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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e Oct 27. 2019

어느 가을날에

푸른 하늘이 눈부시다. 입추와 말복이 지나고 처서가 가까워오니 폭염은 한풀 꺾이고 가을 기운이 물씬 풍겨온다. 하늘이 높다. 솜사탕을 끝 모르게 피워 올리는 구름 뭉치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햇빛이 따스하다. 아침, 저녁으로 울어대는 가을의 전령, 귀뚜라미 소리가 정겹다. 낮에는 아파트 화단에 심은 나무들과 회사 가로수들 사이로 매미 소리가 자지러진다. 잠자리들도 분주히 나무 사이를 날아간다.


나는 4계절 가운데 가을이 제일 좋다. 가을엔 마음이 즐겁고, 여유로워진다. 폭염에 지쳐 활력을 잃었던 몸도 선선해지는 가을 날씨에 탄력과 리듬을 되찾아 간다. 자연의 축복이 결실로 맺어지는 가을엔 몸도 마음도 풍요롭다. 올해 예년에 비해 많이 내린 장맛비에 물기를 한껏 머금어 통통해진 오곡백과가 가을햇빛에 여물어간다. 


                                                                             출처: 트래블아이


들에는 황금물결이 넘실거리고 산과 과수원에는 열매가 향기롭다. 벼이삭은 고개를 숙이고 사과는 빨갛게 탄다. 원두막 지붕 위에는 박덩굴 사이로 박꽃이 새하얗다. 흥부네와 놀부네 박은 어디 있을까? 배추와 무도 쑥쑥 자란다. 산과 들에, 농부의 웃음이 가득하니 올 추석도 풍족하겠다. 


이런 가을날이면 온 몸 가득 따스한 햇살을 머금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나를 둘러싼 모든 속박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와 이런 저런 경제적인 문제들, 그리고 폭염에 지쳤던 일상을 멀리 하고 나만의 ‘파라다이스’에서 여유롭게 힐링하고 싶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머리카락 흩날리며 나만의 드라마를 찍고 싶다. 


비록 오픈카는 아니지만 삼복더위와 폭염이 심신을 지치게 했던 이번 여름, 입덧으로 고생했던 아내를 옆 좌석에 태우고 연애시절 드라이브하던 포천의 국립수목원 가로수길을 달리고 싶다. 수목들이 내뿜는 치톤피드와 싱그런 나무향내를 폐부 깊숙이 들이키며 심신을 정화하고 싶다. 수목원의 이국적인 가로수길 풍경에 심취해 해외여행 기분을 내보고 싶다. 


                                                              출처: 트래블아이(포천 국립수목원)


아니, 올해 바쁜 업무 때문에,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2세의 깜짝 왕림으로 쓰지 못한 여름휴가까지 연가를 모두 몰아서 해외여행을 다녀올까? 그렇지만 아직은 조심해야 하는 때고, 어렵게 찾아 온 우리 아기를 생각해서라도 올 한 해는 꾹~ 참아야겠지? 그래, 둘이서 다녀왔던 해외여행을 다음엔 우리 사랑의 결실, 아기까지 셋이서 함께 다녀와야겠다.


해외여행은 아직 무리니 일단은 가까운 국내 명소에 다녀와야겠다. 아직 가보지 못한 국내 명소도 얼마나 많은가? 우선은 달빛, 별빛 쏟아지는 포천의 라이브카페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도 먹고, 시원한 음료수 한 잔 기울이며 라이브 가수에게 새로 태어나는 우리 가족을 위한 축복의 노래 한 곡 청하고 싶다. 노래는 뭐가 좋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과 이런 저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 인생은 고단하고 다사다난해도 희망이 있어서 살 맛 나는 것 아닐까? 


                                                    포천 라이브카페 '파노라마'


봄내, 여름내 농부가 땀 흘려 심고 가꾼 곡식과 열매가 가을에 무르익듯, 늘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인 듯 싶은 오늘의 하루하루가 모여 내 인생을 이루고 삶의 결실로 맺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평범한 오늘의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야겠다. 한 번뿐인 소중한 내 인생과 빛나는 내일을 위해... 마음의 들메끈을 바싹 조여 매고 출근길에 나선다. 단잠에 든 아내에게 살짝 뽀뽀를 한다. 여보, 아가야, 잘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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