침략을 당하고, 핍박받는 '불쌍한 양'이자 그럼에도 사회주의 진지를 지키는 사회주의의 마지막 보루라고 주장해오던 북한이 사실은 동족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을 일으킨 침략의 원흉이라니... 북한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회의감과 환멸을 느끼고 탈북하기는 했어도 설마 북한이 역사왜곡을 그렇게 심하고 하고, 심지어 동족에 대한 침략전쟁을 일으켰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동부전선에서는 북한군이 먼저 공격했다는 부친의 말에 반신반의한 적은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38선 전역이 아니라 서부전선에서 먼저 시작된 미국과 한국군의 북침전쟁에 대응하는 성격의 전술적 공격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또 6.25전야에 38선에서는 북한군과 한국군의 국지전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으니 그 연장선인줄로만 생각했었다. 북한이 먼저 남침해 놓고 그렇게 주민들과 군인들, 학생들에게 뻔뻔스럽게 북침이라고 선전하고 원수를 격멸해야 한다며 수십년간 적반하장의 선전선동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비밀 해제된 구 소련의 문서와 소련 지도자들, 중국 지도부도 인정한 6.25전쟁의 진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김일성의 항일 경력도, 김정일의 출생지도 모두 가짜였다. 나이도 가짜, 이름도 가짜였다. 


그 모든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북한에서의 내 인생 자체가 부끄러웠다. 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30여 년 간을 살아왔고 12년간을 경호부대에서 충성했는지 회의감이 밀려왔다. 부끄러웠고 죄스러웠다. 그 땅에서는 그렇게 태어나고 길들여지니까 별 수 없었지 않았냐고, 달리 선택의 기회도 없었고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고 변명해 봐도 그러기에는 북한 지도부가 조작한 역사왜곡과 6.25남침전쟁의 죄과가 너무 컸다. 남북한이 대치상태지만 그래도 정정당당한 경쟁인 줄 알았고 한국이 북침했다고 생각해왔었기에 탈북해서 한국행을 하는 처지였지만 마음가짐이 비교적 당당했었다. 왜냐하면 북한의 선전에 따르면 북한은 피해자였고 나도 간접적인 피해자니까 가해자인 한국에 나는 당당한 입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상황인 것이다.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그 죄책감은 지금도 계속 남아있다. 비록 6.25 전쟁 때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어도 북한이 가해자인 6.25전쟁의 원죄에서 마냥 자유로울수는 없는 셈이었다. 북한 정권은 그럼에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한국을 적대시하고 증오하고 복수를 다짐하도록 세뇌교육을 하면서 대남도발과 테러를 서슴없이 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6.25 남침전쟁 도발의 책임을 다 한국에 떠넘기고 뻔뻔스럽게 적화통일을 기어이 실현하자고 주민들과 군인들, 어린 학생들을 부추겨 왔던 것이다. 진실 앞에서 나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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